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수] 이삭에게 보인 영적축복

복음에 빚진자 | 2017.11.29 20:15 | 조회 1841

20171129[] 이삭에게 보인 영적축복 (창세기 2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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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이삭에게 보인 영적축복은 보이지 않는 힘이다. 그 보이지 않는 힘으로 보이는 것을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이것을 누리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이것을 전달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보이는 것을 이기는 것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어야 세계복음화가 된다. 다 그럴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한사람이면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걱정할 필요업삳. 깨달은 사람이 많지 않아도 하나님은 깨달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세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1) 이미 실패속에 있는 사람이다. 왜 이미 실패속이라고 하는가? 영적사실을 모르면 그렇다. 영적존재가 영적사실을 모르면 영적문제에 빠져든다. 그러면 허상만 보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실패이다. 알고보면 세상 사람들은 싹 다 실패속에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행복이 아닌 것을 붙잡고 행복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실패이다. 분명히 답도 아닌, 생명도 아닌 것을 붙잡고 자꾸 행복을 찾으려고 하기에 이미 실패한 것이다. 답이 없는 것을 붙잡고 행복을 찾으려니 안된다. 이런 사람이 부러워 보이면 그 속에 빠진다. 숫자 많은 것을 부러워하는데 숫자가 답은 아니다. 생명은 아니다. 안 믿어질 것이다. 한 사람만 해도 된다. 알아가니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끝도없는 갈급함이 끝났다. 걱정근심이 많은 것은 답도 아닌 것을 잡고 답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답이 아닌데 묶여있어서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말 한마디도 못하는 것은 답도 아닌 것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이 착각하고 살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이 없다. 답이 아닌 것을, 답처럼 여기고, 생명이 아닌 것을 생명처럼,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처럼 여기고 살았다. 이것을 아니까 갈급함이 끝났다. 인생은 반복이다. 한계를 반복한다. 어제 한 말은 내일 또 한다. 답이 아닌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만 영원하다. 생명만 계속된다. 하나님이 답도 아닌 것으로 살고 있음을 건드리시는 것이다. 보이는 행복은 행복이 없다. 하나님은 사기꾼이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도둑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보이지 않게 두셨다. 죽이는 자, 멸망받은 자에게 속으면 보이는 것이 나에게 생명으로 여긴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안하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병들어간다. 실비보험 들어봐야 소용없다. 병들어간다. 이것을 어떻게 이기는가? 사람들은 병들 것을 두려워한다. 답이 아니기에 병들어간다. 죽어가고 있다. 영원한 보이지 않는 축복을 그리스도안에 감춰두셨따. 그래서 복음안에만 영원한 축복이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으로 현장을 보는 것이다. 남편도, 부인도 현장이다. 영원한 것이 아니다. 문제도 현장이다. 응답도 현장이다. 생명찾으라는 현장이다. 생명이 아니기에 생명찾으라는 것이다. 거기에 잡혀서 애걸복걸하면서 산다. 답답하게 살아간다. 현장이 아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에 속았던 나를 보이지 않는 힘으로 넘어서는 것이다. 이 비밀은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순간 누려진다. 잊어버려진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야 한다. 잊어버리고 사는 게 낫다. 외우고 다녀도 잊는다. 흑암이 잡으면 입도 뻥끗 못한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흑암이 잡아서이다. 성령께 맡기고 살면 된다. 맡기고 잊어버리면 성령이 일하신다. 핑계를 대는 것은 묶여서이다. 현장으로 보라. 잊어버리는 현장을 보고 기도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복음 안에 있는 영적축복은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는다. 약속이다. 잊어도 상관없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신다. 자신의 한계에서도 벗어난다. 변하지도,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수 이름에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일하신다. 연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 이름을 주셨다. 잡히지 않게 된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다. 일방적인 것이라 바뀔수 없다. 행복하다. 나에게 묶이면 행복이 없다. 약속이 안 깨달아지면 행복이 없다.

아일이 때문에 짜증난다. 아프니까 계속 칭얼댄다. 칭얼대는 것이 나에게는 신경질을 일으킨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기에 예수 이름을 부르면 천사를 보내시고 흑암을 무너뜨리고 성령으로 임하시는 것이다. 행복은 감사이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데 감사를 회복해야 한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으로 주셨다.

짜증나고 힘든 것도 나에게 잡힌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자신이 이루신다.

얼토당토한 말들을 한다. 해명을 해야 하나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꾸실 것이다. 그래서 개입할 필요없다. 나만 살리면 된다. 남말을 많이 한다. 자기에게 걸리기에 한다.

천안의 목사가 와서 자기 말을 무히사는 것 같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행동이 걸려서 그런 것이다. 그래도 복음만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잘못 알았다고 한다. 나만 살리면 된다. 세상 소리에는 생명이 없는 소리이다. 개수작이라고 써놨다. 개인의 수익을 작정한다는 것이다. 증권회사에서 쓴 말이다. 괜찮다고 보았다. 생명없는 소리가 개소리이다.

조금씩 누려가는데 하나가 보였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되어지고 안되어지는 것은 내 기준에 안맞을 때 안되고, 맞으면 된다고 한다. 복음 때문에 하나님이 선지자, 제사장, 왕의 약속을 이루실 것을 알고나니까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내 기준에 안 맞아서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아니다. 상관없다. 자랑도, 낙심도 없다. 내 기준에 걸려서 자랑도, 낙심도 한다. 나와 상관없이 예수 이름에 일어난다. 알고나니까 잘되도, 안되도 상관없다. 내 기준은 여전히 있다. 에수 이름을 약속으로 살아야 한다.

이 사실이 누려지면 두 번째가 된다.

2) 고통속에서 깨닫는 자들이다. 실컷 고통당하다가 영적축복을 깨닫는 것이다. 모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으니까 깨닫는 것이다. 못 깨달으니까 고통당한다. 나이 80이다. 그래도 40년은 쓰였다. 하나님이 쓰셨다기 보다 나머지 40년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린 것이다. 그래서 60만의 대군을 이끌고 광야를 지났다.

이것이 누려지니까 세 번째 것이 보였다.

3) 이미 응답속에 있는 자들이다. 어릴 때부터 깨달은 자이다. 다윗이다. 23:1,

요셉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축복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문제가 축복으로 바뀌었다. 하나가 보였다. 보이지 않는 힘을 누린 것이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형들이 나를 팔았다, 미워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애굽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것을 어릴 때부터 깨달은 자가 이삭이다. 어떻게 알게 되었나?

1.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하셨다. 22:1이다. 마귀의 시험이 아닌, 하나님의 시험이다.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신 것이다. 믿음을 더 견고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연단이라고 볼수 있다. 정금같이 순금같이 믿음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데 네가 사랑하는 아들 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복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독자이다. 이것을 보면서 이삭을 사랑하는지, 복음을 사랑하는지를 고민한다. 복음보다 아일이를 더 사랑하는지를 고민한다. 짜증을 내니까 복음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그냥 사랑스러울 때는 복음보다 더 사랑했었다. 짜증을 내는데 지금은 곧바로 복종하고 순종했다. 아일이의 종처럼 행동했다. 그 독자를 바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복음과 돈을 겸하여 사랑할수 없다고 했다. 사람은 중요한 것만 사랑하지 겸하여 사랑할수 없다. 돈은 생명이 아니다. 생명가지면 따라오는 것이 돈이다. 생명도 아닌 것에 목숨 걸고 살지 말라. 못 깨달으면 대단한 것처럼 여기면서 산다. 돈은 중요한데 생명이 가치가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도 있다고 했지 돈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보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보화라는 말을 달고 산다. 아일이는 먹을 것이 보화이다. 복음이 보화가 되어지면 가치가 복음에 있다. 이것을 테스트 하는 것이다. 진짜 관심이 어디있는가이다.

번제를 드리러 아침 일찍이 떠난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그런데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네 자손은 예수님을 말한다. 이 예수님은 이삭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믿었다. 이삭이 언약의 계보이며 그 계보를 통해서 예수님이 오심을 믿었다는 것이다.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삭을 죽이면 그리스도가 오실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죽여도 하나님은 이삭을 살리신다. 언약 때문이다. 언약을 지키시는 분, 행하실 분, 약속한 바를 이루실 분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지킨 것이 아니다. 행위가 똑바른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가 드러난 것이다.

이러니까 이삭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시기에 당연히 약속을 이루시기에 죽이면 살리실 것을 본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아침 일찍이 간 것이다.

그랬더니 이삭이 하나님께 번제드릴 제물은 어디있습니까?” 했다.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이 때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삭에게 들어갔다. ? 이삭의 질문에 하나님이 준비하신다고 하고 이삭을 아브라함이 잡았다.

죽어야 할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아무런 잘못도 안했는데 죽는다. 그래서 어린 양, 숫양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반항을 안 했다. 내가 죽어야 하는구나? , 원죄를 본 것이다. 3장을 본 것이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셔야 할 이유가 발견된 것이다. 이 때 아브라함에게 있던 믿음이 이삭에게 들어간 것이다.

이런 이삭이 중요한 것을 본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런 다음 바로 나온 것이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이 말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잡은 것이다. 이것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 아들을 바쳤다가 아니다. 내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리라가 아니다. 죽였다가 아니라, 죽였다가 다시 살린다는 것이다. 언약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언약을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이, 십자가로 모든 문제, 저주를 끝내시고 축복을 회복하신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언약 때문에 이제야 경외함을 아신 것이다.

부활로 영적사실로 이삭에게 저주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제야 이삭 대신해서 숫양을 죽이신 것이다. 언약으로 하나님을 안 것이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이삭을 아끼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언약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살리는 것은 언약밖에 없다. 생명은 언약밖에 없다.

그러니 두가지 응답을 주셨다.

17

그리스도와 세계복음화의 응답이다. 대적이 무너지고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러고 이삭이 받은 축복이 있다. 아버지를 통해서 복음을 깨달은 것이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준비하시니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이름으로 이 땅을 정복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삭은 어릴때부터 아브라함으로부터 전달받았다. 교사가 중요하다. 제일 불행한 것이 영적사실을 모르는 부모이다. 가장 큰 축복이 영적사실을 누리는 교사이다. 세상은 어디에서도 영적사실을 모른다. 교회가 소중하다. 복음을 알수록 모자란 내가 이 축복을 누린 것이다. 불평이 없다. 보이지 않는 힘이다. 보이면 안된다. 세상이 훔쳐간다.

류목사님이 안보이게 하신 것은 도둑이, 사기꾼이 훔쳐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알면 두 번째 축복이다. 1번은 모리아산에서 받은 것이고 두 번째는 르호봇에서 받은 것이다.

26:10-20 르호봇 축복의 핵심은 이삭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복음의 축복을 누리니까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축복이다. 이 축복을 누릴 것이다. 핏대높이고 싸워봤자 같은 수준이다. 조금만 생각해도 많은 것이 나온다. 혈압 올릴 필요없다. 같은 수준이다. 복음을 알아봐야 지식이다. 그러고 남만 말한다. 자신을 말해보라.

남 말하는데 알고보면 자기 식구 욕이다. 자신 욕하는 것과 같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비밀이 르호봇이다. 그 특징이 농사를 짓는데 한해에 백배의 축복을 받았다. 26:2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이삭이 내려가려고 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누이라고 아내를 속였다. 리브가를 안는 사건으로 인해 아비멜렉이 알았다.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그냥 그 땅에 있다가 속이려고 하다가 들켰다. 아비멜렉이 막아줬다. 한해 백배를 얻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비밀이 언약이다. 아브라함처럼 내려가지 말라. 믿고 있었다. 언약으로 확신하는 것이 응답이다. 그러니 보이는 결과도 바뀐 것이다. 그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시기한다. 백년치 응답을 받은 줄로 알고 시기한다. 방법은 우물을 막는 것이다. 물을 막으니까 싸우지 않았따. 옮겼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아브라함때에 파놓은 우물을 발견했다. 샘의 근원을 발견했다. 마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보다가 하나가 보였다. 싸우지 않고 승리한 것이다. 언약축복을 누려라. 보이지 않는 힘이 약속되어 있음을 믿으라. 복음안에만 있다. 양보하라. 더 큰 축복이 있다. 나가라고 하면 나갈 것이다. 더 큰 축복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못가서 무너질 것이다. 생명,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싸울 필요없다. 자존심을 건드려서 싸운다. 자존심이 아닌, 그리스도가 생명이다.

금방오지는 않는다. 과정이 있다. 진짜 응답은 르호봇이다.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진짜 세계복음화이다. 보이지 않는 힘을 복음으로 누리면 류목사님은 이 응답이 천년의 응답을 미리받는 것이라고 했다. 천년의 응답은 우리 힘이 아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계복음화를 받는 것이다.

몇 달 전에 하신 말씀인데 만들어놓은 말이라고 했는데 이삭을 통해서 야곱이 온다.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꿨다. 하나님이 막아주시는 사람이다. 이것이 천명이다. 야곱의 이름을 바꿨다. 미리 천년의 응답을 받은 것이다. 그 이삭을 통해서 요셉이 태어난다. 전 세계의 재앙을 막았다. 애굽의 재앙을 막았다. 영적기근을 막은 자이다. 세계복음화하는 응답이다. 모든 사람이 애굽으로 왔다.

오늘부터 이삭에게 보인 믿음의 전달자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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