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2부] 복음의 개인화

복음에 빚진자 | 2017.11.26 17:41 | 조회 3324

20171126[2] 복음의 개인화 (마태복음 1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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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어저께 목사님과 4시간동안 동행하면서 요즈음 3오늘을 붙잡고 은혜받은 것을 나누게 되었다. 듣는 중에 드는 생각이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말은 나에게 주신 말씀이 확신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레마, 기록된 말씀이라고 했다. 로고스라고 했다. 로고스는 객관적, 레마는 주관적인 말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류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했다. 정말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 무엇인가? 그것이 무슨 말씀인가? 기록된 말씀도 있고, 깨달은 말씀, 붙잡은 말씀도 있다. 모든 근거는 성경 66권이 표준이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말씀을 깨달았다.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본인은 은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듣는 나는 옛날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틀렸는지는 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깨닫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성취되는 시간표는 있다. 그 말씀이 나에게 답으로 오는 시간표는 나에게 있다. 레마라고 한다. 그러면 나에게 있는 말씀을 말해야 한다. 깨닫게 하셨을 때는 들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전도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루 하루 깨닫는 말씀이 없으면 세상을 따라갈수 없다. 레마가 없다면 세상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 세상이 있는 기준이 창 3장 아담이 만들어놓은 기준이다. 이 기준과 세상은 같다. 이 기준은 하나님을 떠나서, 행복을 잃고, 육신의 것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 없기에 행복을 찾기 위해서 육신의 것을 맟추는 것이 창 3장이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처럼 맞춘다. 진짜 행복이 없었기에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을 만든다. 에녹이 자기의 성을 쌓았다. 자기를 보호하고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세상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세상이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것이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나서 불행한 인간이 행복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수 없다. 불행을 가져다 주는 마귀가 있다. 찾을수 없도록 불행을 주는 마귀가 있다. 그래서 찾으려고 하다가 다른 것에 설래는 것이 음란이다. 세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나이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편않게 하는 것으로 만든 것이다. 세상의 종교, 명상, 단체들이다. 세상의 것이 내 안에 있던 것이다. 이 내가 하나님을 떠난 나이다. 이런 내가 구원을 받았다. 원치 않는데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다. 예수 믿겠다고하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수 없기에 하나님이 은혜로서 건지셨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셨다. 은혜를 받고나니까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였다. 이것이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구원받았으면 다시는 세상으로 가지 않아야 하는데 구원받은 내가 구원받지 않은 내가 같이 있다. 그러니 어느날은 세상이 좋다가, 교회오면 말씀으로 산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나의 기준과 맞기에 열심히 산다. 교회오면 잘못임을 알고 신앙생활을 한다. 이렇게 산다.

교회에서도 말씀을 잡지 않으면 세상에 빠진다. 그래서 세상을 등지고 교회만 있었다. 열심히 교회의 일을 했다. 열심히 하면 상처가 생기고, 마음에 안들었다. 그래서 말씀을 잡았다. 그런데 말씀이 나를 살리지 못했다. 여전히 열심히 했는데 안되었다. 세상에서는 열심히 하면 되는데 교회에서는 안되었다.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능력은 없었다. 복음을 알고나서 말씀에 대해서 깨달았다. 말씀을 가지고 예배하면서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나를 살리는 말씀이 아니었다. 감동은 되었다. 그것이 레만줄 알았다. 성경은 하나이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는 창 3:15의 말씀을 성취시킨 것이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것이 성경이다. 그러면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어떻게 상하게했는가? 신약이다. 인간이 하나님께로 갈수 없기에 인간을 멸망시키는 사탄을 하나님이 무너뜨리신다는 것이ᅟᅡᆮ. 이 약속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도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시기에 구원받았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는 것이다. 3:15이다. 이것을 신약성경의 사복음서가 말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나에게 성취하심을 말한다. 이것이 레마이다.

구약에 약속하신 말씀을 신약에서 이루셨는데 그것을 내것으로, 성육신이, 십자가, 부활이 나의것으로, 예수 이름이 온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권세로 발견되는 것이다. 나에게 다 이루신 것이다.

내 인생을 말씀, 3오늘로 산다는 것은 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할 곳으로 인도하심을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예수 이름은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성령으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로 속이는 흑암을 무너뜨리도록 천군을 파송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 안되고, 잘되고가 없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된다.

어느 여목사가 우리는 그냥 가는 대로 가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 말의 의미는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알고 가야 한다. 류목사님이 홍수환에 대해서 말하는데 78기해서 승리한 복서이다. 이 테이프를 빌려서 보았다고 한다. 식사하면서 보는데 홍수환이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는데 긴장감이 없다고 한다. 이미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이 문제가 왜 자꾸 문제가 되는가? 이 문제가 하나님이 끝내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지나가게 되어 있다. ? 이루실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24:14이다. 그제서야 끝이 오리라....

문제가 힘들 것이다. 모르면 심각해진다. 모르면 큰일난다. 난리와 기근의 소문이 있으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돈 많이 벌게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 성령이 문제를 보고서 잡혀서 좌절, 낙심하고 회복하고를 반복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되었다는 약속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다.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 세가지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문제가 상관없어진다. ? 지나갔기 때문이다. 과정일 뿐이다. 끝이 아니다. 끝이라고 생각하기에 큰일나는 것이다. 이것이 안 깨달아지면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모른다. 말씀으로 어떻게 사는가? 이전처럼 감동되었다가, 풀리고가 반복된다. 반복하면서 사는 방법이 종교적 지식이다. 복음으로 살지 못한다. 종교적 기준으로 산다. 흑암이 안 꺾인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기준이다. 왜 복음은 중요하다고, 굉장하다고 하는가? 성령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개인화된다는 것은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구약은 창 3:15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신약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나에게 성취된 것이다. 성령으로 내주하신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이루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 사람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레마가 된다는 것은 말씀 속에서 다 끝났음을 찾아내야 한다. 문제가 올 때마다 찾아내야 한다. 끝났는데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 있다. 1:8이 성취되게 하시는 것이다.

교회가 세계복음화의 발판, 후대가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갖도록 문제가 발판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요일 4장에 말한 것처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세상에 있는 자보다 우리 안에 계신 이가 더 크다. 마귀가 속여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에게 이런 하나님이 내주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문제를 이루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마귀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문제가 지나갔음을, 끝내셨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내 기준으로 인해서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행 1:8을 이루기 위해서 문제도 일으키시고, 허용하신다.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서 살아오던 것이 있기에 자신의 신분을 놓친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되어 있는데 문제로 놓치면 내 안에 내주하시는 것만 모른다. 그래서 내 근본을 찾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문제로 통해서 복음이 내 안에 있음이 적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밖에 없다. 복음을 가지고 문제를 어떻게 넘어설지를 알아야 한다.

복음을 문제올때마다 붙잡으면 힘든 것이 나이다. 문제가 아니다.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무너지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복음이 안 잡힌다. 자존심이 무너지면 상처가 된다. 그러면 반드시 싸우게 된다. 말부터 거칠어진다. 부부라도 어쩔수 없다.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된다. 자식은 호적에 기록된다. 그런데 부부는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 점이 없으면 님이다. 결혼하는 순간 점이 없는 것이다. 싸움의 증거가 있다. 내 자존심이 생명은 아니다. 답은 아니다. 생명이 아닌 것들을 가지고 목숨 건다. 그것을 다른 것, 틀린 것, 망할 것이라고 한다. 답이 없는 것을 가지고, 생명이 없는 것을 가지고 싸우기에 망할 수밖에 없다. 생명이 아니기에 사망이다. 사망의 증거가 싸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생명의 근거를 주셨다. 그것이 생명이 아니라면 생명을 잡으면 생명이 일하실 것이다. 기다리면 된다.

자존심이 상하였다면 생명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생명을 잡아야 한다. 쉽다. 생명은 약속이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이루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은 싸움 속에서도 생명으로 역사하셔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천사를 움직여서 흑암을 무너뜨리신다.

중독은 몸은 피를 바꾸면 되는데 뇌는 안 바뀐다고 했다. 그래서 마약을 하면서도 예수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어차피 먹을 것이라면 복음을 가지고 하라는 것이다. 예수 이름이 생명이다. 마약을 먹어서 예수 이름을 못 부른다고 하는데 속은 것이다. 마약은 내가 끊는 것이 아니라, 각인은 하나님이 바꾸시는 것이다. 약속을 주셨다. 예수 이름이다. 나와 상관없다. 자식을 가지고 속상해 한다. 반복된다. 문제라는 것이 반복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 응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것이다. 언약을 놓쳐서 응답이 없다. 그래서 자식이 게임중독이 되었다면 가르쳐야 한다. 생명이 아니고 답이 아니기에 생명을 잡아야 한다. 게임해도 생명으로 일하시겠다고 하셨다. 생명이 없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사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동성애하는 목사가 쫓겨났다. 자신들은 동성애를 하면서 목사가 동성애 한다는 것으로 쫓겨났다. 동성애는 자신이 좋아서 한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 교회를 다녔는데 목사가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그 분이 성폭행 했다고 한다. 결혼하고, 목사되고, 복음은 알았는데 그 문제에서는 모르는 것이다. 문제가 오니까 모든 교인이 적이 되었다.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이 없다. 자기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성폭행당하고 상처가 되었다. 나중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일이 들통났다. 복음을 잘 깨달았다고 칭찬했는데 교회는 풍비박산 났다. 예수 이름이 그 문제 하나를 못 넘어서는가?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이 지는가? 예수 이름으로 못 넘어설 것이 없다. 창조주가 일하시는 이름이다.

이 상처를 말하기에 자신이 좋아한 것이라고 했다. 생명이 아니기에 예수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내 속에 율법적 기준이 강해진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움이 온다. 다른 길이 없다. 나의 모습을 볼수록 생명이 필요하다. 나를 보면 에수 이름이 필요하다. 대단해 보이면 예수 이름이 필요없다. 어둠에는 빛이 필요하다. 마귀를 알면 하나님이 필요하다. 나를 보니 예수 이름이 필요하다. 예수 이름이 없으면 하루도 못 산다. 이 세상은 광야이다. 의지할 곳이 없다. 쳐다볼 곳이 없다.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예수 이름이다.

복음이 개인화되려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과 전도이다. 세계복음화가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문제도 넘어서게 된다.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셨다. 그러면 문제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이다. 하나님이 일으키셨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믿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예수 이름으로 일하시기에 그 이름을 부르냐이다. 생명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그것이 응답이다. 마귀가 놓치게 하는 것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니까 교회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담임목사가 싫어한다. 강단에서 칭찬하시던 분이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때 예수 이름임을 알았다. 성령이 일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기뻤다. 비로소 성령으로 사는 사람임을 알았다. 진짜 예수 이름이 약속이라고 모르면 부를 이유가 없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흑암을 꺾고, 성령으로 역사하고, 보좌의 응답을 약속하셨다. 말씀의 성취를 이름에 주셨다. 예수 이름이 없으면 말씀의 성취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 세계복음화의 흐름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못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믿어져야 한다. 문제는 여전한데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심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다. 자기 한계에 잡힌 것은 사탄에게 잡힌 것이다.

우리는 힘이 없고 사탄이 만든 기준, 생명없는 기준으로 하기에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어제는 아일이가 채했는지 새벽 1시에 일어나서 4시까지 안자고 할아버지를 부르는 것이다. 버릇이 될까봐 가만히 두다가 나가서 안으니까 토하는 것이다. 닦아달라고 하면서 운다. 안고 토닥이니까 잔다. 눕히면 또 일어난다. 세 번을 그렇게 반복하니까 화가 났다. 보통이 아니다. 그냥 내팽개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 속에서 예수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이런 상태로 무슨... 그런데 이런 상태로 살기에 부르라는 것이다. 복음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하나. 사탄이 심어놓은 기준이다. 이런 문제로 어떻게 예수 이름을 불러? 그래도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한다.

2. 복음으로 두가지를 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내 개인화되는 비밀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선지자, 제사장, 왕이라는 것은 아는데 성육신, 십자가, 부활이라는 것은 모른다. 예수가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는 것은 내가 가진 문제가 멸망받을 문제요, 예수가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발버둥을 쳐도 우상숭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우상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갈수 없는 상태이다. 우리는 가만히 놔두면 예수 못 믿는다. 그래서 찾아오셨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힘이 십자가이다. 19:30 다 이루었다고 했다. 그것이 우리이다. 우리의 행복이다. 이렇게 모자란 나, 형편없는 나, 생명 아닌 기준 가지고 사는 나에게 기준을 끝내시고 보좌의 축복을 이루신 것이 우리이다. 행복한 자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그 죄를 인정치 않는다고 했다. 4장이다. 그 죄를 인정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1:1, 19:30이 힘이다. 목사들의 비리를 잘 안다. 들춰내는 사람이 많다. 안 들으려고 해도 안다. 19:30 다 이루셨다. 이것만 모른다. 그냥 행복하다고 하는데 십자가가 행복이다. 부활하셨다. 왕의 일이다.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것이다. 아무리 강한 사탄이 우리를 속여도 성령으로 만지지도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설명을 하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선지자, 제사장, 왕을 영적사실로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근본이다. 하나님을 만났다. 그래서 우리 안에 우주를 움직이는 예수 이름이 있다. 영적사실이다. 복음르 주신 이유는 예수 이름을 높이라고 주셨다. 그 이름을 부르라고 주셨다. 24시간 부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미래를 약속하셨다. 그 미래가 행 1:8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영적사실로 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났으니 내 기준으로 방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역사하심으로 사는 것이다. 무슨 일에서도 예수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복음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알라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했다.

이 말을 알아듣나 못 알아듣나를 체크했다. 요일 1장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에 관하여는 우리가 본바,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다. 1: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다른 증거가 없다고 했다.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주시면 족하겠다고 할 때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고백한다고 한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믿어져야 한다. 그런데 상태를 가지고 있으면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알수 없다. 그래서 직접 알리셨다. 아담이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지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은 못 지은다. 모세가 당신의 이름을 묻자,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다. 마리아에게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이 믿어져야 한다. 모든 만물은 이름이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계시기에 우리는 흑암이 무너지는 것으로 믿어져야 한다. 존재를 알아야하기에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해야 한다. 그 사람에게 아들을 생각할 때 육신이 되신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죽으려고 육신이 되었다. 하나님을 떠난 죄는 값을 치러야 하는데 죄의 삯은 사망이다. 육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죽을수 없다. 그래서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값을 치르셨다. 죄없는 분이 죽으셨다는 것은 마귀에게 잡혀서 하나님을 떠난 죄, 멸망받을 죄가 값을 치렀다는 것이다. 대속물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저주가 없다고 확신해야 한다. 실패가 없다. 증거가 있다. 무너질 것도 없다.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다.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부활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기 쉬운 증거, 사탄이 무너지는 증거로 선포되셨다고 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다. 아들로, 십자가로, 부활로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이 응답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이 응답이다. 우리 기준에 맞는 것이 응답이라고 착각하는데 흑암이 안 꺾이기에 싸운다. 자존심 싸운다. 하나님은 복음밖에 없다. 복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셨다. 성령으로 하시는 것이다. 미래가 보인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약속을 이루시려고 오신 분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말씀 행 1:8을 이루시는 것이다. 미래이다. 우리 교회의 중직자가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가진 자이다. 렘넌트이다. 우리 힘이 아닌 성령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미래를 보아야 한다. 이것을 보고나니까

세 번째 개인화가 된다. 문제속에서 개인화가 된다. 문제가 개인화되는 비밀이다. 마귀가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짊어지셨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복음을 적용하라고 주신 것이다.

문제가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신 것이 맞다면 하나님이 문제를 풀어 가실 것이다. 그래서 믿음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다. 어떻게 해 나가실까를 보는 재미가 생긴다. 문제가 오면 하나님이 풀어 가실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하실 일을 알 때 인본주의를 안 쓰게 된다.

 

우리의 복음이 하나님이 주신 복음으로 나의 것이 되도록 모든 문제속에서 답이 되도록 하나님이 일하시는 비밀을 모든 문제속에서 적용되도록 말씀을 주셔서 성도들이 복음이 개인화되는 응답속에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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