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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과정에 속지 말자

복음에 빚진자 | 2018.06.13 19:45 | 조회 1557

201806월 13[] 과정에 속지 말자 (요한복음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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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과정은 인생이다. 인생이 삶이다. 어떻게 하면 과정에 안속게 되는가? 인생을 현장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여러분의 중요한 비밀이다. 내 인생에 속을수 있는가? 현장을 못 보면 속는다. 어떻게 누려야 하는가? 영적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육신만 가진 존재가 아니다.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면 영적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영적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적사실을 놓친다. ? 그래서 속는다. 사탄에게 속는다. 인생을 살면서 보면 한가지만 생각한다. 먹고 사는 것만 생각하기에 속는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이다. 영적존재로 만드셨다. 내 인생이 아니다. 영적존재라고 깨달으면 하나님 인생이다. 하나님이 만드셨다. 짐승이 아니다. 하나님 형상가진 영적존재라고 생각하면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돈버는 것만 생각하고 결혼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문제가 온다. 가족만 생각한다. 일터만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에게서 많으면 행복하고 좋으면 즐거운줄로 안다. 그래서 속는다. 영적존재는 영적사실을 모르면 한계가 온다. 좋은 일인데, 나쁜 일인데 한계가 온다. 과정에 속아서 그렇다. 과정에 속는 것은 이 속에서 영적존재로 창조된 것이 맞다면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온다. 지금도 변하지 않고 우리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이 있다. 아무런 상관없다. 먹고 사는 것과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데 우리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이 성령이시다. 악령도 움직인다. 그래서 언약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런데 나는 모르고 있다. 당연히 알아야 한다. 모르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언약을 모른다. 실제이다. 우리는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이다. 실상은 영적사실이다. 누려져야 한다. 그런데 과정속에서, 삶속에서 속는다. 내가 누군지를 모른다. 영적존재인데 먹고 사는 것만, 상처받은 것만, 인정받는 것만 집중한다. 좋고, 싫다. 그런데 영적존재라는 것만 놓친다. 영적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수준과 상관없이 성령도, 악령도 존재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을 이루시고 구원역사를 이루신다. 재창조라고 한다. 사탄을 무너뜨리고 끄집어내는 일을 하신다. 그리고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 흑암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비밀을 주신다. 이 세가지로 일하시는데 모른다. 그래서 속는다.

내가 한계가 오는 것을 몰랐는데 영적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 그래서 영적사실이 중요하다. 알라고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이 깨달아졌다. 항상 내가 한계에 잡혀서 살 수밖에 없다. 육신을 가지고 성령, 악령을 놓치니까 한계에 사탄이 속인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영적존재로 지으셨음이 발견되니까 믿어진다. 언약을 깨달아라. 믿으려고 애쓰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모른다. 악령도 성령도 일하는 것을 모른다. 사탄은 말씀성취, 구원사역, 기도응답을 못 누리게 해서 하나님 나라를 못 누리고 보좌의 축복을 권세로 못 누리게 한다. 그렇다면 사탄은 이것을 모르게 하기에 한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교회의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누려진다. 나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 넘어선다. 한계가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축복의 발판이 된다. 이것만 되면 한계가 없어진다. 한계가 왔다가도 넘어선다. 한계는 복음으로 넘어서는 것이다. 복음은 한계가 없다. 나니까 한계이다. 한계를 보면 다 사망이다. 그것을 알고나서는 지금 여러분이 속게 되는 것이다. 속으면 반드시 눌린다. 과정에 속으면 눌린다. 나에게 속는다. 영적존재로 복음을 주셨다. 모르면 영적문제에 걸려든다. 3장이다. 구원받고도 과정에 속아서 산다. 왜그러냐고 한다. 눌린다. 사람의 말에 눌린다. 칭찬에도 눌린다. 좋아해도 눌린다. 영적존재는 그것으로 못 산다. 반대로 비난하면 상처받는다. 비난받으면 나를 넘어선다. 집에 가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주신 것이다. 그러고 끝낸다. 교회 비판하는 사람은 답이 안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도 막을수 없는 문제가 온다. 속아서 그렇다. 영적존재라는 것만 알아도 영적사실이 생긴다. 그리스도는 내 영적문제를 회복하시려고 영적사실로 오셨다. 우리를 모르니까 육신가지고 있기에 눌린다. 그래서 정신차리고 복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망은 생명으로 이긴다. 사망에서 생명이 나타나면 위로의 수준이 아니다. 상처받는 것은 싸인다. 복음누릴 싸인이다. 그 속으로 들어가는 싸인이다. 밤새 앓으면 더 사망이 일어난다. 고민하면 잘못한 것으로 방법을 써야 한다. 변명을 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복음만 못 누린다. 하나님이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누리라고, 그리스도로 답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살라는 것이다. 사람을 쫓아다니고 변명할 필요없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복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모르고 고민했다. 사람찾아다니면 오해는 풀리는데 손해이다. 그런 소리는 계속된다. 그래서 나를 인정하고 복음속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복음 때문에 일하시는 것이다.

여기에 속으면 영적사실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람만 보고 영적사실은 모르게 한다. 권사님이 기도하는데 영적사실이 안보인다고 하는데 보일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영적존재로 지으셨음을 생각하면 된다. ? 그리스도를 누리라는 것이다. 영적사실로 그리스도를 주셨음을 생각하면 된다.

사람만 보이고 그만큼 낙심, 좌절, 절망이 된다. 누림이 안된다. 인간은 어쩔수 없다. 우리 조상때부터 아담이 하나님떠난 후부터 본질을 놓치고 영적사실을 못 찾아가도록 길들여지고 체질화된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정하면 된다. 힘빠진 것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로 끝내면 된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환경을, 사람을 보게 하시고 사람의 말을 듣게 하셨나?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남자와 여자만 있었다. 아담의 갈비뼈로 지으셨다.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하와를 이끌어오셨다. 모든 만남은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왜 그런가? 상대방의 잘못을 보라고가 아니다. 나를 보라는 것이다. ? 내 스스로는 못 본다. 그래서 상대방을 통해서 나의 복음이 안된만큼 낙심, 문제, 눌림이라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복음 알기 전에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는 나에게 복음이 안된 부분을 상대방으로 드러내신다. 그래서 상대방이 축복이다. 복음안에 모든 것을 주셨다. 복음안된 부분을 상대방을 통해서 보게 하셔서 찾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축복이다. 복음으로 가게 하시는 것이다. 알면서 사람의 말에 영향받지 않게 되었다. 민감했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영향받지 않았다.

사모를 이끌어오신줄로 알았다. 오만 여자를 쫓아다니다가 차였다. 잘해주면 질리다고 차였다. 마지막 남은 여자가 사모였다. 기도를 하다가 하와를 아담에게 이끄셨다는 말씀을 잡았다. 그때는 이렇게 알았는데 하나님이 택한 자는 이끌어오시는 것이다. 전도의 비밀이다. 깨달았다. 그러니까 모든 만남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이다. 3장 세상에서 이끄신 것은 나에게 복음이 안된 부분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을 찾아야 복음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상대를 통해서 복음의 축복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에게 문제가 없다. 답이 있기 때문이다. 응답으로 누리는 것이다. 확신으로 서기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사람도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것이다. 답을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눌림은 있다. 넘어선다. 여기에 계속 속으면 한계에 잡힌다. 그런데

밤새 고민해도 소용없다. 인정하고 복음으로 확신하고 잘못한 것을 말하면 된다. 잘못했다고 한들 원수처럼 보이기에 해결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오해를 하면 잘해도 안된다. 내 진심을 못 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면 오해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고 해봐야 싸움이다. 보이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화해시킬 필요도, 풀 것도 없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한다. 사망의 세력이다. 사망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망은 묶는 것이다. 염을 할때는 묶는다. 사망이다. 올무에, 틀에 갇힌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산다. 사망의 세력이다. 묶인만큼, 올무된 만큼 힘들다. 고민해봐야 갈수록 힘들어진다. 인정하라. 힘들다고 인정하라. 그리고 요 6: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는 것이다. 육은 영적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육이다. 유신이 육이 아니다. 영적문제에 빠져서 영적문제를 모르면 육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는 존재이다. 구원받고도 다 속는다. 영적존재라는 것만 모르고 산다. 돈버는 것으로 자식으로 산다. 먹고 사는 것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만 깨달으면 된다. 육은 무익하다. 살리는 것은 영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 복음이다. 복음에는 한계가 없다. 여러분이 한계를 잡았기에 내 기준에 복음을 잡았기에 한계를 넘어설수 없다. 복음은 힘을 누려야 한다. 힘은 영적사실이다. 이것이 힘이다. 나는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보이셨다. 그래서 나도 아들로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이 힘이다. ? 그렇게 보이셨다. 1:18절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우리는 영적존재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아는 힘을 누려야 한다. 왜 한계속에서 살리는 영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이 복음이다. 복음을 우리 육신기준에 맞추지 말라. 하나님을 아는 힘으로 잡아야 한다. 그러고보니 사람들은 누림이 없다. 문제에 잡혀있다.

기도한다고 없어지는가? 본질, 육신의 것인데... 안누려지면 육신은 나쁜 것이라고 해서 종교로 빠진다. 육신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만드신 것이다. 육신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메인 사람은 먹는 것에 묶인다. 좋은 말만 해야 한다. 싫은 것은 안 한다.

아일이는 자기만이라고 한다. 애들의 특징이다. 어른도 그렇다. 육이 약하다가 아니라, 자유해져야 한다. 그런데 살리는 것은 영임을 모르면 못 누린다.

19:30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했다. 나의 속죄, 저주, 재앙이 끝났다. 그래서 나도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문제도 이기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 눌려서, 낙심해서 눌린다. 잠이나 자야 되는데 갈수록 세진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믿어져야 한다. 살아계신다는 증거가 부활이다.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증거이다. 모든 문제는 십자가로 끝났기에 승리한다. 문제되는 이유는 영적존재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놓친다. 살리는 것은 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통하게 되어 있다. 예수 이름이다. 보좌가 움직인다.

14:13-14 아버지께서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아들의 한 일을 인정하신 것이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셨음을 안 것이다. 그래서 기뻐하신다.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가 영광받으시는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한계없는 복음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것이다. 이 비밀이 미래를 약속하신 것이다. 미래없으면 죽는다. 살수 없다. 할 일이 남은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나에게 주신 것을 찾아내야 한다. 렘넌트를 살려야 한다.

우리 교회의 마지막 기회이다. 문화센타를 지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회를 보면서 하면 안된다. 친구목사가 작은 교회를 사서 한국이민자 센타라고 했다. 그냥 하면 된다고 했다. 한글학교를 전액무료로 한다고 하면서 다민족을 한다고 한다. 그냥 하면된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했더니 그냥 써붙이라고 한다. 전도하러 나가서 한국이민자센타 홍보지를 만들어서 외국인들에게 줬다. 해야 한다. 기도부터 하라. 한글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하면 된다. 전액무료라고 해서 하면 된다. 가르치는 체계가 있다. 전액무료라고 쓴 것이다. 다문화 가정들이 행적적으로 필요한 것도 지원하는 것이다. 기도제목을 바꿔야 한다. 다문화 사람들이 많다. 들어가야 한다. 교회에서 모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문화전도를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과정에 속지 말라. 속지 않고 살리는 것은 영임을 누리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모든 것에서 역사가 일어나면 전도문이 열린다. 문제라고 보이는 것은 속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익하다. 그것을 활용해서 살리면 된다. 속을 것이 없다.

이 지역에 다민족을 살리도록 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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