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수] 복음과 종교의 차이

복음에 빚진자 | 2018.03.21 19:43 | 조회 1731

20180314[] 복음과 종교의 차이 (마태복음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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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우리가 복음은 아는데 종교와 구분이 안된다. 같은 복음을 가지고 있는데도 예수를 누구로 아느냐이다. 종교는 예수님을 알기는 아는데 구세주라고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다른다. 구세주라고 믿으면서 신앙생활은 예레미야처럼 한다. 엘리야처럼, 세례요한처럼, 선지자중의 하나처럼 한다. 종교이다. 우리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은 받는데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면 신앙생활은 구원이 없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하셨다. 사탄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지옥권세에서 건져내신 것이다. 우리 안에 사탄이 무너진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3:15을 성취시킨 것, 뱀의 머리가 상한 것이 구원이다. 영혼은 구원받았는데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라고 했다. 신앙생활도 구원이 사탄이 무너지고, 지옥배경이 무너져야 한다. 내 인생에 사탄이 못 건드리는 일, 뱀의 머리가 상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자들도 이렇게 안 살았다.

예레미야처럼 산다. 신앙생활을 구제해야 한다. 엘리야처럼 체험해야 한다고 한다. 체험은 육신이다. 세례요한처럼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의 이치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 옳고 그른 것을 말한다. 구원받고도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한다. 선지자는 새로운 지식을 말한다. 이것들이 사람들의 속성이다. 12가지 각인된 속성이다. 우리 안에 종교적, 신비적, 체험적, 율법적 속성이 있는 것이다. 맞으면 신앙생활에 맞다고, 틀리면 아니라고 한다. 이 속성은 보이는 것에 반응하는 것이다. 불편하기에 틀렸다고 한다. 좋으면 다 좋다고 한다. 복음과는 상관이 없다. 이 속성 때문에 문제를 못 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보이지 않는 문제, 3장을 못보게 한다. 사람의 속에 숨겨져있는 것이다. 생각을 건드렸다. 3장은 드러난 것일뿐 아담과 하와 속에 이미 있던 것이다.

3:14절에 뱀에게 이르시되라고 했다. 3:15을 뱀에게 선포했다. 머리를 상하게 했다고 했다. 다시.는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을 사람을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찾겠다는 것이다.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을 구원의 축복으로 사는 자이다. 종교는 맞으면 은혜라고 한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알수 있는 것은 속성이다. 예레미야, 엘리야, 세례요한, 선지자의 속성이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다. 성령이 계시기에 사탄이 못 건드린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다. 왜 약속을 잡으라고 하는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약속하셨기에 주시는 것이다. 사탄이 도무지 못 건드리는 상태는 속성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이것으로 좋다, 힘들다고 한다. 상관없이 약속을 주셨다. 약속을 성취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복음이라고 할 때 생각나야 할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상태이다. 속성은 보이는 것이다. 구원이 아니다. 보이지 낳는 상태를 말할 때 보이지 않는 상태를 약속의 성취로 주셨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창 3:15을 이루시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으로 하셨다. 이것은 알고보면 창 3:15을 성취시키려고 보내신 분이라는 말이다. 예수가 하신 일을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이다. 3년동안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그리스도라고 깨달은 것이다.

진짜 신앙생활, 복음과 종교의 차이는 말씀을 들어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삶에서 누려지지 않으면 나의 것이 안된다. 반복되는 생활을 한다. 자기가 가진 속성에 은혜라고 한다. 종교이다. 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벗어나려면 알아야 한다.

속성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한다. 복음은 보이지 않는 약속을 이루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이다. 첫 번째 차이이다.

예수를 누구라고 고백하느냐이다.

2. 복음은 말씀이 성취되는 상태를 말한다. 종교는 그냥 말씀이다. 말씀에는 두가지 밖에 없다. 구약, 신약, 성경 66권은 율법도, 복음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은 복음을 누리라는 것이다.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죄 때문에 주신 것이다. 상태를 알라는 것이다. 말씀을 지킬수 없는 상태, 죄속에서 태어난 상태, 죄로 심히 죄되는 상태이다. 우리 인간은 복음없으면 안된다는 상태를 말한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많이 들었다. 들으면서 은혜받았다. 그때 받은 것은 속성에 맞춘 것이다. 예레미야, 엘리야, 세례요한, 선지자의 기준에 맞을 때 감동, 도전되었다고 한다. 말씀성취가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종교라고 한다. 종교는 말씀성취가 안된다. 아무리 은혜, 감동, 도전을 받아도 말씀이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 일시적이다. 종교이다. 복음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한다. 복음을 모르는 것이다.

말씀성취는 복음만을 말한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나의 것이 안되는 이유, 메시지를 들어도 안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안 깨달아져서이다. 그리스도는 영적비밀이다. 왜 안 깨달아지는가? 나의 문제가 영적문제라는 것이 안 보여서이다. 왜 안보이는가? 내가 영적존재라는 것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영적존재요, 영적문제가 있고, 영적비밀을 그리스도로 주셨음을 몰랐다. 그런데 기도한다. 그런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성경공부도 했다. 그런데 말씀이 내 것이 안된다. 그리스도가 깨달아지니까 66권이 내것이 되었다. 말씀이 들어왔다. 성경은 하나이다. 1:27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다. ? 3:1-6 하나님 형상이 무너졌다. 3:15 다시 하나님 형상 찾아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일이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날짜계산만 했었다. 다니엘서를 가지고 말세만 계산하고 있었다. 거기는 다니엘, 에스겔서만 말했었다. 공부를 안할수도 없었다. 아무리 해도 답은 안나왔다. 성경은 하나님 형상 잃어버렸다. 1:28 정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 3:15로 하나님 형상을 가져야 보이지 않는 문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 형상 잃어버린 것이 문제이다. 이것을 그리스도로 회복하셨다. 그래서 근거인 성육신, 십자가, 부활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수준 낮은 기초인줄로 알았는데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사탄에게 길들여져 있기에 하나님이 보이셨다. 우리는 또 받으려고 한다. 그것이 종교이다. 그래서 말씀성취가 안된다. 2:2-3 그리스도안에는 모든 지식과 지혜의 보물이 감춰져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생명이며 모든 것이다. 1:27을 잃어버려서 문제가 되었다. 자기 생각, 속성에도 노예되어서 잡혀사는 것이다. 하나님 형상 회복해줬는데 근거만 잡는데도 정복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복은 못하고 정복하는 척만한다. 금방 탄로난다. 안되는 말은 안하고 되는 것만 말한다. 자신이 모자란 것은 말하지도 않는다. 내가 그렇게 살았었다. 알고나니 부끄러웠다.

부인에게 잘하냐고 하는데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을 사모에게 했더니 자신에게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못한다고 한다. 혼자가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다. 만약 다른 여자에게 잘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나만 좋으면 끝이다. 3장 안에서는 의부증, 의처증이 생긴다. 알아야 한다. 배알이 꼴린다.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 형상보라는 싸인다. 문제를 보는 눈이다. 복음은 문제보는 눈을 여는 것이다. 이 형상은 다른 것으로 찾을수 없다. 그리스도이다. 어마한 생명이다. 하나님이 이 생명으로 역사하신 것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하셨다. 하나님 나라이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령이 들어오시지 않으면 알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 머리로는 우주도 갈수 있는데 하나만 모른다. 3장만 모른다. 그 해결자 그리스도를 모른다. 알수 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내 속에서 역사하신다. 똑똑해서 아는 것이 안다. 사탄이 건드릴수 없기에 복음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복음을 알았다는 것은 사탄은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수 없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사탄이 건드릴 수 없는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매일이 달라진다. 일꾼이 찾아진다. 전도이다.

내 인생속에 하나님은 예수 이름을 누리라고 두신 이유가 모든 현장에 사탄을 무너뜨려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를 찾는 것이다. 복음으로만 말씀성취를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깨달아지는 것이다. 인생을 보는 눈이다.

3. 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이때부터 하나님과 소통되었다. 소통은 이것을 하는 것이다.

2절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면서 영생을 말했다. 거짓이 아니다.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 땅에서 완성하신 때이다. 전도로 나타내셨다고 했다.

이제 하나님말씀은 전도자를 통해서 하신다. 이것이 소통이다. 전도를 못 깨달으면 말씀성취가 안된다. 메시지를 들을수록 그리스도와 전도가 깨달아져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때를 전도로 나타내셨다. 이제 기도해도 하나님의 음성은 안 들린다. 그리스도를 통해 전도를 깨달아야 한다. 전도자이다. 여러분이 누구를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벧전 2:9 왕같은 제사장으로 회복하셨다. 선지자, 제사장, 왕권을 회복하셨다. 선지자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네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위치로 올라간 것이다. 종이 아니다. 서밋이다. 영적서밋이다. 공부를 못했다고 주눅들게 하지 말고, 가난하다고 하지 말고 서밋이라고 해야 한다.

어제 심방을 가서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이 엄마, 아빠보다 낫다,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낫다고 했다. 자신의 위치는 모르고 주눅들어 산다.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끝내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은 원래 창조를 회복하신 것이다. 속지 말라. 우리에게 달려있다. 가정, 교회, 지역을 살리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살리는 것이다. 말씀성취는 그리스도와 전도를 깨닫고 나를 찾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를 찾는 것이다. 이 말씀을 보다가 놀랬다. 자기 때에 자기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다. 그래서 전도자를 찾는 것이다.

세가지를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복음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는지를 보라.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현장이다. 현장을 통해 복음을 점검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가 속성으로 가고 있나, 그리스도를 깨닫고, 전도를 깨달았는가, 전도로 말씀하신다고 했는데 엉뚱한 것을 찾지 않는다.

3가지가 신앙생활을 축이다.

그리스도로 복음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현장이다.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인생을 현장으로 주셨다. 두가지이다. 가는 현장마다 신분과 정체성을 놓치지 말게 하시는 것이다.

현장을 주신 것은 흑암이 무너지는 것은 나를 찾을때이다. 나를 놓치면 비교, 주눅, 상처, 답답함으로 사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우울해진다. 기분 우울하다고 놓칠 필요없다. 상관없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우울하다고 자신을 놓친 것은 잡혀있는 것이다. 기분에 노예된 것이다.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기에 약속으로 주셨다. 복음을 잡을 때마다 약속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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