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부] 나는 선한목자라

복음에 빚진자 | 2018.06.03 17:22 | 조회 3068

20180603[2] 나는 선한목자라 (요한복음 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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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성경에서 목자라고 할때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영원한 목자되신 예수그리스도이고 두 번째는 목사를, 전도자를 말한다. 이 목사는 양도 되고 목자도 됩니다. 왜냐? 목사도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목사도 양의 입장에서 말씀을 받아야 한다. 핵심에 가서 류목사님의 메시지를 듣는 것은 양의 입장에서 듣는 것이다. 양의 입장에서 듣다보면 성도들에게 증거해야 할 것에 대한 답이 나온다. 그때는 목사의 입장이 된다. 성경에서 말할 때 목자는 두가지이다. 본문에서는 두가지를 말하고 있다.

7절에는

9절에는 양의 입장에서 목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1절이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영원한 목자는 한분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양은 영원한 목자를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가 끝났다는 것과 내 문제를 하나님이 끝내셨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끝내놓고서도 여전히 내 문제로 간다. 그 다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목자가 되어야 끝난 것이다. 이것을 안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옛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끝냈다는 것은 영원한 목자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야 인생을 인도하신다. 내 마음대로, 계획대로 산다는 것은 끝난 것이 아니다. 24시 그리스도가 목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기준대로, 내수준대로, 내 표준대로 안 살겠다는 것이다. 내 수준대로, 기준대로, 표준대로 안 산다는 것은 기준에 잡혀서 살지 않겟다는 것이다. 기준은 있지만 그렇다. 그리스도가 나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육신의 수준대로 판단하지도, 잡혀서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육이 있기에 필요하다. 그러나 영적사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수준이 그리스도가 발견되면 영적사실을 누리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살면서 모든 판단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면 배아프고 시기가 생기는 것은 알고보면 축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못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 당연히 육신을 가지고 배아파서 속상해하면 상처가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 한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라는 싸인이다.

살면서 보니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질도 그래도,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그대로 이다. 옛날에 못했던 것이다. 영적사실이 믿어진다. 그리스도가 나의 영원한 목자이시다. 일거수일투족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준일수도 있다. 영적사실이 일어남이 믿어진다. 예수 이름이 영적사실로 믿어지는 것이 힘이다. 변한 것은 없는데 결과는 달라진다. 생각했던 결과는 되는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결과가 보인다. 그리스도가 목자가 되시는 것이 끝난 것이다. 영적사실이 누려져야 한다. 영적사실이 안 누려지면 전도가 되지 않고 문제도 정복할수 없다. 영적사실을 누리는 것은 약속을 믿을 때이다. 내 수준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지는 것을 그리스도로 끝냈다는 것이다. 그냥 누리려고도 기준에 맞추려고도 하지 말라. 있는대로 놔두고 이기려고도 하지 말고 인정하라. 배아프다고, 속상하다고 인정하라. 내가 해결할수 없다. 우리가 해결해달라고 기도해도 안된다. 인정이 되어야 그리스도가 깨달아진다. 나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배아플 수밖에 없고, 축복이 안될 수밖에 없는 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 보여져야 한다. 나에게는 희망이 없다.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보이면 다른 사람도 같다. 좋다, 나쁘다 말하지 말고 은혜받으라. 말씀의 은혜는 영적사실이다. 발견이 안되면 내가 걸린다. 상대방이 보기 싫은 것이 드러난다. 인정해야 한다. 교회에 와서 시험든다고 인정하면 상대방이 보인다. 똑같은 것이다. 그러면 희망이 없다. 그런데 희망이 있다. 인정이 안되면 희망이 안 생긴다. 형편없는 인간, 불안정한 인간이다. 희망이 없다는 것에 잡힌다. 그래서 인정하면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끝내셨음이 보인다. 끝내심이 보이면 부활이 보인다. 사망을 이기시고 내 속에 들어와 계신다. 망할 존재가 아니다. 내 인생이 새로워진다. 사망을 이기는 인생이다.

내가 보였다. 새롭게 보였다. 여기에서 말라 비틀어진 사람, 희망없이 죽을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니까 십자가가 보였다. 끝내셨다. 인정하지 않고 끝을 내지 않으면 사탄이 쫓아온다. 죽는 날까지 온다. 남을 비난하면 죽는 날까지 쫓아온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좋아하면 쫓아온다. 사탄은 십자가앞에서만 끝난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

부활하신 것은 보좌에 계신 주님이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 내 인생을 하나님의 인생으로 바꾸신다. 내 인생이 아니다. 기준대로 판단하는 것만 내 인생이다. 나는 내 생각, 기준, 수준, 표준이 나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부활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것이다.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성령으로 천국까지 인도하신다. 안 믿어지더라. 믿어보라고 하는데 안 믿어졌다. 그런데 답이었다. 믿을수가 없다. 어떻게 믿겠는가? 그런데 하나는 믿어졌다. 믿어지게 만드는 것이 있다. 내가 안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 믿어지게 만드는 놈이 있다. 모르고 내가 믿음이 없는 줄로 알았다. 믿음이 없게 만드는 존재가 사망의 세력이다. 믿으려고 신앙생활하고 열심을 내려고 했다. 열심히 없으면 안 가고 싶다. tv만 보고 싶어진다. tv10년 동안 안 보았는데도 믿음이 안 생겼다. 믿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존재가 있다. 이런 짓을 해도, 저런 짓을 해도 믿음이 안 생겼다. 예수가 부활하신 이유만 몰랐다. 우리에게 믿음이 안생기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과 이기셨다는 것이다. 생명으로 이기셨다. 죽음을 이긴 증거가 부활이다. 나에게 믿음을 주시려는 것이다.

마귀를 모르니까 믿음을 내 수준으로, 사망의 세력을 모르니까 내 기준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말씀이 힘이 되는데 지속했다. 설교때 은혜받기보다 책복고 은혜받았다. 그래서 출판사를 했다. 책을 덮는 순간 지속이 안된다. 힘도 나는데 지속이 안되었다.

예수가 죽고 부활하심은 나 때문이 아니라, 내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셨다. 내 문제 때문이다. 불쌍히 여기신다. 내 문제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고 부활하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열심을 냈는데 안되었다. 그러다가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근거를 보았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근거를 잡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사탄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못 믿게 만드는 것을 모르는데 하나님을 알수 없다. 하나님이 아닌 흑암이 무너지는 근거를 잡았다. 성령이 역사하는 근거를 잡은 것이 말씀잡은 것이다. 근거가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흑암을 무너뜨리는 것, 성령이 역사하는 근거가 믿음이다. 그때부터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맞는 것이ᅟᅡᆮ. 16:16이 내것이 되었다. 이 고백에 하나님이 하시는 약속이 믿어졌다.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리니... 안 믿어지던 것이 반석같아졌다. 근거는 흑암을 하나님의 아들, 십자가, 부활로 하셨다. 그때부터 내 기준, 수준, 표준도 끝난 것이다. 기준이 있지만 사탄이 틈타지 못하고 수준이 있지만 돈을 벌려고 살지만 틈타지 못한다. 돈버는 목적이 바뀐다. 목회하는 목적, 사는 이유가 바뀐 것이다. 저주를 막는 것이다. 인생의 저주를 막으려고 근거를 주신 것이다.

그렇게 믿음이 갈등하고 기복이 심한 데에서 근거를 잡았다. 사탄이 무너진 근거, 성령이 역사하시는 근거를 잡았다. 변하지 않는다.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행위로 아니다. 똑같은 믿음이다. 다 똑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나의 근거이다. 보이지 않는 근거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사실을 보이게 말씀으로 주셨다. 근거를 붙잡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불신앙의 흑암이 무너진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근거를 잡아야 한다. 근거를 잡는 것이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삯군 목사이다.

근거를 말하지 않는 사람. 복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삯군목자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다른 데로 넘어간다.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율법, 자기 기준, 옳고 그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로 끝내라. 그렇게 살아도 된다. ?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통해서 사탄을 못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몰랐다. 어느날 하나님이 깨닫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셨다. 안되는 것이다. 한계가 오는 것이다. 눌린다. 믿음이 안생기는 것에서 고민이 되었다. 그러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건드리시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없이도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지 않으면 깨달을수 없다. 왜 이러지에서 갈등하던 사람이다. 하나님이 건드리시지 않으면 알수 없다. 하나님이 건드리시지 않으면 정죄할수 없다. 정죄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른다. 문제 보는 것이다. 판단할수 없다. 그래서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자신의 기준을 잡고 속이는 흑암이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로 약속하신 성령으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이 말, 저말하는 사람을 보면 동조하고 싶지 않다. 그럴수도 있다. 끝났다. 여러분이 볼때는 나쁜 사람일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로 끝났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와서 시험드는 것은 복음 때문이 아니다. 싸우는것도 복음때문이 아니다. 행위 때문에 싸운다. 복음 때문에 싸운다면 응답받고 흑암이 무너진다. 이단과 마귀와 싸워야 한다. 교회에서 수군수군대는 것은 그리스도로 안 끝내서 그렇다. 다른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다른 것을 하면 절도이다. 그리스도를 말하지도 않으면서 헌금 말하면 강도이다. 그리스도를 알면 다 주께로 돌아간다. 그래서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안되면 절도, 강도이다. 그런데 모른다. 흑암 때문이다. 상대방이 흑암에 속아서 그렇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다. 흑암을 무너뜨릴 권세는 내게 있다. 기도해야 한다. 다른 데로 들어가는 것은 절도, 강도이다. 보여야 한다.

8절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만이 그리스도이다. 먼저 온 것은 아니다. 예수만이 내 인생의 저주를 끝냈다는 것이다. 기준대로 가지 말라. 인정하라. 없앨수는 없다. 거기에는 사탄이 쫓아온다. 복음이 아니기에 나쁜 것은 아닌데 저주가 온다. 복음이 아니기에 그렇다. 나보다 먼저 온 것이다. 예수만이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만이 우리 인생의 저주를 끝내셨다.

10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성육신, 십자가, 부활하신 예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일이 일어난다. 예수만이다.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다. 다른 것은 도둑이다. 도둑이 오는 이유는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이다. 복음은 말하지 않고 그렇다.

그리스도를 끝낸 사람이라면 복음을 말하지 않을지라도 성경에서 찾아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율법, 행위를 강조하더라도 성경을 통해서 찾아내는 것이 그리스도로 끝내는 것이다. 그의 행위, 버릇도 문제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끝내면 하나가 보인다. 복음 아닌 것들로 저주가 일어난다. 계속 흑암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니까 복음이 아닌 것은 없앨수 없기에 인정하고 그리스도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얻었다면 더 풍성해 져야 한다. 생명이 아니고는 우리 인생을 이길수 없다. 생명을 얻게 하고로 끝나는데 더 얻게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이유는 그리스도가 목자가 되는 것이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두가지를 보았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 내 중심의 것이다. 옛사람이다. 문제가 오면 다 버리고 싶은 것은 내 마음에 안들어서이다. 도망가고 싶었다. 두가지를 다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붙잡으면 신기한 일이 보인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것이 보인다. 그리스도로 끝나면 행 1:1, 3, 8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것에서 사람들이 귀하다는 것이 보였다. 나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 보인 것이다. 1:8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이다. 모든 흑암을 무너뜨리시고 하늘군대를 움직이시고 나를 미래로 가게 하신다. 복음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씩 모인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보였다. 응답을 거꾸로 받는다. 가기 싫을 때 간다. 지금까지 다닌 것은 내 마음에 좋은 것만 했다. 가기 싫은 데 간다. 끝났다. 가기 전에 누린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일어난다. 복음 들을 사람이 일어난다. 자기 인생의 방향을 맞춘다. 공부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다. 가기 좋을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어떨지 모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가? 이것이 보였다. 가기 싫은 것도 그리스도로 끝냈다. 끝내놓고도 안 간다. 가진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예비된 제자가 일어나고 듣는 사람도 방향이 맞춰진다. 목적이 달라진다.

현장에서 확인했다. 공부를 잘하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고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세계복음화라고 한다. 예수 이름으로 한다고 했다. 예수 이름이 하나님 나라라고 한다. 안 믿어지면 말할수 없다. 믿어지니까 하는 말이다. 복음이 복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나로 누리는 것이 아니다. 복음으로 누리는 것이다. 나는 희망이 없다. 성령이 내주하시는데 완전하신 것은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깨닫게 하시고 천국까지 이르게 하시면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되게 하신다.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모른다. 성령은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신다. 복음으로 복음되게 하신다.

양의 특징이 있다. 군대생활을 대관령에서 했다. 삼양에서 하는 목장이다. 1년 동안 파견을 나간 적이 있다. 천하에 더러운 것이 양이다. 오만 똥칠이다. 씻겨도 소용없다. 양은 숏다리이다. 털가지 합치면 어마하다. 다리는 짧아서 웅덩이에 빠지면 다리가 부러진다. 잘때도 뭉쳐서 잔다. 눌리면 한 두 마리는 죽는다. 누르면 가만히 있다. 목자가 아닌 사람이 와서 털을 깎아도 가만히 있다. 누가 와서 건드려도 그렇다. 양에는 염소를 넣어둔다. 서너마리를 넣어둔다. 염소는 뿔달고 치고 받는다. 양이 몰려있으면 뿔에 받치기 싫어서 도망가다가 웅덩이에 빠지면 죽는다. 목자가 와서 지팡이를 걸어서 건진다.

눈도 약하다. 바로 앞에 있는대도 모른다. 그런데 귀는 밝다. 어둡고 귀는 밝아서 이소리, 저소리를 듣는다. 양의 뒤를 보고 따라가다가 다른 짓하다가 놓치면 낙오가 된다. 어디를 가도 모른다. 그래서 돌아다니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 아니면 목자가 찾고 건진다. 그것이 양이다. 양은 목자가 염소를 활용한다. 사탄을 활용한다. 사탄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두셨다. 욥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사탄이 발견이 되어야 믿음이 생긴다. 멸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이시다는 믿음이 생긴다. 양의 특징이다. 항상 염소를 둬야 한다. 사탄에게 속으면 한계가 와서 눌리고 힘들어한다. 양이다. 하나님이 사탄을 이용해서 사탄을 멸하신 그리스도로 답내게 하시는 방법이다. 양을 13절에

13 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양도 안다는 것이다. ? 귀는 좋다.

우리나라 목동은 아침에 끌고 나가고 저녁에는 데리고 들어온다. 유행가를 틀어준다. 그러면 우리 목자라는 싸인이다. 다른 놈이 와서 다른 노래를 부르거나 똑같은 노래를 부르면 듣는다. 마귀가 아무리 소리쳐도 못 따라간다. 마귀를 멸하신 그리스도께로 간다. 사탄을 알아야 한다. 사탄을 모르는 복음은 믿음이 안생긴다. 신념으로 빠진다. 지속이 안된다. 믿어지지 않는다. 믿어지는 것은 하나이다. 사탄을 아는 복음이다. 사탄을 모르는 복음은 성령의 역사가 안 일어난다. 똑같은 복음인데 영적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믿음이 안 생긴다. 양이 아는 것이다. 사탄을 말하는 복음을 말하면 양이 듣는다. 믿음이 안생기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다.

4절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도망가는 사람을 뭐라 하지 말라. ? 우리 양이 아니다. 우리 교회에서 세계복음화에 방향맞출 사람이 아니다. 뭐라 하지 말라. 이 시간표까지만 필요하다. 우리 강단에서 생명을 걸고 인생마칠 중직자가 누군가? 도망 갈 사람을 말하지 말라. 자기 양이 아니다. 전 세계는 사탄을 아는 영적 사실을 말하는 복음이 아니고는 자기 양을 찾을수 없다. 자기 귀에 맞춰서 산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 것이다.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얻는다. 성령이 내주하신다. 성령도, 사탄도 안보인다.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근거이다.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꼴을 얻는다. 응답받는다는 말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다. 흑암이 무너지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 사탄이 무너지는 것을 모른다. 예수가 없는데 성령의 역사도 없다. 예수가 구원이며 응답이다.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는다.

2절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목사를 말한다. 문으로 가는 이이다. 예수로 말미암아 답을 얻은 사람이 목자라는 것이다.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왜 자기 양을 불러내는가? 양이 양을 인도하는가?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할만한 가치가 있다. 자기 목숨을 주셨다. 자기 생명을 버리셨다. 그 속에 자신의 생명을 두셨다. 이 양들이 최고의 가치인 것이다. 못났어도 최고의 가치이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다. 여러분의 가치는 예수가 죽을만큼의 가치가 있다. 부활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 보좌에 앉으실만큼의 가치이다.

내 모습은 의지할 필요없다. 이것이 되어야 한다. 그분이 목술걸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을만큼 가치가 있다. 나의 가치를 모르고 산다. 내가 하나님의 자존심이다. 그만큼 가치 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자신의 형상이다. 그래서 살리셨다. 부활하셔서 내 안에 들어오셨다. 정복하게 하신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보좌에 함께 앉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상이다. 나를 찾기 바란다. 예수님이 지키시는 가치, 끝까지 사랑하는 이유는 자신의 형상이다.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으실 정도, 보좌에 앉으실 정도로 가치있다.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응답받아야 한다. 그 예수가 나의 현주소, 위치이다. 이것이 아니면 나의 위치를 찾을수 없다. 그가 없이는 말씀을 잡을수 없다. 말씀을 근거로 나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아들을 통해서 보고 십자가로 나의 위치를, 부활을 통해서,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통해 나의 위치를 보면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보인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나를 통해서 렘넌트, 후대를 세우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 내 위치를 찾았는데, 소속을 찾았는데 사는 이유를 찾았다. 중직자가 여러분의 위치가 아니다. 직분이 아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중직자이다. 그리스도로 끝내야 한다. 이말,저말하지 말라. 그분이 알아서 하신다. 나도 말 안한다. 그런 말 할필요없다. 기준에 맞는 말이다. 생명, 복음이 아니다. 끝났다. 지나갔다.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찾으라.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다.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목숨버리시는 이유를 말한다.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3장에 빠진 인간을 다시 찾으셔서 원래 창조하신 인간으로 회복하신 것이다. 이것을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통해서 해야지 믿는다고 해도 영광받지 않으신다.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이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사탄에게 못 견뎌서 뺏기는데 예수님은 아니다. 사탄을 정복하고 이길 권세를 회복하시기 위해 다시 재창조하신 분이시다.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진짜 계명이다. 계명은 지키는 것이 아니다. 누리는 것이다. 예수님을 누리는 것이다. 승리하기 바란다.

나를 찾으라. 내 현주소, 위치를 찾으라. 다른 사람을 살리려면 나를 찾아야 한다. 위치를 찾아야 한다. 그 속에서 나의 현주소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필요한 사람을 붙이신다.

 

 

선한목자가 되신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그리스도가 하신 일속에서 나를 볼수 있도록 눈을 여시고 말씀주셔서 모든 성도가 복음아닌 것에 빠져살지 않도록 복음속에서 나를 찾고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찾는 눈이 열리고 사는 모든 현장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나의 현장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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