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부] 복음과 종교의 차이

복음에 빚진자 | 2018.01.28 17:10 | 조회 3188

20180128[2] 복음과 종교의 차이 (마태복음 1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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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두가지를 깨달으면서 늘 시험들고, 상처받고, 걱정하던 것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첫 번째는 복음을 깨달은 것이다. 구원받았다는 것보다 복음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복음을 몰랐을 땐느 열심히 하면 되는줄로 알았다. 할수록 상처를 받았다. 하는데 왜 안될까로 주눅들었다. 그러다가 눈이 열렸다. 복음이 진짜 깨닫는 것은 예수 이름이다. 에수 이름을 아는 것이 복음 누림이다. 예수 이름은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 이름이 없으면 믿음이 안 생긴다. 그 이름을 깨달은 날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흔들리던 내가 반석이 되었다. 의심이 없어졌다. 되는 것과 안되는 것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았다. 늘 상처받던 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알아졌다. 내 인생속에 함께 하심을 복음을 알면서 깨달았다. 예수 이름에 복음의 일이 일어나고 그 이름이 약속임을 알았다. 그때부터 잔소리가 끝났다. 상대방에게 그리스도의 일이 안 일어나고 그리스도가 없어서 나오는 말이기에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

어느날은 하나님이 안 믿어지고 의심만 되었다. 그런데 예수 이름을 믿는 순간 의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의심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약속하심을 잡았다. 그러면 의심에 잡히지 않았다. 발견이 되어야 한다.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수 없다. 하나님이 예수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다. 의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깨달아지면 의심은 항상 있는데 멀어져 간다. 우리는 창3장 사건 이후로 보이는 것을 가지고 살아간다. 보이는 것이 있으면 기쁘고 만족되고 없으면 허전하고 슬퍼한다. 3장 때문이다. 의심은 항상 따라왔다. 예전에는 기도하면 의심이 없어지는 줄로 알았는데 더 깊어졌다. 왜 의심이 없어지지 않는가? 그리스도를 상실했다. 사탄이 빼앗은 것이다. 그래서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아시고 그리스도를 예수로 보내셨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심이 되는데, 상처를 받는데 약속을 믿는다. 복음을 누리는 것인데 복음에 그리스도의 약속이 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다.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내 자신이 상처받아서 초라해지면 남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지고 복수하게 된다. 그런데 복음을 깨닫고 나서는 내가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내가 하나님처럼 된 기준 때문임을 보았다. 이 자존심을 채워주지 않아서 상처받는 것이다.

아일이는 밥먹을 때 온 가족에게 박수치라고 한다. 그래야 자신의 자존심이 올라간다. 행복한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렇다. 그래서 거기에 무언가를 심어줘야 한다. 그러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잃어버려서이다. 찾아주셨다. 3장을 꺾은 예수 이름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이름을 가진 나, 하나님이 만드신 내가 있고, 사탄의 통로가 되는 나가 있다. 재창조된 나를 누리는 것은 예수 이름밖에 없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성령이 들어오셔서 누리는 것이다.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영세전, 창세전에 있던 문제로 생각들지 않는다. 무당처럼 생각한다. 사탄이라고 하는데 영세전은 모른다. 성령이 있는 사람만 알아듣는다. 그리스도 상실한 문제라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성령으로 잉태하신 그리스도로 하셨음을 알게 된다. 그 후 상처받아도 얼마 안간다.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 맞다. 이중인격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기도하는 중에 보니까 나는 삼중인격이었다. 내 안에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가 들어있다. 이것으로, 자기 기준으로 믿으려니까 안되는 것이다. 점치러 오는 사람들이 천주교인, 기독교인이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상처밖에 없다. 예수 이름을 발견했다. 예수 이름이 다, 약속, 믿음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이름이요, 신약은 예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예수 이름을 확신하니까 믿음이 생겼다.

두 번째는 이것을 깨달은 날부터 복음을 누리는 비밀을 알고나니까 기도가 깨달아졌다. 사람들에게 상처도 안받게 되었다. 진짜 기도는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는데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교회의 답을 잡은 것이다. 찾는 순간 교회의 문제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교회의 답은 무엇인가? 성도는 교회이다. 그래서 답을 찾아야 한다. 성령이 내주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답이 있다.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는 답을 찾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누리는 비밀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을 아니까 교회의 답이 보였다.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하는데, 설교자, 말씀을 수종드는 자라고 하는데 무얼까? 24:14절이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그리로 인도하신다. 1:8이다. 이것이 교회이다. 기도이다. 문제가 있다면 행 1:8로 가야 한다. 문제에 잡힌다는 것은 행 1:8을 놓친 것이ᅟᅡᆮ.

목사는 목회하라고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에 다 이루시고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것이 행 1:8이다. 끝난 것을 가지고 기도해봐야 소용없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상처를 가지고 하기에 가지 못한다. 엄청난 축복을 받아놓고 문제에 잡혀있다. 신자가 그렇다. 잡혔다는 증거가 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3장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돈을 사랑하며 6장이다. 물질을 너무 사랑한다.

자랑하며 교만하며 11장이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높인다.

비방하며 남탓만 한다. 3장이다.

아이들이 넘어지면 부모는 넘어진 것을 가지고 방바닥에 혼낸다. 아이가 잘못했는데 가르치기를 방바닥에 호통친다. 3장이다. 자기보다는 남을 본다. 자신의 실수를 가지고 남탓만 한다. 그러면 하나만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본질을 본다. 종교는 껍데기만 본다. 본질을 못 본다. 복음은 본질을 회복시킨다. 자기 안의 기준이 있다. 종교기준이 자기 안에 있어서 본질을 가지고 말한다. 자신의 잘못을 남탓만 한다.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부모가 종이다. ? 3장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하나이다. 뒤치다꺼리하다가 끝난다. 관절염이 많은 것은 자식 뒤치다꺼리하다가 끝난다. 자신이 관절염이 생겨야, 부모 죽으면 안다. 3장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고통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상실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수 없고, 죄를 모르고 사탄에게 잡힌다.

자녀들을 보면 창 3장이다. 자식을 보면 창 3장을 말해야 하는데 더 쎈 창 3장으로 맞받아친다.

자기 사랑은 그 다음에 온다.

3 무정하며 정이 없다. 나에게 잘하는 것에 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3장이 각자가 되니까 무정하게 되는 것이다. 무정천리라고 한다.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상처받는다. 한이 된다. 자기 중심의 증상이다.

모함하며 자신 살려고 모함한다. 정치이다. 법으로 안되는 것을 법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정치학 박사라는 사람을 만났다. 주변머리없이 잘난척을 했다. 정치가 그리스도를 몰라서라고 했더니 그 분이 하는 말이 정치는 종교로, 법으로 안되는 것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 다락방을 안 온다. 복음만 말해야 한다. 답있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아닌 사람도 있기에 조정하는 것이 정치이다. 자기 기준대로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안 맞는다고 까발리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포청천이나 하는 것이다. 재판관이 하는 것이다. 정치는 재판이 하는 것이 아니다. 가기 전에 조정하는 것이다. 없어진다. 원통함을 풀수 없다. 본질이 안 보인다. 껍데기에, 자기 수준에 잡히는 시대가 온다.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선한 것도 없다. 옛날 노래 들으면 안다. 송착식 노래가 좋다. 요즘은 가사도 모르겠다. 욕인지 아닌지 모른다. 시대가 그렇다. 안통한다. 그렇게 간다. 조급함으로 간다.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어떻게 돌아설까?

14절이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리스도를 배웠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문제, 본질을 배웠다. 거기에 거하라는 것이다. 본질을 근거로 주셨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예수에 대해서 증거했다고 했다. 기준은 예수에 대해서 증거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본질을 성경에 기록한 것이다. 그 근거가 변하지 않는 것을 주시고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들로 아는 것이다. 인생의 근본문제를 끝낸 사건을 십자가로 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멸망시키는 사탄을 끄트리시고 내주하심을 부활로 알라. 믿음을 주시고 변하지 않는 반석을 주셨다. 예수 이름이다. 현장은 예수 이름이 없어서 망한다. 예수 이름이 없으면 다 문제에 잡힌다. 안 잡힐수 없다. 예수 이름이 깨달아지면 기도가 깨달아지고 상처도, 문제도, 세상도 두렵지 않다. 예수 이름을 이길 것이 없다.

오늘 본문에는 13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 예수믿는 것을 옳은 말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옳은 말을 하는데 본질은 아니다. 바른말에 사탄이 무너지고 옳은 말에 지옥배경이 없어지고 저주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바른 말로 무너지는 것이 아닌 자기 말로 안되는 문제 때문이다. 목사 딸이 창녀가 되는 것은, 도박에 빠지는 것은 자기 문제로 안되는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똑바로 살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받았는데 옳은 말, 바른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가정에서도 배웠다. 남탓만 하는 주제에 똑바로 살라고 가르친다. 본질이 아니다. 그러니까 옳은 말하다가 억울하게 죽은 것이 세례요한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버려야 한다. 한마디만 하라. 성령이 역사하는 말을 해야 한다. 그 말을 안 하면 입도 헐어야 한다. 깨달은 날부터 말하다가 망한다고 여겼다. 성령이 역사하는 속에서 해야 한다. 성령이 역사하는 답을 가지고 말을 하면 방향도 바뀐다. 껍데기만 보고 말하지 않고 본질을 말한다. 그래서 이해가 된다. 껍데기만 보고 말하면 자기 기준에 걸린다. 옳은 기준인 세례요한 기준이 있다.

더러는 엘리야, - 육신체험을 강조한다. 체험은 육이다. 우리의 육이 느꼈을 때 체험이다. 하나님이 주신 체험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확신하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다. 성령이 역하사는 체험은 확신이다. 하나님이 주신 근거로 온다. 이 근거에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약속하셨다. 엘리야 기준이 있으면 헛갈린다. 알고보면 내가 하나님의 근거를 약속으로 붙잡는 과정이 혼란, 흔들리는 과정이다. 자기 속에 약속이 들어왔는데 체험으로 가니까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된다. 하나님이 완전 흑암이 무너지는 반석같게 하시는 것이다. 근거가 필요하다. 사탄에게 늘 당하는 것을 아시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일하신다고 했다.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예레미야는 낙타무릎과 같은 자였다. 예수님이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하지 않고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신다. 기도가 그리스도가 아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십자가 지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그 이름이 기도이다. 이 이름으로 무릎이 닳아야 한다. 생고생하다가 관절염이 들지 예수 이름으로 관절염이 걸린 사람은 못 봤다. 금식하다가 병이 왔다고 한다. 이것을 깨달은 날 나에게 있다는 것을 보았다. 예레미야 기준이 있었다.

예수 이름을 깨달은 날부터 내 기준과 상관없는 일이 일어난다.

보좌가 움직인다. 내가 가는 곳에 앞서서 천사를 보내신다. 내 마음이 아니라,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기도를 가지고 천사가 하나님 앞으로 간다. 나와 상관없다. 기도는 세계를 움직이는 기도, 24시간 기도가 되어야 한다.

나를 못이기기에 기도속에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예수 이름이 기도라고 깨달았다. 33년 사시면서 3년 동안 사시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시고 기도를 가르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다. 깨달은 베드로가 이름을 주노라 했다. 기도를 깨달으면 세상, 미래가 무섭지 않다. 기도가 안 깨달아지면 창3장이 무섭다.

아일이가 청소하는 아줌마가 마스크를 쓰고 오니까 무섭다고 한다. 마스크한 모습이 의사선생님으로 생각한 것이다. 소독통을 가지고 오니 의사인줄로 착각한 것이다. 마트간다고 하고 병원하고, 좋은 것 가지고 간다고 하면서 병원갔다. 앉고 진찰받았더니 무섭다고 하면 할아버지가 배신이라고 하면서 안 오려고 한다. 하나님도 그렇다. 기도를 깨달으면 무서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서움에 안 잡힌다.

혼자 의사선생님께 주사맞는 것이 나은지, 무서운데 할아버지와 함께 주사맞는 것이 나은가? 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무서움도 상관없다. 본질만 놓친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말이 늘 궁금했다.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말은 알겠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영적문제로 하나님을 알수 없기에 아들을 보내셔서 사탄을 꺾고 증거를 주셨다.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이 보내신 분을 통해서 아는 것이다.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성령을 아는 것이다. 본질을 아시고 누리는 비밀을 주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했다. YOU ARE THE CHRIST라고 했다. 오직 당신이 그리스도라고 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이ᅟᅡᆮ. 하나님만이 사탄을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지옥배경을 이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민할 것도 없다. 복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볼수도 없는 상태, 깨달을수 없는 상태를 알리신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없으면 사탄에게 빠진다. 틀리게 알아도 사탄에게 빠진다. 빗나가도, 섞여있어도 사탄에게 빠진다. YOU ARE THE CHRIST이다. 오직 당신만 그리스도이다. 이 답에 주신 응답이 있다.

우리 안의 기준을 버려라. 네가지를 버려라. 버리는 것은 기준에 잡은 사탄을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는다.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니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는 역사하시는 것이 17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12:1과 같다. 너는 복이라고 했다. 원죄에서 빠져나온 것, 지옥배경에서 빠져나온 증거가 그리스도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안 빠져나온다. 영원한,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소유한 것이다.. 누려야 한다.

이것을 깨달은 날부터 그래서 사람들이 성경의 모든 사람은 죽었다. 죽어도 괜찮은 것이다. 가만히 보니까 성경의 모은 렘넌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잘나가던 것이 아니다. 잘 살지 않았는데 돈에 궁색하지 않았다. 이 땅에서의 방향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렸다. 자신이 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복음화이다. 이 복이 사람이 만드는 복이 아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을 누리는 하늘에서 온 복이다. 이 복이 필요한 것은 이 땅에서 하늘의 복이 없으면 세계복음화는 안된다. 이 확신이 있는 것이다.

네가 복이라고 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날부터 류목사님의 메시지를 그대로 해도 창피하지 않다. 누가 똑같이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앵무새가 아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것을 하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똑같이 해도 상관없다.

17절이 발견되어야 그 다음에 임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는 내 기준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으로 흔들리고 무너진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자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잡아야 한다. 고백이 없으면 뒤의 것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근거를 잡아야 한다.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복음과 종교의 차이이다. 종교는 죽는 날까지 믿음이 안생긴다. 복음만 생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반석이ᅟᅡᆮ.

내가 이 반석위에 라고 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반석이라는 것이다.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고백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성령이다. 교회를 건드면 안된다.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건드리게 놔둬야 망한다. 화산터지게 놔둬야 한다. 사탄을 약올리면 자폭을 하던가 할 것이다. 사람이 건드려서 빌미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싸울 필요가 없다. 내 교회를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교회를, 성령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 믿음을, 약속을 가지고 고백하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약속이 있다. 약속이 있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확신이다. 믿습니다가 아니라 확신이다. 영적인 확신이 있으면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반석과 같이 된다.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하늘을 닫고 여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에 약속되어 있다. 살아계시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자에게 천국열쇠를 약속하셨다. 이것을 밤에 누리면 다음 날 천국이 열린다. 나에게 주셨다. 열어야 한다. 여는 것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으로 천국문이 열린다. 매일 천국을 본다. 2장이 천국이다. 전도는 성령의 역사이다. 전도는 하늘보좌가 움직이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이 창세전에 예비한 사람이 만나지는 것이다. 하늘문이 열리고 보좌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 기도를 안하니까 안 열리는 것이다. 저녁마다, 아침마다 하면 낮에 확인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힘들어서 하지 약속으로 안 한다. 종교와 복음의 차이이다. 종교는 자기 기준에 맞춰서 하는 것이고 복음은 나와 상관없이 하실 것을 붙잡고 하는 것이다. 다 이루셨기에 근거를 잡고 해야 한다. 근거가 없기에 눌린다. 그리고 응답이 없다. 내 기준에 맞추기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 모자라도 상관없다. 있는 사람이 힘들다. 착각한다. 그래서 없는 것이 낫다. 하나님의 약속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게 하셨는데 달라고 할 필요없다. 약속만 믿으면 된다. 왜 안주시냐고 하는데 다 줬는데 모른다. 본질을 모르면 다 받았음을 모른다. 기도는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잡는 것이다. 기도회복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생각도 중요하고 마음도 중요하다. 끼이다. 끼에 복음이 채워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골프를 좋아한다. 바둑좋아한다. 연애얘기만 한다. 자식말만 한다. 복음만 말한다. 끼이다. 캐릭터이다. 머리로는 복음을 알고, 마음으로도 아는데 사람을 만나면 복음은 말하지 않고 재밌는 것만 말한다. 끼이다. 류목사님이 생각, 마음이 안된다고 하는데 끼라고 했다.

오늘부터 기도회복하기 바란다.

 

 

우리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에 흔들리지 않는 반석과 같은, 음부의 권세가 무너지는 믿음, 천국열쇠의 믿음을 주셔서 인생에 천국열쇠가 주어지고 하늘로부터 오는 권능이 임하게 하시고 기도가 막연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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