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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여섯 번째 만남 - “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복음에 빚진자 | 2017.11.26 17:40 | 조회 3234

20171126[1] 여섯 번째 만남 - “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로마서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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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예수님이 하신 일은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 그리스도의 일은 선지자의 일, 제사장의 일, 왕의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선지자의 일을 하시는데 마 1:19-23절에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선지자의 일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이다. 그것이 선지자의 일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래서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계시하신 것은 하나님의 이름밖에 없다. 왜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계시하셨나? 이 땅에서 십계명 중 1, 3계명에 해당하는 사탄이 있기 때문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다른 신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찾아갈수 없다. 하나님이 직접 계시하셔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요 1:12 하나님 자녀라고 한다. 3:6 전도자라고 한다. 전도자는 예수 이름 하나로 사는 자이다. 예수 이름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다. 문제를 정복하고,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다. 예수 이름을 이길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을 누리는 자가 전도자이다. 이 땅에는 옳고 그름이 난무하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보면, 상대방의 기준으로 보면 본다. 옳고 그름으로는 세상이 바뀔수 없다. 흑암이 안 꺾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주셨다. 그 비밀이 예수 이름이다. 이 이름을 가진 자를 마 1:23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누려야 한다. 내 자신을 보아도 그래야 한다. 내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와도 예수 이름을 이길 것이 없다. 선지자라고 한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한다.

어제도 NGO를 갔다오는데 서울에서 4시간이 걸렸다. 핵심을 놔두고 대중교통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네시간 동안 이것만 했다. 아는 것처럼 하는데 모른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설명을 못한다. 선지자를 모른데 왜 예수가 그리스도인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갈수 없는 것은 제사장의 일을 모른다. 우리가 하는 것은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 이 저주를 십자가에서 끝내셨다. 19:30 다 이루었다고 했다. 우리의 모든 힘은 요 19:30절에서 나온다. 류목사님의 메시지도 여기에서 나온다. 신자의 모든 힘이 요 19:30절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여기서 답이 안나오면 계속 문제가 온다. 자기 기준에 안 맞기 때문이다. 이 기준이 저주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것, 틀린 것, 망할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보기에는 필경은 옳은 길이나 사망이라고 했다. 왜 망할 것인가? 사탄이 속이기 때문이다. 내 중심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면 망한다. 사탄을 못 이기기 때문이다. 이것을 다 이루었다고 했다. 이것은 십자가가 아니고는 살아날 수 없다. 이 땅이 광야이다. 하루도 십자가 없이는 살수 없을 정도로 치고 들어온다. 우리 기준이 다 다른다. 이것을 알면 떳떳해진다. 모르면 위축된다. 따질 것은 바로 따지고 싸울 것은 바로 싸우면 된다. 비굴하게 할 것도 없다. 당당하게 하면 된다.

여기에서 깨달아지면 행복이 온다. 이것이 해결되는 것이 행복이다. 이 행복을 롬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주께서 인정치 않으신다. 사탄이 우리를 송사하게 놔두지 말고 당당하라. 하나님이 왜 죄를 인정치 않는가? 십자가에서 끝냈기 때문이다. 내 죄는 끝내셨다. 그런데 사탄에게 송사할 근거를 준다.

사탄이 우리를 계속 속인다는 것이 양심이다. 양심의 죄책감을 가지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야 한다. 나를 심판하실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죄를 인정치 않으신다고 한다. 우리는 죄가 없다. 죄를 이미 벌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행복이다. 이 행복이 없으면 불행하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잘못한 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서 비난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죄 앞에서 떳떳할수 없다. 십자가에서 끝났다. 그 어떤 인간도 저주에서 빠져나올수 없다. 내 죄를 가리기 위해서 남의 허물을 들춰내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행복하는 것은 죄를 인정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십자가이다.

하나님을 알수 없는 것은 사탄에게 잡혀서이다. 믿고 싶어도 할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에 믿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을 알고 싶은데 알아지지 않는다. 사탄이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영적인 것만 모르게 한다. 사탄이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만 보고 탓한다. 사탄에게 잡힌 사람이다. 그래서 이 사탄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끝낼수 없다. 그래서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하셨다는 것은 사탄을 끝내신 것과 동시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고전 3:16이 증거이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었다. 사탄은 우리를 더 이상 못 건드린다. 악한 자가 만지짖도 못하도록 성령이 내주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이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기에 사탄이 건들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을 굳건히 하게 하기 위해서 문제를 허용하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연단케 하시는 것이다. 문제는 사탄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계신 자이기에 사탄이 건들지 못한다. 그런데 문제가 계속된다. 복음을 가지고도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잘났다고 주장할수 없다. 죄인만 아닐 뿐이다. 죄를 인정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죄를 찾을수 없다. 죄값을 이미 치르셨다.

문제가 오면 성육신, 십자가,. 부활로 넘어서도록 문제를 주셨다. 그러면 문제가 나와는 상관이 없어지고 오히려 감사가 나온다. 복음의 넓이 깊이,. 길이가 넓어진다. 그러면 행 1:8 한계없는 속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서론이 중요하다.

여러분이 이것을 깨달으면 모든 것을 정복하고 행복하다. 이병무 목사가 나는 행복합니다를 같이 불렀다. 그런데 솔직히 행복하지 않았다. 제사장의 일을 깨닫기 전에는 그랬다. 2:1-4 하나님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의 복에 대하여라고 했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가지고 선지자, 제사장, 왕의 약속을 잡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언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그런데 다 이루셨다. 이것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우리는 행 1:3절이다. 이 때부터 약속이 믿어졌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거이다. 어떻게 믿는가? 하나님의 원리인 약속을 어떻게 믿는가? 다 이루어주신 약속이 나에게 이루어졌다.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은 흑암을 꺾으시겠다는 것이 약속이다. 내가 예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천사를 움직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진짜 응답인 행 1:8이 온다. 내 인생에 살리는 일이 계속되어지는 것이다. 죽은 내영혼도, 가문도, 교회도 살리는 것이 행 1:12-14에 있는 중직자이다. 교회를 살리는 자들이다. 16장에 있는 5가지 별명을 가진 자들이다. 전도자의 보호자, 식주인, 동역자이다. 당당하라. 따질 것은 따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라. 아 끝났다.

문제가 올 때 어떻게 개인화시키냐고 하는데 이것이 개인화이다. 이것을 잡았는데 내 문제이든 상관없이 잡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셨다. 이 이름을 부르는데 흑암을 꺾으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천사를 움직이신다. 부르면 된다. 조건은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모른다.

문제가 닥치면 우리는 이름에 관심이 없다. 하나님은 일하시고 싶은데 아무도 안 부른다. 교회는 내 이름이 있는 곳에 내가 모든 것을 집중하겟다고 했다. 그런데 교회가 이름을 안 부른다. 그리스도에 집중하는 것이다. 누구도 이 약속을 믿는 자가 없기에 하나님이 건질수 없다.

이것이 행복하면 다른 것은 넘어간다. 잡힐 필요가 없다. 행복은 세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여섯 번째 만남은 여섯가지를 말한다.

1) 2;5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었다.

2) 2:13-17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3) 10:33-34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고 그것이 성취되었다. -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죽을 것과 사흘만에 사실 것을 알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셨다. 이것이 나이다. 그래서 예수 이름 하나로 못 이길 문제가 없다. 예수 이름 하나로 세상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예수 이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 다 알고 있었기에 아시고 성취하신 것을 우리 안에서 성취하셨다. 앞으로 받아야 할 응답은 행 1:8이다. 시간표대로 받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그래서 행 1장이 중요하다. 우리 시간표이다. 1, 2, 3, 4... 자신의 시간표가 있다.

다 아시고 성취하시고 보혜사 성령이 임하게 하시겠다고 했다. 과거는 이미 끝났고 받을 응답만 약속으로 잡고 있으면 된다. 그래서 어떻게 문제가 문제인가? 예수님이 죽으실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살아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 있어야 넘어선다.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머리가 맞다면 자신의 일을 이루실 것을 알고 있다. 24:14이다. 모르기에 문제에 빠진다. 문제가 응답이 되어야 한다. 미래,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보지 못하면 문제가 문제된다. 미래를 찾아내야 한다. 당당하라.

신자들이 답답하다. 계속 문제에만 빠져있다. 예수님은 다 알고서 말씀하셨다.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신 것은 다 알기에 십자가가,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것을 알기에 우리는 문제에 잡혀서 한계에 잡히지만 그 속에서 성령이 이루어가시는 것을 알고 계시다.

응답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것이 응답이다. 보이지 않아야 사기꾼이 달려들지 않는다. 사탄에게 잡힌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보고 달려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누리라고 예수 이름을 주셨다. 예수 이름 하나로 못 이길 문제가 없다. 확신이 온다.

4) 10:45 대속물로 이 땅에 오셨다. - 그냥 죽으시려고가 아니라, 대속물이다. 우리의 죄값으로 죽으셨다.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다.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셨다. 값을 지불하셨다. 내가 치러야 할 것을 하셨다. 내가 죄를 지었다면 내가 치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부적같은 것이어야 한다. 모든 저주가 해치지못한다는 부적이다. 대속물이다.

그 증거가 마28:1-10, 빈무덤이다.

왜 그렇게 하셨나?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것은 죄의 삯이 끝났다는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6:23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 이름으로 못 넘어설 문제가 없다.

5) 21:1-10

 

우리에게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약속하셔서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 문제가 되지 않는 약속을 주셨사오니 예수 이름으로 사는 날이 되게 하시고 어떤 문제도 예수 이름을 이길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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