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금] 참제사장되신 그리스도

복음에 빚진자 | 2018.05.18 20:53 | 조회 1595

20180518[] 참제사장되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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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43:21절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내가 내 백성을 창조하셨다고 했다. 왜 하셨나? 창조하신 이유가 아무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창조하실 때는 목적이 있다.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는 짐승은 할수 없는 것이다. 사람만 할수 있다. ? 사람은 창 1:27 영적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적존재인 인간이 가장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이 예배이다. 그렇다면 잘 보라. 내가 예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아니면 내 착각속에 드리고 있는 예배인가이다. 이것을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예배는 내 착각속에 드리는 예배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영적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예배해야 한다.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하신 일을 통해서 알 때 찬송하게 된다. 찬송함으로써 기분을 고조시키는 것이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송하는 것이다. 나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어야 한다. 아니고 착각속에서 예배하면 안 받으실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순종해야 한다. 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순종 안하는데 예배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영적을오 순종할수 있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순종하게 되어 있다. 우리 인간을 선지자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 임마누엘을 아는 존재이다. 그렇게 창조하셨다. 영적존재이다. 인간은 영이신 하나님과 함Rp 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그래서 원래 인간은 믿어지게 되어 있다.

인간을 제사장적 존재로 지으셨다. 그래서 교통할수 있었다. 어디에 있든지 예배하고 교통할수 있었다. 기도가 되어진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기도가, 예배가 되어지는 존재였다. 그러면 하나님이 천사를 움직이시는 것이다. 삶에 중요한 것이 천사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야 악한 사탄으로부터 보호할수 있다.

아일이를 놓고 기도하는 것이 악한 사탄으로부터 보호되도록 천사를 동원해달라고 기도한다. 그 기도를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도 들었다. 그러다가 악한 마귀라는 말을 한다. 뜻도 모르면서 한다. 발견이 되는 순간 예배라는 것을 알았다. 눈이 열렸다. 기도가 안되고 있다. 그래서 맥놓고 사는 것이다.

원래 인간을 왕적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다스리고 정복할수 있는 대임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존재이다. 그렇게 만드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존재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무너뜨린 사건이 창3장 사건이다. 3장 사건으로 가장 먼저 온 것이 있다. 자신 있게 말해보라. 창조원리이다. 어디에서도 창조원리를 말할 정도로 박혔다. 3장 사건으로 온 사건이 보이지 않는 영적사망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먼저 왔다. 그래서 먼저 온 사건이 하나님과의 예배가 실패한 것이다. ?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죽었다. 예배가 안되는 것이다. 사탄에게 잡혔다. 가만히 살면 사는게 우상숭배가 된다.

3장 사건의 키가 영적으로 단절된 것이다. 당연히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할수 없다. 사탄에게 잡혀서 살수록 힘들어진다. 예배실패로 인해서 가인의 사건이 일어났다. 가인의 예배를 안 받으시는 이유가 있다. 곡식예배를 드려서 안 받으신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만나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만나려고 했다. 착각속에서, 3장 자신 중심으로 예배한 것이다. 왜 하나님이 안 받으신 것인가? 요일 3:12 악한 자에게 속하여라고 했다. 마귀이다. 자신의 영적상태를 모르고 재물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곡식예배를 안 받으신 것은 왜 가지고 들어갔는가? 자신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려면 아벨과 같은 예배를 드려야 한다. 3장 사건 때문이다.

정성스럽게 해도 하나님을 못 만난다. 자신의 상태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아벨이 창4:1-11절에 드린 예배를 히 11:4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의로운 자라는 칭함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은 하나님이 보실때는 의롭다, 죄가 없다는 것이다. 11:4 더 나은 재물을 가지고 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물이다. 자신의 문제를 아는 예배를 드린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아니까 그리스도 제물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예배는 행위가 아니다. 행위는 결과일 뿐이다. 내 상태를 모르면 각각이 된다. 종교예배이다. 종교예배는 다 다르다. 아벨은 더 나은 예배를 드렸다. 자신의 상태를 안 것이다.

예전에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마음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찬송하고 회개기도했다. 준비한다고 했다. 어느날 이목사님이 찬송준비한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그리스도 붙잡고 나가라고 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준비이다. 그러면 당연히 그리스도를 붙잡고 가야 한다. 3장 문제가 왔을 때 예배를 실패하게 한다. 내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좋은 것을 가지고 나갈 수밖에 없도록 사탄이 한 것이다. 내 마음을 알기에 그리스도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d

창세기 3장을 알면서 예배도 다 뚫렸다.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영적문제가 와서 모르는 것이다. 알수 없다. 나귀는 임자를 찾아간다. 영적존재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찾아간다. 내 백성은 그러지 못하는데 영적문제가 와서 예배에 실패한다. 그런데 예물을 가지고 나아간다. 자신의 문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3장에서 실패한 예배를 구약의 끝에서 말한다. 1:10-11절에는 예배를 경멸하신다고 했다.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예물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안 받는다고 하셨나? 상태를 모르는 예물이다. 형식적으로 드린 것이다. 그냥 예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경멸하는 것이다. 내 상태를 알면 예수 이름밖에 없다. 오직, 유일성, 재창조밖에 없다. 상태를 알기 때문이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을 붙잡은 흑암이 무너져야 한다. 보이면 하나님이 무너뜨리신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 이름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내 이름을 경멸하는 것은 상태를 모르기에 이것 저것 잡는다.

12절에는 이방에 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말세때의 일이다. 상태를 알아야 한다.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사탄에게 잡혀서 예배에 실패하는 것이다. 가짜로 예배한다. 상태를 모르고 나온다.

예수 이름이 모든 것이다. 간절해지고 힘이 나게 된다. 그리고 내 삶이 하나님이 축복이 임한다. 그냥 예배가 아니다. 내 상태를 알면 영적축복이 임한다. 인생의 문이 열린다.

이렇게 되고 나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들의 행위는 형편없었다. 일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늘 기뻐하셨다. 무엇을?

아브라함이다. 분명히 실패했다. 그런데 돌아올 때는 단을 쌓았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아벨이다. 그냥 예배가 아니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더 나은 제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제사이다. 가인은 사탄에게 잡혀있는 제사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제사장되신 그리스도를 붙잡는 예배하는 사람이다.

윤경화집사가 눈이 열렸다. 상태를 보면 저절로 참 제사장되신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가게 된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예배, 기도가 된다. 교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진자 예배가 되려면 요 14:13절을 깨달아야 한다. 왜 이 구절을 예배로 잡았는가? 예배는 곧 기도이며 삶이다. 영적예배라고 했다. 그러나 모이는 예배도 있다. 14:13절을 깨달아야 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님이 행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 예배의 중요한 것은 피제사를 드리면서 예수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 이름을 부를 때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왜 그런가? 인간의 상태 때문이다. 인간의 상태가 영적으로 죽은 것, 사탄에게 잡힌 것이다. 여기에서 빠져나올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하셔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품고계신 것이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원하신다. ? 아들이 하나님이시다.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서 인류를 구원된다면 희생시켜야 한다. 예수님이 아신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버리시고 낮추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신 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켜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데 예수님이 마음을 읽고 자신을 버리고 낮아지셔서 십자가로 희생하셨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지켜보셨다. 그래야 인류를 구원할수 있다. 하나님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다. 인간이 마귀 말을 듣고 하나님을 떠났는데 구원하려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을 통해서 희생하고 온 인류가 구원받기에 알고 오셨다. 그래서 희생당하셨다. 하나님이 보실 때 고통이다. 그 희생이 끝나면 인류가 구원받을수 있기에 지켜보시는 것이다. 어느날 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희생하면 내가 구원받는다를 아는 자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연평해전에서 죽은 병사의 부모들이 이해된다. 그렇게 죽었다. 그래서 그 아들 때문에 국가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슬플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다. 자신의 아들로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면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에 진노하신다. 그런데 성령을 보내셔서 스스로 모르기에 예수로 구원하심을 알도록 하셨는데 모르기에 진노밖에 없다. 알아들으라고 성령도 보내셨는데 모르고 예수 이름을 모른다고 하니까 축복도 없다. 하나님이 미동도 안하신다. 예배의 비밀은 내 아들의 이름을 불러라. 그러면 찾아오겠다. 내 아들이 희생당한 것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연평해전에서 죽은 자들의 부모는 마음이 상할 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기념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다. 예배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 아니면 하나님은 미동치 않는다. 예수님이 희생하심으로 내가 구원받았음을 알기에 기뻐한다. 그래서 누구든기 예수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이다. 내 상태를 알면 예수 이름이 필요해진다.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신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 육신적으로는 알수 없다. 되는 것이 없다. 돈많은 것이 사랑이 아니다. 재벌들은 더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나를 구원한 것이 사랑이다. 이 사랑을 알아달라고 하는데 알지 못하면 고통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기에 진노가 임한다. 구원받은 자가 더 큰 진노가 임한다. 고통도 모르고 사랑도 모르기 때문이다. 14:13절이 모든 것의 비밀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이루셨다.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시고 사탄에게서 구원하시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힘을 주시고 알도록 예수 이름을 주시고 성령을 주셨는데 모르기에 하나님이 미동도 않으시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고통과 희생을 아는 것이다. 예수 이름이 아니다. 자신의 아들을 인류를 위해서 죽이는 것은 버림이다. 고통이 심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을 깨닫고 희생 때문에 구원받았음을 알면 아들로 아버지가 영광받으신다. 내 아들의 희생을 알아주기에 다 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깨달은 날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담기게 되었다. 아들이 희생당한 비밀을, 구원받고 정복하는 비밀을 알고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깨달은 날부터 다른 것이 필요없어졌다. 이 비밀을 알았는데 세상이 두렵지 않다. 문제가 두렵지 않다. 일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안된다. 예수 이름이다. 아들로 인하여는 아들이 한 일을 알아달라. 그것으로 구원받고 세계정복할 권세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있던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 지심으로 실행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회복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것을 정복할 권세, 모든 죄와 저주가 건드리지 못할 존재로 회복된 것이다. 예배회복이다.

예배에 실패했다. 가인의 곡식예배를 안 받았는가? 감사예배인데 자기 기준의 감사, 영적상태를 못 본 것이다. 보면 영적상태를 본 그리스도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아벨은 보았다. 내 상태를 모르고 예배한다는 것은 아니다. 보면 알게 된다.

회복해야 할 부분이 있다. 오늘부터 예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 상태도 중요하지만 13절에 내가 시행한다고 했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무엇이든지 내가 행한다고 하셔따. 예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이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상태를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태, 배경을 생각한다. 배경을 생각하니까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문제가 와도 문제라고 생각하는 상태를 보아야 한다. 힘든 문제, 경제문제가 와도 상태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 기도가 달라진다.

이 상태를 생각하면 내가 한다고 하셨나이다. 지금 이땅에는 흑암이 가득하다. 흑암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왔을 때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부르면 문제해결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흑암이 꺾이지 않는다. 항상 상태를 생각해야 한다.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문제속에서 모르는 것, 놓치는 것이 보인다. 흑암의 역사이다. 그래서 예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예수님이 시행하신다.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이다. 흑암이 무너지는 비밀은 상태를 생각하고 예수 이름을 부르면 흑암이 꺾인다. 내 안에 확신이 생긴다. 흑암은 무너지는 것이다. 믿음이 생긴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너진 것, 끝난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확신이 없으면 문제에 잡힌다. 사람은 별수 없다. 여러분이 중요한 것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안된다. 상태를 생각해야 한다. 바깥에 문제가 많더라도 뒤의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나에게 주신 것, 축복이 누려진다. 나에게 주신 것은 성삼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하셨나? 그리스도 필요한 영적존재로 창조하셨나? 나를 통하지 않고는 일하시지 않는 것이다. 내가 중요해진다. 가치가 달라진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인생에 흑암이 무너지고 가는 곳마다 보좌가 움직이는 축복이 임한다. 예배라고 할 때 드리는 것으로 알았다. 예배는 보좌의 것이 나오는 것이다. 이땅에 사는데 보좌가 누려지는 것이다. 예수 이름이 있어야 한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시행하신다. 우리 상태를 아신다. 자신의 아들의 희생을 알아준다. 구원받은 것이다. 이것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아버지가 영광받으시고 시행하신다. 자신의 아들의 희생으로 나에게 엄청난 축복이 있다. 예배는 상태부터 알아야 한다. 상태를 모르고 예수 이름을 부르면 소용없다. 가인, 말라기, 이사야서에서도 실패하고 하나님께 가지 못하는 것은 상태 때문이다.

 

우리의 상태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주신 예배의 비밀을 알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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