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중직자와 전도

복음에 빚진자 | 2018.05.31 06:46 | 조회 4700

2018531일 중직자와 전도(로마서 16:23)

http://ssmc.ipdisk.co.kr:8080/publist/VOL1/mp3/180531_D.mp3

 

이재숭 목사

 

서론

 전도(선교) 중에 가장 큰 전도(선교)는 템플(Temple) 전도입니다. 결국 남는 싸움은 우상 신전이냐 복음 신전이냐? 우상 성전이냐 복음 성전이냐?’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더라도 그 지역에 큰 우상이 선다면 영적으로는 심각한 문제에 빠집니다. 템플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영적 문제가 일어나고 복음 운동 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중요한 싸움에서 중직자에게 예비된 축복은 무엇일까요? -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은 자도, 아닌 자도 사는 것은 결과를 위한 삶을 산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결과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자기가 원하는대로 잘되는 쪽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속는 것이다. 하나를 모르고 산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쓰는데도 안된다.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자기가 원하는대로 만들어지는 사람은 10%도 안된다. 90%의 사람은 보이는 결과를 만들려고 하는데 안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면서 영적사실을 못 본다. 종교도 같다. 종교의 결과는 눈에 보이는 결과는 눈에 보이는 것을 화려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데 영적인 것을 못본다. 기독교인도 똑같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영적사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른다. 예수믿는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다. 영적사실속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살면서 헛되게 되어 있다. 교회도 같다. 헌신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결과가 잘되기 위해서 헌신한다. 아니다. 결과가 잘되기 위해서 하면 무너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적사실 속에서 해야 한다. 깨달아지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안되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기에 상관없다. 숫자에 사람이 빠질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영적배경이 안보인다. 그것이 보여야 결과와 상관없는 그리스도를 누린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결과 때문이다. 렘넌트를 키우는 것은 세상은 성공을 위해서 간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이다. 결과를 이루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들도 행복이 없다. 껍데기가 다가 아니다. 영적존재인 인간이다. 영적존재는 영적배경이 바뀌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결과로는 행복을 찾을수 없다. 영적배경을 바꿀수 없다. 보이는 결과를 가지고 있어도 영적문제는 심각해진다. 늘 느끼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쉬기만 하고 잠만 자면 평안보다 불안해진다. 눈에 보이는 쉼을 갖는데 영혼은 죽어간다. 영적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영적문제가 있다.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영적문제에서 빠져나올 것을 영적문제를 이길수 있는 축복을 누리면서 돈을 벌고 결과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결과는 하나님이 영적문제를 이기는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전도자이다.

tv를 많이 보는 것은 나에게 행복이 안되고 중독이 되는 것은 영적존재이기에 영적문제가 있다. 거기에 걸려든다. 안보는 것이 중요치 않다. 영적문제 이길 축복을 가지고 보면 쓸데없는 것에 빠지고 영양가도 없는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못 누리는 것이다. 본질속에서 보이면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영적배경을, 본질을 찾는 것이다. 인간은 영적존재이다. 영적존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영적사실이다. 흑암을 이길수 있는 하늘보좌를 누리는 비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비밀이 그리스도밖에 없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신 것이 그리스도이다. 예수 이름을 붙잡지 말고 그리스도붙잡아야 한다. 그리스도로 영적사실을 누리는 비밀을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이 없으면 하나님이 오실수도, 사탄이 무너지지도, 보좌가 움직이지도 않는다. 눈에 안보이지만 예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천하만물이 무릎꿇는다. 현장에서 누리는 사람이 없다. 예수 이름을 부를 때 무릎꿇는다는 것보다 tv가 더 재밌다. 결과를 보면 그렇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과만 보는데는 예수 이름이 필요치 않다. 영적존재라는 것이 깨달아져야 한다. 그래서 tv만 보고서는, 밥만 먹고서는 못 산다. 예수 이름이다. 하늘과 땅의 무릎꿇는 것임이 믿어진다. 인생사는 것이 쉬워진다. 결과를 만들어가려면 어려워진다. 본질을 보고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쉬워진다. 결과는 하나님이 만들어가신다. 착각하면 이래서, 저래서 잘된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만들어가신다는 것을 모른다.

 

1. 메이슨(Mason) 전쟁에 승리한 자(영적 싸움)- 건축싸움이라는 것이다.

메이슨 전쟁은 영적 싸움입니다. - 메이슨 사업은 건축이다. 시대적으로 건축은 우상섬기는 자의 건축은 눈에 안보이는 영적인 것을 드러내는 장소가 건축이다. 이 눈이 열려있어야 한다. 인생은 간단하다. 문제는 화려하게 지으려고 하는 것은 감춰진 것이다. 용화사가 집들을 사들이는 것은 용화사가 귀신세계를 만들고 있다. 영향을 끼치는 동네에 가면 정신문제에 걸린 사람들이 나온다.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면서 좋아하면 안된다. 교회들이 힘빠져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살아남는다. 영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을, 그리스도로 확신하고 부르면 하늘과 땅의 일들이 일어난다. 거기로 다니면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것을 볼수록 더 큰 영적사실이 누려지는 것이다. 누려지는 만큼 흑암이 무너지는 것이 중요치 않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이 일어난다.

메이슨이란 성전 짓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3세기부터 프리메이슨이 생겨나 우상 템플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마다 중직자와 Remnant가 일어났습니다. - 많은 사람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부모와 후대를 영적사실을 아는 사람을 일으켰다. 껍데기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살고 신앙생활을 하면 무너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사실을 바꾸기 위해서 하라. 하나밖에 없다. 각인을 바꾸는 것이다.

애굽 피라미드 신전과 싸운 모세, 다곤 신전과 싸운 사무엘과 다윗, 로마의 제우스 신상과 싸운 바울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전도는 메이슨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메이슨 전쟁을 할 수 있는 비밀결사대를 세우셨습니다. - 항상 보면 다니엘과 세친구도 느봇신상에 절하라고 하는데 안했다. 알기 때문이다. 우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귀신의 역사라는 것이다. 귀신을 꺾을 권세가 있는데 귀신의 역사는 죽음밖에 없다. 사탄이 몰고 가는 것은 죽음이다. 그래서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은 던지겠다고 하는데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죽음의 문제도 끝낸 것이다.

 

2. 성전 전쟁에 승리한 자(문화 싸움) - 전도자는 문화싸움이 아닌 영적싸움이다. 성막을 짓는 것이, 광야에서 피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모든 피조물의 대표가 언약궤에 있다. 천사이다. 이것을 놓치고 신앙생활을 한다. 언약과 말씀이라고만 하는데 놓친다. 흑암이 무너지는 비밀은 성막밖에 없다. 내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성전 전쟁은 문화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운동 회복을 위해 모세를 부르시고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 광야길을 가는데 애굽에서 나오는 패물을 성막을 짓는데 썼다. 그것이 답이다. 있는 것, 없는 것이 아니다. 돈도 물질도 헌금하는 것은 영적배경을 보고 하는 것이다. 영적배경을 보고 쓰지 않으면 영적문제가 온다. 벌려고 쓰지 말고 본질을 보고 쓰면 결과는 하나님이 만들어가신다. 이것을 깨닫고 헌금을 하면서 눈이 있다. 헌금할 때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보인다. 본질을 보고서 헌금한다. 그러면 내 돈이 성령의 흐름속에 있다. 반대로 악령의 흐름속에 있을수 있다. 바꾸는 비밀이 헌금이다. 엄청난 것이다.

그리고 광야길 가는 동안 중요한 응답을 모두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은 제1, 2, 3 성전을 통해 역사했습니다(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 다윗은 언약궤를 둘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과 주위에 있는 흑암문화를 완전히 꺾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전 건축을 통해 문화 싸움을 한 것입니다. - 모든 우상문화, 귀신문화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내가 성전을 어떻게 짓느냐가 아니라, 감람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는 전이다. 그러면 그 전이 당연히 열려야 할 것이 성령이 깨닫게 하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내가 성령으로 누린다는 것은 성령은 돕고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이다. 인간의 문제는 그리스도없는 문제이다. 그리스도가 지속되도록 성령이 역사하신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가지고 영적싸움을 하기 바란다.

 

3. 교회 전쟁에 승리한 자(예배 싸움) - 진짜는 둘중의 하나이다. 참된 싸움은 우상이다. 결과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상이다. 본질을 가지고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다.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 본질을 찾는 것이다.

교회 전쟁은 예배 싸움입니다. 교회를 짓는 이유는 예배 회복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예배를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회복한 예배가 중요합니다. 나아가 다민족과 Remnant와 기도의 뜰을 회복하고, 불신자를 살리는 현장 교회를 회복해야 합니다. - 기도는 복음과 전도를 회복하고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살아지는 체질이 되는 것이다.

성전운동을 넘어서 곳곳에 Remnant들이 모이는 현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에 증거로 남을 대표적 교회를 모든 지역에 세워야 합니다. - 우리 인천지역에 대표적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아멘만 하지 말고 기도하라. 이 말을 하는 것은 후대를 생각해서이다. 그냥 복음이 아니다. 그냥전도가 아니다. 영적사실을 보는 눈, 영적사실을 누리는 전도가 중요하다.

캠프를 나가면 뭔가 모르게 힘들다. 복음도, 사명도 있다. 그런데 급하다. 메시지를 들어봐도 그렇다. 기도가 안되는 것이다. 보는 것이 저들이 기도가 안 깨달아졌다. 비스므리하게 깨달은 것인데 정확하지 않다. 기도는 각인을 바꾸면 뿌리가 내려지고 체질대로 간다. 각인은 영적사실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을 주셨다. 모든 것을 가지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는 것은 결과를 바꾸려고 살았었다. 오늘부터는 성전메세지를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본질을 찾아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결과를 만들어가심이 확인된다.

 

우리에게 영적싸움 할수 있도록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눈을 여심을 감사합니다.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사실이 앞에 와 있음을 보게 하시고 결과를 위해서 인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적사실을 찾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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