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부] 놋뱀을 쳐다본즉 다 살더라

복음에 빚진자 | 2017.11.05 17:18 | 조회 3210

20171105[2] 놋뱀을 쳐다본즉 다 살더라 (민수기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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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20171105[2] 놋뱀을 쳐다본즉 다 살더라 (민수기 21:4-9)

 

서론

어제는 제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그 과거가 인생이 살기 싫었다. 죽고 싶었다. 왜 그랬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희망이 없음을 보았다. 이것이 어릴 때부터 각인되었다. 그래서 사는데 싫었다. 죽기 싷어서 살았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술먹었다. 이것을 치유받는 것이 제목이었다. 서울대학교 부근이 활동지역이다. 동숭교회에서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면 공책도 주고 그랬다. 아버지는 주록을 행했고 어머니는 폭행당하고 공책을 주는 교회로 갔다. 문제도 내고 답을 주는데 주보를 주었다. 추첨해서 공책을 줬다. 그래서 동생들을 데리고 갔다 확률상 잘 받기 위해서이다. 여름성경학교를 끝나고 시험을 보는데 거기에서 상도 받았다. 동숭교회 건너편에서 모임 있었다. NGO모임이다. 정신치유받은 사람과 정신문제자와 가족들을 위한 모임이었다. 우리나라는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다. 정신병력에서 치유된 사람을 정상에서는 쓴다. 거기서 치유된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을 들었다. 그들과 같지 않는 내가 보인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내가 보였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가 발견되었다. 그리스도가 깨달아지는데 그들을 보는 눈이 되었다.

인생에서의 승리가 무엇인가? 병의 치유인가? 부자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래 창조하신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것이 승리이다. 사람을 만나면 승리하라고 인사한다. 무엇에 승리하는가? 싸움인가? 내가 싸우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찾는 것에서 승리해야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는 나를 찾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실패다. 사탄이 발견 못하게 한다. 눈에 안보이는 사탄이 사람을 조종하면 그리스도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응답, 진짜 성려인도는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아는 쪽으로 가야 한다. 돈 많은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말했는데 안들을 때도, 싸울 때도 그리스도가 깨달아져야 한다. 사람이 죽어도 그리스도가 깨달아져야 한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도 그리스도가 깨달아져야 한다. 원래 인간을 만드시니 창조원리이다. 창조원리대로 살면 사탄은 진 것이고 저주와 재앙에서 빠져나온다. 사탄의 권세에서 나오지 못하면 삶은 사탄의 종노릇하기에 인생이 망한다. 교회가 힘들어한다. 전 세계에 교회가 많은데 승리하는 교회는 없다. 남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승리가 아닌, 사탄을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능력밖에 없다. 그리스도를 놓치고 살면 부유해도 가난하다. 그 모임에 모이는 사람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부모와 자식, 문제 있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문제의 원인을 모른다. 어떤 이가 나와서 간증을 하는데 이중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사랑스러워서 아껴주는데 원수같이 취급한다고 했다. 새어머니가 그랬다. 자식이 없을 때는 이쁘다고 했는데 자식이 생기니까 학대하기 시작했다. 몰랐다. 원인을 못 찾는다. 이중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인간은 삼중일 때도 있다. 내 속에 내가 아닌 내가 너무 많다. 가시나무 새라고 했다. 제일 은혜스럽다고 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자신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것이다. 겉으로는 인자한데 일이 생기면 사람이 달라진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왜 그 엄마가 이중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아야 한다. 거기서 나를 찾으려니까 헛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를 찾았다고 했다. 엄마를 이기는 것에서 찾았다고 한다. 더 깊은 창세기 3장이다. 세상의 책은 그 말이다. 분열된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 나를 찾으라는 말이다. 나를 찾았기에 독립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떠난 나를 발견 못하면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것을 말해줘야 한다. 진짜 나는 찾을수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담 한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그것이다.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나를 놓친 것을 물려받았다. 이것을 찾아주신 분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밖에 없다. 그 말씀으로 드어가는 것이다. 사탄에게 빼앗긴 나를 찾아주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사탄이 멸해져야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과 공존할수 없다. 원래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나이다. 이런 나를 찾아주려고 하셨다 사탄과 함께 하는 나, 저주를 끝내신 것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삶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부끄러워하고 상대의 말에 화가 나는 것에서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야 한다. 화를 안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발견되면 화에 안잡힌다. 그리스도가 깨달아지면 화도, 주눅드는 것도, 문제가 안 풀리는 것도 감사한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살아가야 정복하고 생육하고 번성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누려야 한다. 이것이 소원이다.

죄를 안 지으려고 몸부림치는데 인간은 죄를 안지으려고 몸부림칠 뿐이지 이미 죄 속에 있다. 몸부림치는 것은 행위로 하는 것이지 이미 죄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눈에 안보이는 죄이다. 그래서 몸부림을 쳐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똑바로 살려고 해도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이 쉬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셨다. 내가 잘하는 것, 똑바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헛된 몸부림을 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하는데 내 의지로 잘 믿으면 된다고 여겼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아는 것이 잘 믿는 것이다. 내가, 기도가, 행위가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믿음 속에서 나오는 행위가 믿음의 열매이다.

전도는 내가 잘 믿으면 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 속에서 나오는 행위는 다르다. 주눅드는 것에서, 부끄러움에서 잡히지 않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 속에서 나오는 행위는 생명의 열매로 나타난다. 전달된다. 알게 된다. 자신도 생명으로 안 살았기 때문이다. 전도는 내가 잘 믿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제는 과거를 보면서 그리스도가 발견되었고 그제는 어느 목사를 만났다. 교회사역을 하다가 그만두시고 현장만 다닌다고 했다. 되는 것은 없는데 열심히 다닌다. 왜 열심히 하냐고 하니까 자기가 잘한다고 한다. 성격이 그런 것 아니냐고 하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아냐고 하니까 여러 말을 한다. 그래서 성령이 계신지, 악령이 계신지 어떻게 아냐고 했다. 누구에게 가서 성령이 계시다는 말을 어떻게 말하겠는가라고 했더니 여러 말을 한다. 얘기 속에 답이 있는데 못 잡는다. 하나님은 안보인다. 그런데 성령이라고 한다. 인간속에 있는 악령도 안보인다. 그런데 안보이는 하나님을 말하려면 하나님이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편안하다고 한다. 마구를 믿는 무당도 편안을 말한다. 무엇으로 하나님이 계심을 아는가? 2장에 아담에게 모든 이름을 지을 능력을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만 나타내셨다 아담이 지을수 없는 이름이다. 하나님의 이름만큼은 하나님이 직접 알리신다. 그것이 진짜 하나님이시다. 2:4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 두시고 사람과 함께 하실 때 사람이 누릴 이름을 여호와로 주셨다고 했다. 충격된 것이 있다. 교회가 왜 있는지를 몰랐다. 없어도 될 것 같았다. 핵심에 가서 예원교회를 보는데 하나님께 부요한 중직자라는 표어를 보았다. 헌금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하나님께 부요하려면 헌금을 많이 해야 한다. 나에게 부요가 아니다. 세계복음화할 정도로 해야 한다. 예원교회는 초창기부터 성전을 짓는데 교인들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성경구절을 보았다. 대하 7:16이다.

성전이 있을 이유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을 곳이다. 이름을 두시려고 성전을 두셨다. 세상을 잡고 있는 것이 마귀이다. 마귀는 이름이 많다. 거기에는 마귀가 틈 탈수 있다. 그래서 한 이름을 주셨다. 4:12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 것이 없다고 했다. 이 이름을 구약에는 여호와로, 신약에는 예수 이름을 주셨다. 이름으로 사탄을 꺾으셨다. 성령이 계시는 이름이다. 성령이 임하는 이름이 있다.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에 성령이 오고, 사탄이 나가고, 천사가 움직이고 하나님이 들으신다. 이것이 성전이다. 모든 사탄을 무너뜨리는 우상이 안되는 이름이다. 유럽의 교회는 우상화 되어 있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의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어릴 때부터 결손가정이었다. 영적문제를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예수 이름이 없으면 사탄의 집이 된다.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사탄이 나가지 않는다. 성전은 성령이 계셔야 하는데 반드시 이름이 있어야 한다.

16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하나님은 예수 이름을 소유하고 가진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사도행전의 사람들, 초대교회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부요한 중직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이름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흑암을 무너뜨린다. 증인이 되게 하신다. 예수 이름으로 살기 바란다. 내 모든 삶에서 예수 이름이 발견된다면 내 과거도 감사가 나오게 하신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과거가 감사했다. ?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이미 나를 알았다고 한다. 알고 모태에 넣으셨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씨를 거기에 넣으셨다. ? 하나이다. 복음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알수 있는 가문은 아버지, 어머니 밖에 없다. 과거가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 배에서 나왔기 때문에 과거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복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버릇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저주가 아닌 복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때부터 원망이 끝났다. 그렇다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나에게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이다. 나를 이 따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는 전 세계를 살릴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도록 그리스도로 이기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깨달아져야 한다. 그래야 행 1:8 증인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내 인생의 모든 것 속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참된 승리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문설주 인방에 피를 바르고 430년 애굽에서 나와서 첫 승리를 했다. 호르마에서 첫 승리했다. 원래는 승리할 사람이 아니다. 이전에는 애굽에 노예였다. 세상의 노예였다. 사탄이 시키는 대로 했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인방에 예수가 그리스도를 깨닫고 처음으로 승리한 사건이 민 21:1-3이다. 호르마사건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발견되었다면 영원한 승리와 영광이 보장된 것이다.

승리해서 광야길을 가는데 네겝에 거주하는 아랍사람이 이스라엘이 오는 것을 아고 잡았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이 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셨다. 승리했다. 진짜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누구와? 문설주 인방에 피바른 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 그리스도의 일을 완성하신 자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승리한 것이다. 이 체험이 있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함께 하신다. 이것으로 살면 되는데 별것도 아닌 일에 시험드는 것이다. 4절부터 9절이다. 지속을 못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400년 동안 잡고 있던 사탄이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시험들게 하는 것이다.

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 광야길이 비단길이겠는가?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광야에서 비단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갔냐고 했다. 시험들 일이 없다. 그런데 광야에서 시험들었다. 먹을 것에 시험든 것이다. 이것을 사탄이 틈을 타서 시험하는 것이다.

5절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시험들면 말씀을 듣는 것이 싫어진다. 저항이 된다. 답이 안된다. 왜 그런가? 우리가 사는 방법은 말씀이 답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는데 말씀이 답이 안되는 것은 내 마음에 하찮은 음식이 된 것이다. 우리 마음에 관심이 가는 것이 다른데 있다. 내 마음과 똑같다. 내 마음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마음이다. 그것이 내 마음이다. 이 마음이 원하는 것은 하나이다. 말씀이 박한 음식이다. 복음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다.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것으로 가면 안된다. 마음중심에서는 복음이 가치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을 붙잡고 움직이는 세력이 있다. 마음에서 찾아가려는 것은 하나님이 될수 없고 사탄이 좋아하는 쪽으로 간다. 복음이 하찮은 음식이 안되려면 어떻게 하는가? 16: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 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찾아야 한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상태를 알면 하나님을 찾아갈수도 없고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안된다. 이 상태를 알기에 하나님이 복음을 주셨다. 우리는 마음에 속는다. 마음이 속는다는 것은 육신의 것이 최고의 것으로 보인다. 예수 믿으면 돈이 생긴다고 여긴다. 예수 믿어야 돈이 생긴다. 세계정복하게 된다. 돈이 있어야 정복한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믿으면 안된다. 성령으로 주신 것으로 해야 한다. 내 마음에서는 나오는 것은 처음에는 좋다. 갈수록 안 맞는다. 그러면 민 11:7-8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 처음에는 꿀 섞은 과자라고 했는데 기름에 튀긴 것이라고 변한 것이다. 우리 집은 기름에 튀긴 것은 싫어한다. 기름에 튀긴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여긴다. 꿀 섞은 과자에서 복음을 누리는 목적이 다르면 기름 섞은 과자가 된다. 21:5절에는 하찮은 음식이라고 한다. 먼저 성경은 박한 음식이라고 한다. 복음을 내 마음의 중심에 맞추면 그렇다. 복음을 내 마음중심에 맞추면 육으로 간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가지 않으려면 복음을 영적사실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잡아야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내 마음에서 나오면 싫어진다. 좋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

계속 나오는 말이 상한다, 싫어한다는 것이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사탄을 이길수 없다. 마음에 좋은 것도 사탄을 이길수 없다. 성령이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한다. 나를 주장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 왜 산다고 했나? 원망하다 불뱀들이 나와서 죽었다. 그러니 모세가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기도하니 놋뱀을 달아서 장대에 달라고 했다. 그러면 쳐다본즉 산다고 했다.

복음을 왜 주셨는가? 사망의 세력을 이기라고 주신 것이다. 복음을 주신 이유는 하나이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사망의 세력을 이길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것만 생명이다. 그 생명으로만 사망을 이긴다.

구원받은 것은 사망에서, 사탄에게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이 중요하다. 사망의 세력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살아야 한다. 답을 주셨다. 승리가 계속되도록, 보장된 삶을 살라는 것이다.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 놋뱀을 쳐다보라는 것이다. 생명을 지속하라. 예수 이름으로, 아들로, 십자가로, 부활로 지속하라는 것이다. 쳐다보라는 것이다. 무엇을? 십자가를 쳐다보라. 그래야 다 이루었다가 성취된다. 인방에 피 바르고 나오면서 세절기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을 지키라고 했다. 어떻게 승리를 지속하는가? 십자가를 보라. 언약잡으라는 것이다. 보장되어졌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에 이루신다. 우리는 모자라도, 부족해도 약속이 성추되는 보장이 있다는 것이다. 쳐다보라는 것이다. 인방에 피를 발랐다. 그런데도 쳐다보라는 것이다.

어제 봤다면 오늘도 봐야 한다. 지금도 봐야 한다. 구원받고 성령이 오신 것은 오늘이다. 지금 쳐다봐야 한다. 다 끝내놓으신 증거를 지금도 십자가로 보아야 내가 산다. 부활하셨다. 영원히 보장된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미래가 만남의 축복속에 있게 된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승리를 쳐다봐야 지속할수 있다. 사건, 문제, 힘든 문제 앞에서 쳐다보라는 것이다. 그래야 성령이 역사하신다. 쳐다본즉 다 살더라고 했다. 객관적이다. 길이 없다. 창조원리이다. 말씀으로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쳐다보라. 진짜 쳐다보면 산다. 무슨 말씀을 잡고 사는가? 이것을 잡으니까 깨달아지는 것이 원래 창조하신 자, 하나님의 형상 가전 자, 정복하고 다스릴 자이기에 이 나라에 오시게 한 것이다. 돈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는가? 평생을 벌어서 어떻게 하는가? 죽은 시인의 사화라는 영화에 선생이 과학, 기술, 능력은 삶을 유지하는 방법일 뿐 시, 사랑, 문학이 목적이라고 했다. , 사랑, 문학은 우리에게 복음이다. 복음으로 세계 살리는 것이다. 사업을 해서 자식에게 물려주면 자식 버린다. 이 땅에 왜 살려고 왔나? 왜 일을 하러왔나 하면 그것밖에 안된다. 목적이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는 전 세계를 살리는 복음 알라는 것이다.

 

 

세계를 살릴 수밖에 없는 언약을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로 알게 하시고 말씀이 내 인생 전체의 답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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