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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복음에 빚진자 | 2018.04.27 20:52 | 조회 1853

20180427[]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고린도후서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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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12가지 문제의 특징이 있다. 3, 6, 11장을 함정이라고 한다. 13, 16, 19장을 틀이라고 한다. 불신자 6가지 상태를 올무라고 한다. 이 특징이 있다. 함정, , 올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영적인 근본을 못 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정이라고 한다. 영적인 근본을 못 보면 보이는 결과에 다 잡혀서 살아간다. 보이는 결과에 잡혀서 살면 불행해진다. 늘 불평한다. 감사가 없다. 있을 때만 감사이지 더 가진 사람을 보면 불평이 나온다. 왜 그런가? 영적근본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염려해야 한다. 근심해야 한다. 나보다 잘 된 사람에게는 시기, 질투가 나온다. 행복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날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어서 사는 증거가 이것이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었을 뿐이지 하나님과 같은 전능한 능력은 없다. 이것을 싹다 불행이라고 한다. 행복이 없다. 이게 무엇 때문에 불행한 삶을 끝도없이 살아가는가? 본질이 안 보여서이다. 본질을 보아야 한다. 그런데 본질을 어떻게 보는가? 볼수가 없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본질을 못 보고 살면서도 즐거워한다. 기뻐한다. 잘 살아간다. ? 그렇게 창 3장 때부터 길들여진 것이다. 즐거워한다. 염려하면서도 그런다. 죽고 싶다고 하면서도 지나면 좋다고 한다. 그러다가 죽고 싶다고 한다. 반복한다.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행복은 없다. 본질을 못 보는 만큼 눈에 보이는 결과에 잡혀사는 것이다. 그 사람은 반드시 행복이 없다. 그러니까 감사가 없다. 행복해야 감사가 나오는데 감사가 없다. 늘 불평이다. 오늘 본문에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몸에 짊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11절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를 위하여이다. 예수를 위하여 항상 죽음에 넘겨진다고 했다.

10절에는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이다. 이 몸이 육신속에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 없이 살아온 삶이 육신이다. 알겠는가? 그리스도없이다. 그리스도없이 살아온 삶은 육신의 것으로 행복을 찾을수 없다. 그리스도없이 살아온 만큼 창 3:4-6절로 산다. 내 중심으로 산다. 누구없이? 그리스도없이다. 그러니까 내 중심이다. 내 중심으로 살아온 만큼 내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다. 내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민감하게 반응한다. 뭐에 민감한가? 자기의 일 앞에서 민감해진다. 돈도 못 번다. 자기 것을 빼앗길까봐 헌금도 못한다.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자기 것이기에 헌금도 못한다. 사는 것이 다 나 중심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사탄이 주인이다. 구원받고도 그렇다. 자기 기준에 걸려서 산다. 자기 기준에 안맞으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기 기준을 채워주는 말에 좋아한다. 적는 것을 적는데 보지는 않는다. 그렇게 자기 기준을 채우는 말은 좋아한다. 돈도 안 벌려도 좋아한다.

자기 기준에 안 맞는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민감해진다. 금방 우울해진다. 기분 나빠한다. 왜 그런가? 나의 본질을 못 봐서 그렇다. , 3장의 나를 못 본 것이다. 그러니까 내 기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객관화가 될수 없다. 나를 이해해야 한다. 알고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이 안된 부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안된 부분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내가 나쁜 사람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의 들보를 보라는 것이다. 들보는 그리스도없는 것, 그리스도로 못 보는 것이다. ? 복음안된 부분이다. 사탄은 아닌데 못 보니까 흑암이다.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심각한 일이다. 대단하게 복음전하면 없는 줄로 아는데 아니다. 복음 전하는 것도 이 기준이다. 그래서 민감해진다. 복음 전했는데 다른 교회 가면 이상히 여긴다. 복음을 거부하면 발을 털고 냉수 한 그릇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교회를 가도 된다. 민감해서 그렇다. 3장 속의 나를 못보면 객관화가 될 수 없다. 나를 이해할수 없다. 영적존재라는 것을 모른다. 내게 영적문제가 온 것이다. 육신이 아니다. 영적문제이다. 이것을 보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육신 기준에 잡혀 산다. 이미 다른 나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만드신 나가 아닌, 사탄의 종노릇하는 나이다. 구원받고도 이렇게 산다. 복음 깨달았다고 하면서 그렇다. 하나님이 계속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게 하신다. 다른 사람에게는 감추려고 하는데 나에게는 못 속인다. 그 속에서는 우울해지고 가라앉는다. 기분이 금방 상한다. 나를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이다. 3장의 나를 못 보는 것이다. 나의 본질을 못 보는 것이다. 사탄에게 속고 있는 나이다.

그래서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이라고 했다. 왜 인가? 이 말을 보다가 깨달아진 것이다.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던 나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근본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다 이기준을 가지고 살기에 벗어날 수 없다. 빠져나올수 없다.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져야 한다. 생각과 마음에 집어넣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육이다. 생각과 마음이 육이다. 현장이다. 그 생각과 마음에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영적근본이 보이게 된다. 이해가 아니라, 깨달아야 한다.

누가 하는 말이 사람을 웃겨야 마음이 열려서 깨닫게 된다고 했다.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다고 했다. 바울이 복음 듣게 하려고 농담한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이 아니다. 그리스도없는 마음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영적사실이다. 이해차원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말하면 된다. 머리로 이해하지 말라.

왜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아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셨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근본을 보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내 생각과 마음에 담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적근본을 깨닫게 하시는가? 다른 것으로는 볼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으로는 절대로 볼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것을 가지고 근본을 볼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이 완성이 성육신, 십자가, 부활로 다 이루신 것이다. 완성이다.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을 보게 되는 것이다. 완성을 안 하셨으면 아직도 못 볼수 있다. 완성을 하셨기에 근본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우리의 근본이 보여지고 믿어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깨달아야 한다. 안 보여진다면 악령의 역사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근본이 보이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수 없다. 다른 것으로는 못 본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근본이 보여야 한다. 보여지는가? 어떻게 보았는가? 1:1절 나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증거로 보였다. 3장의 나의 근본문제이다. 나를 바꾸신 것이 아니다. 나의 근본을 바꾼 것이다. 보였다. 그것이 보여지니까 비로소 근본문제를 끝냈기 때문에 보여진다는 것이 깨달아진다. 근본문제를 끝냈다. 그래서 나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무엇르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하신 것이 나의 근본을 끝낸 것으로 보여지고 믿어지는 것이다. 끝났기에 고민할 필요,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고 보니까 나에게 하나님이 예수 생명을 누리는 길을 주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이다. 에수님이 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다. 이 부활이 나와 상관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 생명을 누리는 길을 주신 것이다. 부활로 끝이 아니라, 누리는 길을 보여주셨다. 이것이 본질 회복이다. 나에게 있는 것의 증거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예수 생명을 누리는 길을 주셨다.

안되는 문제에서 내 기준이 보여야 한다. 기분 나쁘게 하는 것에서 객관화되어야 한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가 아니라, 객관화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근본을 바꾸셨다. 그래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생명이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다. 상대보다 내가 더 악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모든 것을 살리는 생명의 비밀을 주신 것이다. 이 예수 생명이 본질이다. 예수 생명이 나의 생명이다. 생명의 족보속에 두셨다. 그러니까 보좌의 축복이 가는 곳마다 임하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워진 나이다. 믿어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누려야 한다. 나의 기준은 발판이다. 보이면 힘들어하다가 십자가, 부활로 끝났다. 끝났으면 내 본질이 보여야 한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십자가로 끝내셔서 예수 생명으로 약속하셨음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못 믿는다. 넘어서게 되는 것은 생명이 있어서이다. 보좌의 축복이 임한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증거할수 있는 것이다. 선지자, 제사장, 왕의 축복이다. 1:1절을 통해서 나의 본질이 누려져야 한다. 이것이 안 누려지면 문제를 이길 것이 없다. 육신에 길들여져 있기에 본질을 못보고 당하고만 있다.

육신에 일어나는 싸인이다. 영적인 것을 누리라는 싸인이다. 고쳐지지 않아도 생명을 누리면 된다. 그런데 안 누려지고 기준에만 관심을 가진다. 약해지는 것이지 없어지지 않는다. 생명을 누리면 껍데기가 힘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싸인이다. 발판이다. 없애지 말라. 오히려 있는 것이 좋다. 생명이 있다.

내 기준으로 인해서 힘들다고 하는데 생명을 보면 있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지랄맞은 사람이었다. 이것이 없었으면 메시지를 할수 없었다. 육신은 늘 뒤집혀진다. 생명은 변하지 않는다. 좋다 말았다가 없다. 늘 충만이다. 육신은 좋다, 나쁘다 한다.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 평화협정을 한다고 하는데 한나라당은 선거에 죽쑤었다고 한다. 저러다가 한방에 간다. 그것도 육이다. 기쁨도 육이다. 오래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좋았다가 내일은 아니다. 육이다. 육으로 깨달았다고 한 것을 가지고 끝났다고 하다가 안 끝났다고 한다. 육으로 깨달은 것을 분변하지 못한다. 영은 영이고 육은 육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고 했다. 육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모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영인지 육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지금까지 좋아하고 감사하던 것이 육이다. 어제는 좋았다가 눈뜨면 아니다. 그래서 늘 지쳐있었다. 깨달았다고 하는데 대단하지 않다. 어느날 영적인 것이라고 알아지니까 변하지 않는다. 반석된다. 육신의 기복에 영향받지 않는다. 무시당하는 것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그럴수 있다. 누려지니까 넘어간다. 발견해야 한다. 이것은 메시지이다. 싸인이다. 발판이다. 어마한 본질을 보라는 것이다. 영적인 본질이다. 놓치지 말라. 이것이 행 1:1이다.

1:3 이때 보여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끝냈기 때문에 우리의 본질이 보인다. ? 우리 안에 완성되신, 마귀의 일이 멸해진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성령이 내주하신 것이다. 완성된 것이다. 이것을 알고나서 내가 사는 것은 늘 육이었다. 성령으로 안 살았다고 보였다. 완성된 것이 들어왔다. 다 이루셨고 이루심은 성령으로 인치셨다. 그래서 나는 선지자, 제사장, 왕권을 가진 것이다. 굉장한 능력이다. 그러니까 가는 곳마다 모든 저주를 무너뜨릴 힘이 있다. 가는 곳마다 생명의 축복을 전달할 힘이 있다.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릴 힘, 모든 것을 바꿀 힘이다. 우리 안에 있다. 예수 이름으로 누리는 것이다. 보니까

1:8이 내가 사는 길이다. 복음이 누려지면 우리 부목사가 보인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대로 하신다. 1:8절이다. 이것은 절대계획이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 조상들이 죽임을 당했나? 주기철 목사같은 경우는 핍박을 받고 죽었다.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 북한을 놓고 기도하는 것은 복음으로 통일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북한 지하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좌파정권이 무너지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문재인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남북한이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이런 사람도 쓰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계를 움직일 때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쓰셨다. 바로도 복음 깨닫는 도구로 쓰셨다. 복음모르면 망한다고 쓰셨다. 불신앙하던 이스라엘이 홍해앞에서 불신앙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깨달은 사람만 들어간다. 우리 교회에 세계복음화의 일꾼이 한명만 있어도 하나님이 일하신다. 바로도 쓰시고 모자란 초대교회도 쓰셨다. 본질을 찾았다. 그래서 껍데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은 두가지 때문이다. 나는 행 1:3절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미션이다. 그러면 행 1:8절속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잡는 것이다. 1:1, 1:8절이다. 그 약속이 행 1:3절로 내게 들어와 있는 것이다. 기도는 다 이루신 것을, 약속하신 것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다. 완성된 응답을 받은 나를 통해서 이루신다. 1:1, 3, 8이 성경의 내용이며, 결론이다. 66권의 집합이다. 이것을 깨닫고 기도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났다. 1:14 완성된 응답이다.

전도사님께 지속할까를 고민하다가 전도자신밍 팀전도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다락방은 전도사님께 미션을 줬다. 그 다락방은 복음 깨달은 사람과 언약잡은 사람이 모인 것이다. 그래서 전도에 마음을 품은 사람의 다락방이 되어야 한다. 전도사님이 세린병원에 데리고 가서 보여야겠다고 했다. 기도하는 것이 팀을 달라고 기도했다가 팀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묘하다. 우리가 하는 다락방은 복음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깨달은 다락방이다. 1:14이다.

14절 다락방의 특징은 팀이 있어야 한다.

이전부터 다락방은 집에서 하는데 하나님이 이사를 하게 하셨다고 하면서 전도가 되어지는 다락방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알아듣는 사람은 안 왔으면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못 알아듣는 두 사람과 하고 있다. 불편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려고 했다. 전도사님이 들어간다고 했다. 이것을 잡으면 중심을 본다는 것은 기도제목,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을 잡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다.

다 이루신 언약을 통해서 나를 찾게 하셔서 내가 가진 육신의 모든 것이 영적인 것을 누리는 발판으로 실족하지 않고 완성된 약속을 주신 것을 팀으로 이루시는 성경적 전도가 되어지도록 다락방이 생기도록 지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가서 메시지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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