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기다림 - 생명공동체

복음에 빚진자 | 2017.11.01 06:25 | 조회 4557

2017111일 기다림 - 생명공동체(사도행전 1:6~8)

http://ssmc.ipdisk.co.kr:80/publist/VOL1/mp3/171101_D.mp3

 

이재숭 목사

 

누가 기다려야 하는가? 생명공동체, 교회를 말한다. 교회가 잘해야 하는 것이 기다림이다.

본문에 제자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이 다르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관심은 인간중심이다. 구원받은 자가 맞다, 성령받은 자가 맞다면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내 기준에 맞고, 틀리고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충분해야 한다. 내가 못견뎌서 하는 일, 안 맞아서 하는 일은 사탄의 공격을 당한다. 교회에서는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내 기준에 틀렸다고 해도 말할 필요없다. 기다리면 된다.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생명으로 살고 있으면 생명되신 그리스도께서 하신다. 이것을 체험했다.

누가 그랬다. 교회가 어려운데 사례비를 주려야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주리라고 하면 주리고, 더 주라고 하면 더 주는 것이다. 내 기준에 안맞아서 교회의 재정을 주리면 사탄이 하는 것이다. 교회는 생명으로 나온 것을 하면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다. 가다리라는 것이다. 인간 기준에는 못 기다리고 즉각적으로 말한다. 틀렸다가 아니다. 인간에서 나온 것은 생명이 아니기에 사탄의 공격을 막을수 없다. 그래서 재앙이 따라온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힘이 없다. 교회는 생명공동체이다. 생명에서 나온 것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러면 된다.

 

서론

세계 교회가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과 반복되는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구원받으면 생명으로 살면되는데 틀린 것으로 산다. 틀린 것을 발견해야 한다. 내 중심, 내 기준, 수준으로 한다. 기껏해봐야 내 수준, 기준에서 나오는 것은 창 3, 6장이다. 내가 하나님되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래서 회의를 잘 해야 한다. 중직자회의, 당회든 그렇다. 어렵다고 어려움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면 된다. 왜 기다리는 것인가?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니 임하시면 땅끝까지 증인되는 것이다. 내게 안 맞아서 하는 일은 고치면 되는데 저주와 재앙이 임한다. 틀린 일이다. 임마누엘이 안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믿음에서 안된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함께 하심이다. 붙잡는 것이다. 내가 안 맞아서 하는 말이다. 올바른 상식에서 하는 일은 사탄을 못 막는다. 생명밖에 없다.

교회는 대단히 좋은 것으로, 바르게 하려고 하는데 저주와 재앙은 안 무너진다. 세상에서 나온 것이기에 맞게 하는데 쪼개진다. 땅끝까지가 안된다. 권능과 힘이 없어진다. 목사님이 과격하게 말한다가 아니다. 경험했다. 내게서 나온 것으로 살다가 망했었다. 틀린 것이 아니다. 옳은 것이었다. 나를 살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복음앞에 선 것이다. 사탄을 알아야 한다. 사탄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틀린 기준이다. 이것으로 살면 사탄을 못 막기에 다른 것을 잡는다. 잡을 것이 없다. 힘이 빠진다. 그래서 세상과 똑같은 것을 잡는다. 그것을 행 13, 16, 19장이라고 한다. 그 결과는 후대에게 들이닥친다. 구원만 받았을 뿐이지 구원의 축복을, 내 안의 생명을 못 누린다. 힘이 없다. 사탄을 모르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마지막 메시지를 하셨다. 사탄의 마지막을 보라는 것이다. 생명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40일 동안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성도인데 사탄의 마지막 공격목표로 정했다.

내가 하는 일이 틀렸다는 것을 보아야 다른 것을 못 잡는다. 오직 생명만 잡는다. 그런데 생명에서 안 나온다.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못 보면 다른 것을 잡는다는 것도 모른다. 개인의 저주 불신자 6가지가 온다. 불신자와 똑같이 산다. 겨우 먹고 사는데 세상에 종노릇한다. 세상을 리드하지 못한다.

지금 좌익들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남한이 망하기를 속으로 바란다. 겉으로는 아닌척 하는데 그렇다.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은 세계로 나오게 해야 한다. 교회안에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구원 못받은 사람이다. 사탄을 이롭게 한다. 이런 자들이 많다. 찾아내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리는 것이다. 교회는 옳은 말을 하다가 무너진다. 싸움질한다. 자신들이 볼 때 옳다고 하는데 맞는 것은 오직 생명이다. 후대, 세계복음화를 보는 사람이 생명이다.

다 끝내놓고 마지막에 말씀하신다. 다 이루어놓았는데 마귀가 살아서 공격을 하는데 후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모르게 한다. 그래서 기다리라. 그래서 믿어야 한다. 안 믿는 것은 내 기준으로 사는 것이다. 불신앙은 우리의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다. 똑바로 살라는 것이다. 생명안에서도 똑바로 살고, 옳고 그름을 말할수 있다. , 생명아닌 틀린 것을 잡으면 다른 것을 잡고 후대는 틀린 것으로 산다. 세상에 종노릇하는 저주가 임한다.

창세기 3, 6, 11장의 틀린 것을 믿고 사도행전 13, 16, 19장의 다른 것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불신자상태 6가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후대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힘을 잃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감람산의 언약을 주시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요? -

 

1. 오직의 흐름 왜 오직이라고 했나? 사탄을 무너뜨리는 것은 내 기준,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내 힘이 필요없다. 유일한 것은 오직 생명,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다. 이것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기 3장 문제의 답으로 창세기 315절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 흐름을 알고 기다리면 됩니다. - 3:15을 어떻게 보았는가? 3:15에서는 뱀에게 들어가서 역사했다. 여자의 후손을 뱀에게가 아니라, 뱀 속의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뱀 속에 들어가서 뱀속에서 아담과 하와의 기준을 건드린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었다. 그렇게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사탄이 창 6장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아내를 삼았다.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네피림 저주에 빠지니까 구원의 방주의 언약으로 연결된다. 그것이 창 12장의 가나안으로 점점 증가한 것이다. 개인에서, 사회로, 국가로 연결된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사탄이 창 3장 기준, 6장 기준으로, 11장 명예, 성공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사탄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네피림의 저주에서 구원 방주의 언약으로 연결되었고,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유월절 역사까지 이어졌습니다. 나아가 이사야 714절의 언약과 마태복음 1616절의 고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세 가지 근본 재앙을 해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회복하고 그 흐름 속으로 들어갈 때, 교회가 살아나는 응답을 보게 됩니다. - 모든 인간사속에 근본 세가지로 숨어있음을 보아야 한다. 사람말은 참고해야 한다. 사람의 말을 듣고 혹한다면 자신을 참고해야 한다. 팔랑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이 말, 저말에 혹한다. 왜 그런가? 근본을 못보면 그렇다. 그러면 사람의 말에 끌리는 말에 참고하는데 근본을 보면 현혹되지 않는다. 부러워할 사람도 없다. 부러워한다는 것은 근본을 못 본다는 것이다. 반대로 무시당하는 것이다. 사탄은 근본 세가지를 모르게 한다. 개인, 공동체, 국가에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필요로 발견되면 유일성의 응답이 보인다.

 

2. 유일성의 흐름 - 내 것이 유일하다가 아니라, 생명속에서 나온 것만 유일하다. 흑암이 무너지고 저주, 재앙이 무너지는 것이다. 생명을 어떻게 누리는가?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놓친다. 놓치는 이유는 내 기준, 수준과 안 맞아서이다. 생명누림을 기도로 가르치셨다. 6:33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리라고 했다. , 주기도문으로 가르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누리도록 예수 이름을 가르치셨다. 예수 이름을 가진 사람을 전도자라고 한다. 생명을 누리는데 내 기준이 아니다. 예수 이름으로 누리는 것이다. 이름으로 손해나고, 이익받았다고 해도 기다리는 것이다. 예수 이름에 역사하시기에 자랑거리가 아니다. 되도, 안되도 그렇다.

이 언약의 흐름 속에 있을 때, 유일성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성경의 Remnant 7(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사, 이사야, 바울) 역시 모두 이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 구약이든, 신약이든 렘넌트 7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졌다. 모세도, 요셉도 항상 그 이름 앞에 만군의 여호와가 붙는다. 하늘보좌를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바울이 만물이 무릎을 꿇는다고 했다. 이것을 못누리게 하는 것은 사탄이 심어놓은 12가지 기준이다. 이것으로는 다른 것을 붙잡지 예수 이름은 못 붙잡는다. 예수 이름이 믿어지면 흑암이 무너진다. 류목사님이 발견만하면 끝난다고 했다. 흑암속에서 하던 것이, 다른 것을 했음이 발견만 되면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동시성의 일이다. 예수 이름으로 하시는 것이다. 믿어지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마가다락방에 임한 불같은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유일한 응답을 주셨으며, 흩어진 사람들이 15개 나라에서 모여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 전도라는 것이 오직 복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유일성이다. 이것만 사람을 살릴수 있음이 보이니까 전도를 했는데 이상한 것이 잘했다, 못했다의 후회가 없다. 유일성의 응답이다. 그리스도안에서 나오는 것이 유일성의 응답이다. 이것이 지속된다. 내 수준과 상관없이 되어진다. 흑암이 무너진다.

어제도 현장에 가서 영접을 했다. 아무 말도 안했다. 세가지 문제, 세가지 답만 말했다. 전도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그 부담이 없어졌다. 그것이 유일성이다. 전도가 부담이 되면 내가 보기 쉬운데, 편한 쪽으로만 간다. 유일성의 응답을 보면 남이 안 가는데를 간다. 내 기준과 상관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도는 내 기준으로 했음을 보이는 것이다. 영적사실로만 안 한 것이다. 유일성의 응답은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는 영적사실이다.

이 흐름을 따라 삼천 제자의 문과 세계를 살릴 참된 헌신의 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흐름이 날마다 성전에서, 집에서 우리를 통해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만나는 사람을 주시하고 내가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라. 그 사람과는 상관없다. 유일성의 응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재창조의 응답,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다. 설득해도 소용없다. 허투루 얘기해도 복음만 말하면 듣는다.

 

3. 재창조의 흐름

유일성의 응답을 체험할 때, - 나에게서 체험해야 한다. 현장에서 체험하지 말고 내 현장에서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재창조의 힘과 흐름이 나타납니다.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전달되었을 때,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했던 일이 그 증거입니다. - 우리는 영접시키고 끝나는데 하나님이 왜 앉은뱅이를 예비하셨나? 예루살렘의 전도의 확실한 문이다. 전역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전체를 볼때의 그 사람이다. 복음 깨달았다고 하면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배후를 보아야 한다. 그러고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앉은뱅이의 운명이 재창조된 것입니다. 이 흐름은 이스라엘 전체를 뒤집었습니다. 이후, 버려진 땅 사마리아가 살아나고 핍박자 바울이 회심하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 이 흐름이 안디옥 교회에 전달되어 최초의 선교사팀을 파송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재창조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 솔직히 말하는 것이 지금 우리 교회는 영접운동만 해서 다음을 안 들었다. 속았던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받기로 예비하시고 전체를 예비하셨다. 1:5 열방의 선지자로 선택하신 것이다. 내가 사탄에게 잡혀서 시간표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롬 16:25 나의 복음과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에 감추어졌다고 했다. 복음과 세계복음화가 나와 안 맞은 것이다. 눈이 열리면 세계복음화의 축복이 임한다.

 

우리에게 재창조의 일어나도록 말씀을 주셔서 수준, 기준에 속아서 잡혀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역사해주셔서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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