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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

생명 | 2021.02.28 06:12 | 조회 637

말씀의 능력 (히브리서 1:1-3)

제가 복음을 알고부터 은혜 받은 성경이 있습니다. 그게 창세기, 시편, 요한복음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각자의 눈으로 쓴 것입니다. 그런데 세 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니까 내 믿음의 뿌리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또 말씀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내게 성령으로 말씀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말씀으로 만납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뭡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는 하나님을 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요한복음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제가 많은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게 사단이 있냐고 물으니까 없다고 합니다. 사단이 이용하고 속이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안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신병이 정신이 돌고 싶어서 도는가, 마귀가 있어서 도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무당도 봐라, 점을 치는 것 같은가? 아니다. 귀신 소리를 듣는 것이다.’ 센 무당을 만나면 제가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데 내게 있는 신이 그보다 더 월등하니까 그것을 눈치 챕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은 귀신 들렸다.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그게 귀신이다. 조상신이 아니다. 조상신이 왜 오냐, 하나님이 다 주관하시는 거지’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이 사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것을 훔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간단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작이 되고 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끝은 전도제자입니다. 우리가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끝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사단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습니까?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지금 전 세계를 멸망시키고 있습니다. 코로나도 왜 옵니까? 사단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활용하십니다. 믿음을 더욱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있기 때문에 제가 신앙 생활할 동안 분노가 있었습니다. 분노라는 것은 오해 때문에 온 것입니다. 사람을 사실적으로 안 보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실적으로 안 보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저를 오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풀어야 하는데 이미 나가버렸습니다. 어떻게 풉니까? 여러분, 나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만나서 풀어봐야 합니다.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사실 이런 거야’ 그러면 금방 풀립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풀 수가 없습니다. 기분만 나쁩니다. ‘쟤가 나한테 이랬다’ 흉보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갑니다. 그러니까 더 잡힙니다. ‘쟤가 그랬는데 왜 나는 안 그랬다고 하나’ 그러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를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를 오해하는 순간 존경심이 없어집니다.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가는 것 아닙니까. 풀어야 하는데 풀 수가 없습니다.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 공허 때문에 분노도 오지만 시기와 질투도 옵니다. 공허라는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허전하다는 것입니다. 채운 사람은 시기, 질투를 안 합니다. 못 채운 사람들만 시기, 질투를 합니다. 시기, 질투라는 마음은 오해가 생깁니다. 오해 때문에 가장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다 깨집니다. 그리고 이 오해 때문에 분노가 있습니다. 제자가 그러면 안 됩니다.

교회가 왜 있습니까? 예배 드릴 때 이런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에 약속하신 영적인 사실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에 약속하신 영적 사실을 그대로 누리는 것이 교회의 예배입니다. 신자들도 시기, 질투하고 오해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영안이 안 열린 것입니다. 영안이 안 열리니 육은 육을 낳는 것입니다. 육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리고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방향을 잃어버리니 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합니다.

오늘 졸업 예배를 드렸습니다. 새로운 시작의 기회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불신앙으로 시작하면 반드시 불신앙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작은 기도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평안함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니까 하늘 군대가 총 동원됩니다. 그러니까 흑암이 무너집니다. 그 결과가 평안함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새로운 시작은 복음으로 해야 합니다. 렘넌트들, 오늘 예배의 말씀은 기록해놓고 마음에 저장해야 합니다. 저장은 내 마음에 각인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끄집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씀으로 연결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교장 선생님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고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였는데 그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장을 가지고 하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을 가지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번 사는데 더 중요한 것은 복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은 내 유익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유익을 따라 움직이면 반드시 결과가 나옵니다. 육은 우상입니다. 우상은 죄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의 결과가 계속 오는 것입니다. 영적 문제가 계속 오는 것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전도 제자를 남기고 하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전도 제자를 남기고 가지 않는 것은 불쌍한 인생입니다. 전도 제자는 반드시 복음을 누리는 만큼 생깁니다. 우리가 한번 사는 인생인데 반드시 전도 제자를 남겨놓고 가야 합니다. 그것도 복음으로 지속할 제자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계속 또 제자를 남깁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오늘 세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본문 1-2절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모르면 하나님과 대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즉, 기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진 권사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만 들으신다고. 왜 들으십니까? 흑암이 꺾이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이름으로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아들로 말미암아 말씀하신 이유가 뭡니까?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2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히브리서 1장 3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능력의 말씀’ 예수님입니다. 말씀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만물을 붙드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믿음이 연약하고 확신이 없을지라도 말씀의 능력을 가지고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현장에 다녀오면 내가 이상하게 말씀을 버벅거리고 전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씀의 능력이 내게 체험이 됩니다.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에게 말씀이 성취되는 시간이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능력을 가지고 현장을 가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버벅거려도 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나에게 역사하셔서 믿음의 반석이 되도록 세우십니다. 그런 경험 많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이 말씀을 가지고 전할까? 그래서 가서 무턱대고 그냥 읽어줬습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믿음의 반석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또 요한복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실적으로 믿어지는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는 눈으로 우리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보시는 눈입니다. 그리고 복음과 전도로 모든 것을 봐야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눈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전도를 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다 그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복음 가지고 전도하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력의 말씀을 가지고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두 번째, 말씀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작과 끝을 가지고 계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태초에’ 라는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헬라어로는 아르페라고 합니다. 아르페라는 뜻은 처음, 태고,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작과 처음이라는 말씀은 지배력과 권력을 가진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지배력과 권력을 가진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나를 먼저 지배하고 그 권력을 가졌다는 말씀으로 힘과 답을 가져야 합니다. 나를 먼저 지배해야 합니다. 내게 말씀이 각인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권력이 있습니다. 헬라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처음이고 태고, 태초이고 지배력과 권력을 가졌습니다. 참 이게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는데 힘이 안 나고 답이 안 난다는 것은 병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빨리 말씀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말씀에 계속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나를 못 바꿉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게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말씀으로 나를 바꿀 수 없습니다.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바뀝니다.
요한복음 1장 2-3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의 빛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빛입니다. 이 생명의 빛은 세상의 어둠에 비추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것이 세상의 어둠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다고 했습니다. 혼돈은 답이 없는 것입니다. 공허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가 흑암이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흑암이 깊다는 것은 사단이 완전히 지배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할 때에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신 영적 사실로 세상을 살지 않는다면 흑암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의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지배력과 권력을 가진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계시므로 그 흑암에서 빠져 나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단합니다. 그냥 예수 이름에 약속하신 영적 사실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 누림 속에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빛과 어둠입니다.
요한복음 1장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어둠에 빛을 비춰야 하는데 그 빛이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의 어둠에 요한복음 1장 12절로 비추신 것입니다. 다 받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0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에 그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다 받은 것입니다. 예수 이름이 곧 빛입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또 줄 게 없습니다. 문제 해결해 달라고도 하지 마십시오. 다 해결 받았습니다. 십자가로 다 끝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부활로 지금 성령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세례 요한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고백은 세례 요한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는 말씀 성취의 고백입니다. 수천년동안 구약에서 양의 피를 가지고 그림자로 보여주셨던 그 주인공이라는 고백입니다. 구약에서 수천년동안 기다렸던 말씀이 성취되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내가 한다면 나에게 말씀 성취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배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말씀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시몬의 형제 안드레가 먼저 메시야라고 고백했습니다. 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왜 믿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본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꿈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꿈 이야기는 요셉만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생각하니까 꿈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방언도 필요 없습니다. 어떤 나라에 가니 방언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복음을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전도자의 사명입니다. 참 중요합니다. 메시야를 봤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4-45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자 요한복음 1장 46-47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깜짝 놀랍니다. 요한복음 1장 48-49절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아주 중요한 것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를 고백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그런데 이 고백이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로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 지배력과 권력을 가진 말씀을 영접하면 나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긴 자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다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은 전도자의 삶을 준비하면서 오직 전도만 결론이 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 똑같이 이야기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셨는데 하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전도자가 가져야 할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1장은 이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결론입니다.
요한복음 1장 51절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보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큰일입니다. 흑암이 꺾이고 천사의 사역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큰일입니다. 이것이 동시성의 역사입니다. 동시성의 역사, 모르면 큰 일 납니다. 예수님이 하신 고백 자체가 동시성의 역사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것을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 고백이 뭡니까?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일을 동시에 일으키는 것입니다. 응답도 똑같습니다.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 응답도 동시성입니다. 그래서 동시성의 역사가 우리에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시성의 역사로 살지 않으면 허당입니다. 우리의 일은 모든 것이 동시성의 역사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신성에는 삼위일체지만 인격은 하나입니다. 인격은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격은 세 분인데 일체는 신성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시는 일도 하나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말씀을 성취시키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구원입니다. 말씀이 성취되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은 지배력과 권력을 가진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영적인 힘입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모든 것이 동시성의 역사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말씀 성취의 응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성도님들이 가는 곳마다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동시성의 열매가 일어날 수 있게 축복해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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