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부] 가정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에 빚진자 | 2018.01.14 17:16 | 조회 2948

20180114[2] 가정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창세기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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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여러분은 한주간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는 뻔하다. 허겁지겁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안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루 종일 살면서 반드시 봐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을 못 보면 사는 것이 세상과 똑같이 살아간다. 한주간동안 은혜는 받았는데 일상생활에 돌아가면 왜 안되는가? 은혜는 새벽마다 받는데, 말씀을 나누고 예배를 드리면 은혜받는 것 같은데 왜 일상에서는 안되는가에서 한 말씀으로 알았다. 1:20-21절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신데는 원리가 있다. 1:20-21절에는 반드시 물고기는 물에서 살고,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창조원리였다. 그런데 수십년에서 수만년이 지나도 안 바뀌는 것이 창조원리이다. 당연히 물고기는 물에서 산다. 그 말씀을 보다가 진짜 창조원리는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못 보는 것이 죄이다. 물고기만 보는 것이다. 물고기는 물에서 있게 하셨다. 사람도 창 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따. 사람들,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것만 안다. 그런데 남자가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창조원리는 맞는데 인간은 영적존재이기에 거기에서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안 산다. 남자를 보면 보이는 것으로 평가한다. 우리 사모는 그렇게 보았다. 여자를 보면서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다.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그를 만드셨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성을 보면서 설랜다. 하나님은 안 보인다. 아일이에게 여자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따라한다. 할아버지는 남자라고 알려줬다. 왜 이 말을 넣어줬나?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람이 할수 없다. 부모가 아무리 가려먹어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것은 하나님만 하신다. 남자가 중요한 것이, 여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이것을 못보게 하는 것이 창3장이다.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창조원리이다. 아일이에게 여자라고 하고는 여자를 누가 만들었을까? 아빠와 엄마가 만든 것이 아니라,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를 만든 시작이 하나님이시다.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꾸리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가정의 본질이다. 가정의 본질을 놓치면 상대방에게 의지한다. 3장이다. 결혼해서 잘 사는대도 죄속에 있다. 열심히 하는 일속에서도 하나님이 보여야 하는데 안보이니까 죄가 되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힘이 나야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힘이 아니다. 사탄으로부터 오는 힘이다. ? 하나님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원받았어도 자신의 일이 천명으로 안 보이면 죄이다. 못보게 하는 것이 죄이다.

여러분 자신에게서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 여자, 남자를 만드신 것은 하나님 형상으로 만드셨음이 보여야 한다. 사람들은 거의 멋있다, 이쁘다라고만 하지 하나님 형상만 안 보인다. 그렇게 안보이도록 사탄이 길들인다.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그렇다.

어떤 사람이 남편은 병원 근처에 살면서 누가 숟가락 놓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곡하는 소리, 죽는 소리라는 의미이다. 죽는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다.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안보인다. 하나님이 누려져야 한다. 하나님이 못 누려지는 것이 일상속의 죄이다. 하나님이 못 누리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인간은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누려져야 한다. 어떻게 누려지는가? 누릴수 없는 상태를 창 3장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가정을 주시고 누리게 하셨는데 못 누리고 싸우고, 화목하고, 폭행이 가득하다고 한다. 때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보이겠는가? 여자라고 하면 창 3장 속에 있으면 종처럼 대한다. 맞는 사람은 맞을수록 비참해진다고 한다. 때리는 상대방으로 인해 비참해진다고 한다. 이혼하면 되는데 무서워서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빨리 진정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래서 수긍하는 척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 맞는다.

내가 윽박지르는데 댓구를 안하면 더 윽박지르고 더 화가 난다. 그런데 같이 맞받아치면 순간 움찔한다. 사나워졌다고 했다. 복음을 누리는만큼 더 사나와진다고 하니까 더 사나운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에게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수 있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볼수 있도록 만드셨다. 그런데 못 본다. 영원한 문제가 그 속에 있다. 갈등은 영원한 문제가 잡은 것이다. 자기 힘으로 안된다. 마음으로는 머리로는 굴뚝같은데 안된다. 갈등이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안된다. 사람들이 모르는 영원한 죄이다. 영원한 죄가 잡으면 사람을 만드신 것을 모른다. 가정의 본질은 하나님이시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이 결혼시키신 것은 하나 때문이다. 하나님 형상 때문이다. 이것이 결혼이다. 형상을 회복해야 정복하고 다스린다. 우리가 할 것은 말씀으로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과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을 말씀으로 누리는 것이다. 말씀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말씀은 두가지이다.

왜 류목사님이 말씀을 행 1:3절이라고 한다. 말씀은 영적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표현한 것이 말씀이다. 그 말씀이 성취되어서 왔다. 그것을 알려주시려고 오셨다. 이 그리스도가 아니면 알수 없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눈에 안보이는 세계, 성령, 보좌,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되어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내가 살아가면서 말씀묵상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이다. 말슴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말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상대방에게 듣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온 세계에 충만한 것이 말씀이다. 성령이 충만한 자가 맞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여야 한다.

돈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벌수 있도록 먹을거리를 주셨다. 일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이 안보이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서 안 보이면 나는 창3장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찾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에서 찾는 것이 내가 하나님 되는 것이다. 나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만족시키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죄속에 있는 사람이다. 잘해야 한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잘해야 한다. 육신의 것은 잘되는 것이지만 그것으로는 안된다. 게을러서는 안되는데 게을러서 되는 것이 있다. 영원한 문제는 열심과 게으름과는 상관없다. 영원한 문제를 보이는 것이 말씀이다. 말씀이 아니고는 깨닫게 할수 없다. 말씀을 봤다는 것은 내 문제, 내 잘못과 상관이 없다. 열심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있는 영원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영원한 답을 창세전에 주셨다. 영세전에 예비되었기에 답을 영세전에 주신 것이다. 변할수 없는 것이다. 영세전 문제와 답은 변하지 않고 영원 후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내 수준에 걸리지 않는다. 내 수준에 걸리면 방황한다. 기도는 영세전 답을 붙잡는 것이다. 내 수준의 기도는 여기, 이곳, 이 시간이라고 한다.

바쁘다 보니까 교회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없었다. 올해는 기도를 바꿔야겠다고 했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이 영원한 세계이다. 영원한 축복을 놓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된다. 게을러도 된다. 영원한 축복이다.

나를 게으르게 하는 영원한 문제와 축복을 모르면 게으르고, 열심도 본질이 없는 것이다. 게으르면 게으른 것에 본질이 있어야 한다. 열심을 내는 것에도 본질이 있어야 한다. 본질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 인간은 모든 것을 통해서 본질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만드셨다. 본질을 못 찾으면 하고 있는 모든 일에서 원인만 없게 된다. 영적원인만 없다. 공부도 영적인 원인만 없이 한다. 기도도 그렇다. 나도 영적원인만 없다. 금수와 같은 것이다. 오히려 애완견보다 못하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도 안한다. 걱정속에서 원인을 보아야 한다. 모든 것에는 영적원인이 있다. 출발에는 영적원인이 있다. 원인을 알면 하나님의 결과를 알게 된다. 삶에서 일어나는 것은 믿을 때 일어난다. 인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나를 이땅에 과정으로 두셨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 그렇게 만드셔서 우리 아니면 일 안하신다. 사람에게 통치할 권세를 주셨다. 하나님 형상을 회복할 남자와 여자에게 주셨다. 착각은 내가 잘해야 한다, 못하면 안된다가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오늘부터 세가지 본질을 회복하라.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이다. 이것이 요셉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사탄이 나간 것이다. 본질이다. 본질은 불신자는 악령이 함께, 신자는 성령이 함께이다. 두가지 밖에 없다. 껍데기는 어떻든지 두가지이다. 악령과 성령이 사람에게 임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놓치면 악령이고 회복되면 성령이다. ? 성령으로만 알수 있다. 고전 2:10 오직 성령으로만 알게 하신다. 악령이 있는 자는 인간의 문제가 영원한 문제인데 남 탓만 한다. 악령에 잡힌 자는 남의 것만 보인다. 본질이 안 보이고 껍질만 보인다.

3장에 잡힌 사람은 껍데기로 보기에 본질로는 모른다. 3장은 속은 못 본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본질이 안보이기에 거짓이다. 우리의 본질은 성령인지, 악령인지이다. 성령과 악령은 공존할수 없다. 악령은 없다. 그러나 사탄이 심어놓은 길들여진 기준이 있다. 육체가 체질화된 것이 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 성령으로 하는 일이다. 내 인생속에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못봤다. 사탄이 가는 길이 아니라, 복음으로 가는 길이다 행 1,2장이다.

1장은 우리 인생이 어디서 시작하는가이다. 기도이다. 2장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어떻게 일하시는가이다. 3장부터는 인생의 가는 길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 사도행전이다. 이 속에서 나를 못 보면 인생을 놓친다. 자기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고 탓만 한다. 은혜받은 사람만 자기 잘못했다고 한다.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재수없이 걸려서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이 착한 사람들이다. 그보다 더 나쁜 사람들은 밖에서 활개치고 있다. 껍데기로 보면 재수없이 걸린 것이지만 속은 영원히 지옥가는 것이다. 하나님 형상 잃었다. 사탄에게 빼앗겼다. 죄이다. 그래서 성령받은 사람이 맞다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이다. 본질이 보인 것이다. 가정에서이다. 요셉의 본질은 원래 고자질하는 것이다. 37: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아버지의 아내들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있었다. 아버지의 아내들과 배다른 형들이다. 요셉이 봤을때는 형들이 대노할 일을 하고 있었다. 요셉이 볼때는 아버지의 기준으로 볼때는 잘못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본질이 보였다는 것이다. 형들이 한 일을 고자질 한 것을 창 3장으로 본 것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일이다. 껍데기만 보고 고자질했다. 이 껍데기만 본 고자질은 상대방이 일어난다. 생명은 생명을 일으키고 사망은 사망을 일으킨다.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아버지에게 인정받았다. 거기에 옷 까지 좋은 것을 입혔다. 그러니 형들의 마음이 불편했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형들을 붙잡은 창3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말도 불편한 것이다. 사모는 금방 안다. 된장찌개를 끓이고는 묻는다. 맛있냐고 하면 맛있다고 한다. 그러면 재차 맛있다는 말이 성의없다고 한다. 맛이 있는데 지금은 관심이 없기에 그렇게 얼버무리는 것이다. 퉁명스럽게 말한 것이다. 할 일이 없다면 아마 자랑할 것이다. 칭찬할수 있다. 그런데 다른 일이 있기에 그렇게 얼버무리는 것이다. 그랬더니 성의가 없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다. 자근자근한 사람이 아니다. 90도로 인사안한다고 하는데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속에 무엇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강하게도 말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껍데기만 봤다면 상처만 받았을 것이다. 본질을 본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잘한다고 하는데 보이면 왜 기도하는가? 힘들어서 그런가? 껍데기를 보면 기도 잘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교회의 기둥이라고까지 했다. 힘들때였다. 왜 그런지 모르고 답은 없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류목사님을 만나고 답이 나왔다. 그리고 진짜 기도를 회복했다. 본질을 본 것이다. 본질을 보면 힘든 이유를 보았다. 못 보고 말하면 거짓이다.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심을 말하는데 형들은 자신의 기준대로 말한다.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생명을 말해주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 더 드러난다. 이것이 응답이다. 메시지를 듣고 복음을 들으면 복음 아닌 부분이 더 드러난다. 그래야 복음으로 안 살았음이 보인다.

우리가 편안하고 아늑하게 산 것은 내 기준이다. 바울이 복음 깨닫고는 삶이 더 힘들어졌다. 기준 일 뿐이다. 껍데기는 계속 힘들어진다. 죽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바울은 한번도 힘들다고 하지 않았다. 본질을 보았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다. 나를 유익하게 하던 것은 배설물이다. 우리는 이것이 힘든 것 같은데 행복한 것이다. 이 행복이 없으면 육신의 힘든 것을 못 넘어선다. 이 본질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영세전문제임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세전의 답을 그리스도로 주시고 영세전의 축복을 주셨다.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보여지면 그때부터 정복하고 다스려진다. 모든 것이 상처가 안된다. ? 상처도 복음 아닌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다. 왜 드러내시는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복음되라는 것이다.

보다가 놀란 것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누명을 쓰고 감옥갔다. 거기에서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모든 것의 본질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형들이 원망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창 45:7-8 하나님이 앞서서 보내셨다고 했다. 형들이 그런 것을 보았다. 말바꿔서 복수하면 안된다. 3장속에서는 개혁도 복수, 적폐도 복수, 갱신도 복수이다. 3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장 아래에서는 그나저나이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야 본질이 보인다. 성령이 내주하셔서 깨닫게 하셔야 본질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왜 예수 이름만 말하냐고 한다. 예수 이름은 애기때나 잡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다고 다른 의미가 아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예수 이름밖에 없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감추인 이름으로 주셨다. 예수 이름으로 내 본질을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이다. 찾기만 하면 여러분에게서 행 1:3절이 되어진다. 하나님 나라이다. 그것이 나의 본질이다. 하나님 나라가 성령이 임하신 것인가? 성령이 임하시면 따라오는 것이 천사가 따라온다. 그러면 하는 일이 사탄을 무너뜨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가지가 항상 같이 온다. 내가 사는 것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나에게 안되는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불신자 때에 가지고 있었던 본질이다. 이것으로 살면 망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한다. 이름속에서 해야 한다. 그 일은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자꾸 우리는 말씀을 외우는 쪽으로 잡고 그리스도를 아는 쪽으로 간다. 이미 그리스도를 안다. 그리스도는 이미 완성되어서 성령으로 내주하신다. 왜 들어오셨나? 내가 하는 일속에 흑암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기도이다. 예수 이름으로 일하고 생각해야 한다.

남자를 보고 하나님 생각을 못하는 것은 창3장 때문이다. 3장을 무너뜨린 것이 그리스도이시다. 삶에서 그리스도가 가장 필요하다. 이 이름을 부를 때 확신이 임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겠다고 했다. 이 사람이 이 이름을 믿음으로 이 이름이 낫게헸다. 사실적으로 믿는 것은 예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을 통해서 예수 이름을 보는 것이다.

본질이 안보이면 껍데기에 맞추게 된다. 껍데기에 복음을 끌어당기면 영적사실은 놓치고 믿음은 흔들린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보이지 않는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안되면 자기 수준에 좋은 것만 좋다고 한다.

영적사실을 아니까 말씀이 마음에 안 와닿고 힘이 안될때도 상관없다. 말씀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약속이다. 자꾸 자기 기준에 말씀을 받지 말라. 변할수 없다. 마음에 안 와닿아도 변하지 않는다.

3. 우리의 본질은 행 1:8이다.

1:8은 하나이다. 세상의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이것을 못보면 못 살린다. 대통령이 잘한다, 못한다를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국가의 우상이 헌법이냐, 대통령제이냐, 바꾸면 된다. 그런데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을 바꾸는 것은 복음있는 성전밖에 없다. 이것이 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이래서 중직자로 세우시고 렘넌트로 세우셨다. ? 아무리 교회가 아름다워도 복음이 없으면 소용없다. 열심을 내는 사람이 많아도, 기도라 끓어도 종교이다. 지역의 우상문화를 바꾸는 것을 위해서 하신다. 내 이름이 있는 곳에 나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기도할 것이다. 예배를 끝내고 기도하라. 철야에도 기도하는 것이다. 본질을 찾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안에서 나의 본질을 찾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안에서 인생의 본질을 찾고 세계복음화를 성령안에서 세상을 살리는 본질을 찾게 하셔서 나의 본질 속에서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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