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헌신

복음에 빚진자 | 2017.12.06 06:34 | 조회 4801

2017126일 헌신(학개 2:5~9)

http://ssmc.ipdisk.co.kr:80/publist/VOL1/mp3/171206_D.mp3

 

이재숭 목사

 

서론을 보기 전에 본문이 중요하다.

5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사실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나올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문설주 인방에 피바르면 바로가 더 악하여질 것이고 손을 들어 친 후에 광야에 나와서 예배드릴 것이라고 했다.

학개는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 머물로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임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왜 우리안에 머물러야 하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결정하는 것, 판단하는 것, 보는 것들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악령의 역사도 사람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도 사람을 통해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하면 잘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생 살아보니 90%가 실패이다. 그 속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 인생에서 배울 것은 다시 한번, 힘내자가 아니다. 그 속에서는 배울수 없다. 배우는 것은 모두 육신적이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교육이다. 거기에서는 실패이다. 본문에는 근본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영이 너희에게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인생이 사는 것이 실패라고 보였다. 문설주 인방에 피바른 날 약속하셨다. 내 영이 너희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구약에 영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영적인 것은 우리의 근본이다. 근본을 모르고 사니까 계속 실패가 온다. 아무리 해도 실패이다. 그런 상태에서 계속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구원받은 자에게 나의 영이 너희가운데 머물러있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지 않으면 복음은 알수 없다. 역사하시지 않으면 스스로 복음을 깨달을수 없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악한 것들, 죽이는 것들, 멸망시키는 것들이다. 근본이 성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내가 똑바로 살았는데 못박아야 하는가? 필요없다. 성령으로 나오는 것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은 내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으로 산다는 것은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가 주인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성령으로 깨닫게 해야만 나온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생이 되어야 한다. 아니면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이 된다. 내 기분에 맞아야, 수준에 채워져야 한다.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기에 한계가 온다. 내 기준, 수준에 복음을 맞추는 것이다. 복음이 복음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이시다. 내 기준과 상관없기에 약속이라고 한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거의 99% 신자가 자기 기준에 맞을 때 믿음이라고 한다. 이것은 잘한다고 한다. 못한다고 한다. 모두가 복음이 아니다. 잘할수도,못할수도 있다. 복음은 복음일뿐이다. 왜 성령이 내주하시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구원받고 난 후 삶이 자기 기준에 맞춰서 한다. 기도도, 말씀도 그렇게 한다. 맞으면 좋고 안맞으면 싫다고 한다. 상식이다.

렘넌트와 안 맞는 것은 일방적 상식이 안되어서이다. 생각과 마음이 상식적이지 않아서 그렇다. 렘넌트이든지, 자신이든지 그렇다. 부모가 상식적이지 않으면 소통이 안된다. 교회의 소통은 신앙적 소통을 말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 교회안에도 많다. 그런 사람과 소통이 되어야 한다. 신앙적소통이다. 무시가 아니다. 신앙적 소통이 되면 비상식적인 사람일지라도 소통된다. 신앙은 근본이다. 말을 안한다고 소통이 안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을 보니까 바뀌었기에 포럼이 되어지면 정상적이 된다. 그 기대가 있기에 소통된다. 비상식적이면 근본이 안되기에 소통이 안된다. 일반적소통은 생각과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의 소통은 근본이 바뀌었기에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에 소통된다. 자신이 비상식적이면 객관화가 된다. 그런데 자신이 맞다고 하면 주관적이 된다. 객관적인 사람이 안되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문제가 안된다. 객관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을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교회안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지만 합리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근본이 바뀌었다면 합리적인 사람, 객관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옳다고 하지만 상대가 옳다고 볼수도 있다. 지금 당장이 아닌 멀리를 볼수 있어야 한다. 우리만이 아니라, 전체를 볼줄 알아야 한다. 영적근본을 볼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이다. 영적근본을 본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객관적이 된다. 사람을 무조건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일어나는 일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안 맞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영적근본을 보는 사람은 비관적으로 안 뵌다. 되어진다고 한다. 영적근본을 본 사람은 희망적으로 본다.

새벽메세지는 다른 교회도 듣기에 말을 조심히 한다. 객관적이 될 때 듣는다. 저 교회만의 메시지라고 하면 안 듣는다. 전체를 살리려면 객관적이 된다. 부정적인 사람은 지금 일어나는 일을 객관적으로 못 본다.

 

서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그 인생의 흔적과 열매를 남깁니다. 그 열매는 후대와 자녀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 후대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화의 방법 혹은 생각의 차이로 인해 자녀에게 상처나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 비상식적이기에 대화가 안된다. 류목사님이 9가지 포인트로 사람을 보라고 했다. 순간만 보지 말고 과거, 현재, 미래를 보라. , 아래, 옆을 보라는 것이다. 객관적인 삶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사람이 했을지라도 영적인 근본으로 보면 하나님이 하셨다. 이것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전체가 하나님으로 보면 된다. 위정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움직이심을 모르면 자신이 잘하고 못하고로 생각한다. 영적근본이 된다면 내 생각에 매몰되지 않는다. 교회는 작아도 전체를 보아야 한다. 전체 렘넌트를 보아야 한다. 어른들만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한다. 교회의 일은 예측을 할수 없다. 내일, 한달동안 헌금의 집계를 알수 없다. 교회의 일은 결과만 보고 판단한다. 벌어져야 그때서야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예산을 잡지 않으면 알수 없는 것이 교회이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세상 일은 세금내는 곳이 뻔하기에 집계가 될수 있다. 성도들은 일이 생기면 헌금이 줄어든다. 내년에 수입집계가 어떠한지 알수 없다. 그래서 확실한 것은 결산밖에 없다. 교회의 일은 믿음이 보여지는 것이 결산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배워야 한다. 자기 기준에 안 맞는다고 해서 교회의 일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 없다.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의 특징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면 못한다. 자기 생각에 꺾인다. 현실만 보기에 되는 것이 없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상처받은 Remnant들은 가정과 교회, 학교에서 삼중생활로 힘겨워 합니다. - 가정에서 부모가 비상식적이면 할수 없기에 참는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사회에서 상사가 비상식적이면 참는다. 일치가 안된다. 상식적이 아니면 삶과 일치가 안된다. 객관적이 되었다는 것은 삶과 신앙이 일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복과 도전을 위한 세 가지를 나와 후대에게 실현해야 합니다.

 

1. 묶여있는 것에서 해방 묶인 것은 객관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만 옳다고 한다. 객관적인 사람이 볼때는 그 사람이 주관적이다. 묶여있는 것에서 잘했던 사람이 다윗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묶여있는 것으로 인해 중요한 응답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주께서 아침에 내 기도를 들으신다”(시편 5:3)라고 고백했습니다. - 다윗이 하나님 나에게 힘을 달라고 하지 않고 주께서 아침에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기도는 응답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들으실까 아닐까가 아리나, 기도하는 것은 이미 들으신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다.

, “주께서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신다”(시편 17:3)라고 고백했습니다. - 나를 움직이시고 고치신다는 것이다. 다윗의 기도를 보면서 다윗은 하나를 기도했다. 보이지 않는 힘을 누렸다. 보이지 않는 힘을 여호와의 이름을 누린 것이다. 예수 이름을 부른다가 아니라 그 이름이 기도이다. 그 이름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 이 이름이 없으면 안 들으신다. 이름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이다. 소리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붙잡으면 소통이며, 기도이다.

예전에는 기도를 할 때 상태가 안좋으면 안된다고 보았다. 우리 생각을 잘 아시기에 하나님과 소통되는 길을 주셨다. 이 길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 이름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놓치면 하나님이 안들으신다. 기도의 중요한 비밀이 확신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침에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며, 밤에도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돌보십니다. 나아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니 부족함이 없다라고 했던 고백처럼 아침과 낮, 밤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 가운데 은혜를 받아 누린다면, 묶여있던 흑암에서 해방되어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 다윗의 모든 삶은 아버지 밑에 있을 때는 막내로 형들 심부름을 하고 귀찮은 일만 했다. 사울의 사위때는 죽임 당할 위기, 왕이 되었을때는 압살롬이 죽이려고 했다. 다윗은 일생동안 죽음의 위기였다. 그래서 고백이 죽음과 삶이 일반이라고 했다. 사망의 위기속에서 이긴 다윗의 고백이 있다. 겉으로는 도망다니는 일이었다. 힘이없어서 도망다닌 것이 아니다. 시편 23:1절 때문이다. 겉으로보기에는 피해다녔다. 다윗의 고백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객관적이되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기에 객관적이 된다. 상대방을 만난 것도, 그러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답이 되어야 객관적이 된다.

보이지 않는 힘을 아침과 밤에 누리는 비밀이 영적우선순위이다. 모든 것을 영적근본을 가지고 보기에 객관적이 된다.

 

2. 영적 우선순위

하나님은 모두에게 달란트를 주셨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영적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회복한다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가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학개 2:6).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모든 나라가 진동하고, 만국의 보배가 돌아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학개 2:7~9).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만 능히 상처를 넘어서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 바다와 육지가 진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힘과 능력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예수 이름을 묵상하다가 들어온 생각이 있다. 땅이 진동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생각이다. 십자가 사건이다. 땅이 뒤집혀진 사건이 부활사건이다. 그래서 만국은 돌아온다. 복음을 내 기준으로 맞추면 안 누려진다. 복음을 영적사실로 붙잡아라. 뒤집혀진 것이다. 그러면 내가 가는 곳은 뒤집혀진다.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 형상이 맞다면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자신인줄 아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 기도이다. 예전의 내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나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나에게 중요한 것이 기도이다. ?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에게는 깨달음, 잘하고 못하고가 아닌 보이지 않는 힘을 나에게 주신 것이다. 이 힘이 누려져야 정복이 되고 다스리게 된다. 그럴 때 세 번째 재앙이 막혀진다. 재앙은 죄의 결과가 재앙이다. 사탄에게 잡혀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탄에게 잡힌 만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재앙이다.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자에게 필요한 것이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속에서 사람이 객관화된다. 묶이지 않는다. 재앙이 막아진다.

 

3. 재앙 막을 사명 회복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주신 언약과 그 영이 여전히 그들에게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학개 2:5). - 하나님 형상이 회복되었음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지금 우리는 후대와 세 절기를 함께 지낼 수 있습니다. 광야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 응답도 함께 보며 살아갑니다. - ? 다 완성되었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금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가운데 거한다면 언약궤의 응답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후대가 더 이상 가정, 학교의 상처에 노예가 되지 않도록 복음에 집중할 응답을 전해야 합니다. - 하나님 형상 가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기도이다.

어저께 은혜를 받았다고 치면 오늘 아침에 하나님 형상이 있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알면 어제의 은혜로 살수 없다. 오늘도 새로운 은혜가 임해야 한다. 그것이 기도이다. 그것을 알아야 내가 지금 보이는 것들에 잡히지 않는다. 이것을 계속했던 사람이 다윗이다. 아침, 저녁에 했고 낮에는 확인했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님 형상을 회복케 하시고 형상가진 나로 하나님 은혜를 지속할수 있도록 매일 매일 기도로 누릴수 있게 축복하셔서 인생속에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심을 확인하고 발견하는 삶이 되도록 일어나는 문제의 결과에 속지 않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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