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금] 아브라함의 세가지

복음에 빚진자 | 2018.02.02 21:19 | 조회 2370

20180202일 [금] 아브라함의 세가지 (창세기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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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훈 목사

 

서론

한 주간 성도들과 함께 귀중한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수 있어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다. 우리 렘넌트들에게 메시지를 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르다. 렘넌트들에게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다. 그런데 여기 서면 굉장히 부담감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책임감이 든다. ? 여기서 잘못 말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 렘넌트들에게도 그렇긴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현장에서 바로 뛰어야 할 중직자들이다. 교회에서는 아주 중요한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잘못 말하면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되도록 조심하려 애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증인 전도자들이다. 그냥 전도자가 아니다. 증인 전도자들이다. 그래서 세가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가 버릴 것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나오기 전에 먼저 아버지인 데라가 갈대아를 떠났다. 성경에는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유대전승에 의하면 데라의 첫째 아들인 하란이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고 한다.

노아가 950세를 살았는데 아브라함, 하란, 나홀이 태어나기 2년 전에 죽은 것으로 샘이 된다. 하란의 뜻은 갈급함, 마름이다. 그리고 나홀은 코웃음이다.

원래 장자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알려주는 것으로 보아 하란에게 창 3, 6, 11장의 사건들을 소상히 알려줬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전승에는 하란이 갈대아 우르 땅에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형상우상들을 파괴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반면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우상 만들어서 팔고 아들은 우상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고 하여 다 부수고 다니고 데라가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란은 한이 있었다.

그러다가 하란이 갈대아 우르 사람들에 의해서 죽었던 것 같습니다.

셈의 후손이다. 9:26절에 셈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아가 축복했다. 언약적 축복을 받은 가문이다.

셈이 400살이 되던 해에 아브라함이 태어났다고 했으니 하란은 아마 셈이 300세 되던 해부터 350세 되던 해 사이에 태어났을 것이다. 사라가 아브라함보다 10살이 적었다. 그렇다면 사라가 하란의 딸이기에 하란은 못해도 50살은 되었을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

셈을 통해 창 3, 6, 11장을 전달받은 하란은 우상파괴하고, 아버지는 우상 만들고... 아버지 사업에 방해하는 아들이다. 그런 아들이 죽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인데 우상 만들고 살았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코웃음치거나 하나님을 코웃음치는 자였다. 하나님을 섬겼던 하란은 죽임을 당했다. 죄책감이 안 생길수 없다. 미안함 마음이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 땅을 나왔다. 그리고 가나안이라는 지역을 향해 갔다. 나왔는데 여전히 거기에 묶여 살았다. 그래서 하란이라는 땅에 머물렀다.

중요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우리 증인 전도자들은 12가지에 각인된 나를 빨리 버려야 한다. 이것은 상처만 생긴다. 나왔는데도 상처가 된다. 상처는 내 마음과 생각에 파고든다.

데라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죄책감일수 있다. 아들에 대한 연민일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상처로 인한 상실감이 되어졌다.

우리 증인 전도자들은 이 순간부터 상처를 벗어버려야 한다. 주눅드는 것도 벗어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들은 엄청나게 큰 일들이다. 이것을 기대해도 좋다. 사람이 일을 계획한다고 해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16:9절이다. 우리가 일을 계획하는 것이 복음과 맞다면 하나님이 그 걸음도 인도하시게 되어 있다.

우리가 버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데라가 버리지 못하니까 아브라함도 똑같이 버리지 못한다.

아브라함이 창 12:1-3 다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조카 롯을 데리고 나간다. 이유는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된 조카가 안쓰러운 이유이다. 하란의 아들이 롯이다. 그렇다면 가문의 장자이다. 그래서 아들로 삼을수는 없다. 그렇다고 재산이 많아서 물려주려고도 아니다. 안쓰러워서 데리고 나왔다. 언약때문이 아니다.

결국은 데리고 나온 롯과 대립한다. 그래서 분열된다.

15:2 후손을 바다의 모래같게 하신다고 했는데 안 믿는다. 믿음직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나 축복해주라고 한다. 포기한다.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 후대들과 새신자들에게 전달된다. 여러분들은 특히 증인 전도자이며, 중직자들이기에 더욱 상처와 주눅드는 것을 버려야 한다.

버리라고 버려지는 것인가? 아닌 것을 안다. 그런데 이미 답도 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언약적 축복이다. 나의 수준과 상관없이 이루신다는 분명한 약속을 지닌 축복이다. 이 축복이 있기에 버려야 한다.

 

두 번째는 누릴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믿음으로 가지 못했다. 내가 복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믿음도 없었다. 가나안에 가까이 오니까 토착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냥 믿고 기다리면 되는데 못 기다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 우리도 못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한 것을 누리고 있으면 되는데 믿고 기다리지 못한다. 성령을 권능으로 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받았다. 그런데 누리지 못한다. ? 사탄이 성령의 권능만 놓치게 한다. 이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동시적인 역사가 일어나는데 천사가 수종들게 된다. 그러면 사탄의 저주와 재앙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자신이 무너질 것이 뻔한데 가만히 놔둘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건은 어쩔수 없는 일이기에 놔두고 성령이 권능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모르도록 조급하게 한다. 그러면 천사가 우리 앞서서 역사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사탄은 무너지지 않는다.

원래 사탄은 우리와 싸울수 없는 존재이다. 만약 싸우는 존재였다면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와 싸워서 죽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내가 무찔렀노라~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심부름하는 자로 지어졌기에 건들 수 없다. 그러니 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속이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 그런데 거기에 인류가 걸려 넘어간 것이다.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내려오셔서 성령이 임할 때 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도 모든 일에 기다리면 된다. 무엇을 기다리나?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기대한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미리 보고 미리 응답받고 확신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래서 우리 중요한 중직자들은 기도로 기다리면 된다. 5가지 기도이다.

먼저 나를 구원하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기도이다. 내가 먼저 바르게 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없다. 나는 희미한데 남에게 올바른 것을 말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얼마나 슬픈일인가? 그래서 먼저 매일 구원의 감사가 나에게 있어야 한다. 환경을 보고 시대를 보고 구원에 대한 감사가 바르게 이어져야 한다.

두 번째는 말씀의 흐름이다. 강단을 통해 한주간의 말씀의 흐름을 잡는 것이다. 원단을 통해 한 해의 흐름을 잡는 것이다. 핵심, 화요모임, 본부 메시지를 통해 한달의 말씀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기도수첩을 통해 오늘의 말씀의 흐름을 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흐름을 타지 못한다.

왜 기독교에 문제가 왔는가? 그것은 저는 설교에서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성공신학, 번영신학이라고 해서 이렇게 하면 성공할수 있어. 저렇게 하면 복받을수 있어식의 설교들이 결국 인생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요행수만 쌓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인스턴트라고 말한다. 우리는 분명한 말씀의 흐름이 있다. 이것을 알고 전달해주는 것이다.

한해, 한달, 한주간, 하루의 말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오는 것이 나의 삶의 방향에 그리스도로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말씀을 전달해도 내 학업과 직업과 말씀이 성관이 없으면 우이독경이 되는 것이다. 결국에는 문제가 터져야 그때 가서야 말씀을 듣는다고 한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중요한 응답은 다 놓치게 된다. 세계복음화의 응답은 못 받는다.

이 집중의 시간이 아침과 저녁에 이뤄지고 낮에 확인되어지면 옛 것에 각인, 뿌리, 체질되고 틀, 올무, 함정속에 있었던 것에서 갱신되고 도전하게 된다. 그것이 치유이다. 몸이 낫는 것이 치유이고 정신이 온전해지는 것이 치유가 아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병명은 알수 없지만 학자들간에 안질이라고도 말하고 간질이라고도 한다. 간질이라고 생각해보자. 설교를 하다가 그냥 푹 하고 쓰러져서 몸을 떨고 거품을 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하겠는가? 네 몸이나 고쳐라. 무슨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냐?

바울이 고침을 받기 위해서 세 번이나 간절이 구했다.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몸이 고쳐지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그대로 있으면서 쓰러지더라도, 거품을 물더라도 나는 약하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낫는 것이 치유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것이 치유이다. 그 다음은 따라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치유가 일어나면 24, 25, 영원의 일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뜻에 내가 맞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같아지는 것이다. 얼마나 기쁜가? 내가 꿈 꾼 것이 하나님의 뜻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내가 기쁠까 하나님이 기쁘실까?

이속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기다림도 기도 속에서 누려야 한다. 누림의 축복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원한다.

 

세 번째 찾을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찾아야 한다.

가나안에 갔는데 그곳에 기근이 있었다. 기다리면 되는데 못 기다리고 애굽으로 갔다.

애굽에 가서 상처가 도졌다. 하란이 죽은 것처럼 애굽의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예전의 상처가 드러난다. 사라가 이뻐서 그렇다고 하는데 나이가 60세 된 사람이다. 할머니이다.

그리고 광야를 지나서 온 상황이다. 애굽의 여자들은 화장에 갖은 액세서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할머니가 그렇게 마음에 들겠는가? 그런데 마음에 들었다. 사라도 언약의 자손이다. 그래서 칠하지 않아도 눈에 띈다.

여러분이 언약의 자손이라면 칠하지 않아도 빛이 나고 향기가 난다. 걱정하지 말라. 세상이 말하는 그 향기는 향수로 지우는 향기이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가 난다. 걱정하지 말라.

그래서 여자 빼앗겼다. 언약이 있다. 하나님은 바꾸시지 않는다. 사라를 통해서만이 여자의 후손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셔야 한다. 여러분이 집안에 들어가서 집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언약의 자손이라는 증거이다. 사람 잘못들이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나? 그러면 그 사람이 언약가진 자일 가능성이다. 예비된 사람일 가능성이다.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재앙은 바로가 당했다. 그런 욕먹었던 적 있다면 내가 언약에 예비된 자였기에 그랬던 것이다. 상심하지 말라.

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16절에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 준 것을 다시 빼앗을수도 있는데 안 했다. ?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롯이 전쟁으로 인해 잡혀가는 일이 발생한다. 그때 집에서 키운 300명의 군인들을 끌고 가서 5국가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했다. 조카 하나 데리고 가족만 딸랑 데리고 나온 아브라함이 어디서 그 인원을 얻을수 있었나? 이때 바로에게서 얻은 것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큰 재산을 이끌고 사람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다면 당시 아람, 애굽, 우르 등에서 쳐들어왔을 것이다. 가나안은 생각지도 못하고 노예로 끌려갔을 것이다.

우리가 실수해도 하나님은 언약을 잡은 자에게 반드시 역사하시게 되어 있다. ?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처럼 식언치 않으신다.

돈 준다고 했다가 떼어먹지 않으신다. 약속했다가 안지키시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이 이후 언약을 다시 회복했다.

우리는 연약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1000년동안 할 일을 해도 하나님은 한순간에 이루시기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신다.

그래서 항상 언약을 찾아야 한다.

13:4 그가 다시 처음 제단을 쌓은 곳으로 갔다. 언약을 분명히 회복한 것이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찾으면 된다.

이후로 아브라함이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삭을 드리라고 했을 때도 과감하게 드렸다.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찾은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큰 역사를 준비하며 구원하시고 교회의 응답을 준 우리 증인 전도자이며, 교회를 살릴 중직자들로 이시간 함께 기도하기를 바란다.

버릴 것, 누릴 것, 찾을 것을 나의 오늘 속에서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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