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금] 우리는 그가 만드신 자라

복음에 빚진자 | 2018.04.06 21:02 | 조회 1569

20180406[] 우리는 그가 만드신 자라 (에베소서 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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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우리는 그가 만드신 자이다. 우리를 하나님이 재창조하셨다. 재창조의 기준은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이것을 평상시에 누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이속에 있으면 끝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발견하면 하나님은 24시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니면 묶인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되는데 밖이다. 그러면서 힘들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다. 그가 만드신 바라고 했다. 우리를 그가 만드셨다. 그가 나를 어떻게 만드셨나? 그리스도 안에서 재창조하셨다. 그리스도와 나를 별개로 보면 아무것도 안된다. 여러분이 힘들다, 어렵다, 맞다... 그리스도 밖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자신의 뜻대로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는 것이 믿음이다. 믿습니다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는데 그리스도 밖에서 보면서 믿는다고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 십자가, 부활안에서 나를 보아야 한다. 찬송가 중에 162장이다. 멜리디도 가사도 좋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라고 하는데 대화는 그렇다. 오늘 렘넌트를 만나고 여의도에서 다섯명을 만났다. 권사, 목사, 집사, 기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고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끝내셨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못보니까 진노하신다. 불뱀을 보내신다. 불뱀이 끝난 증거를 못 본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못 본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1. 2:1-3절은 내가 주인된 상태이다. 왜 내가 주인되었는가?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이다. 영적죽음이다. 눈에 보이는 자신만 선이다. 그것이 옳다고 한다. 마음, 자신에게 마음 안들면 악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로남불이다. 그것이 내 기준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눈에 보이는 자신만 기준을 삼는다. 그러니까 눈에 안 보이는 얘기를 할수 없다. 그 기준에 맞고 안맞고만 말한다. 영이 죽어서이다. 2:2절에는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했다. 내가 기준된 배후에는 반드시 사탄이 있다. 내가 주인되어서 살면 반드시 사탄에게 당한다. 2:3 본질이 진노의 자녀이다. 마음에 안 드는 말, 드는 말만 계속한다. 영이 죽었다. 사탄이 그 영을 잡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12가지 기준으로 살아간다. 알고 보면 다 똑같다. 여기에서는 믿음이 없다. 죽었는데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는 만큼 눈에 안 보이는 사탄의 영향, 사탄에게 끌려 다닌다. 그냥이라고 안하고 2:3절에는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라고 했다. 이것이 나이다. 육체에 잡혀있는 나이다. 마음이 원하는 것이 기준이다. 이렇게 산다. 그러면 문제는 계속 온다. 문제투성이이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이것이 불신앙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사탄에게 영이 잡혀있는 사람은 아무리 살아도 자기중심으로 살면 사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육체, 마음이 그렇다. 그래서 본질이 하나님의 진노이다. 축복을 받을수 없다. 불신자는 돈은 많은데 행복이 없다. 불신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사탄에게 잡혀서 영이 죽었는데 알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알수 없다. 그래서 구원은 일방적인 것이다. 내가 영이 죽었기에 모른다. 사탄이 잡고 있는데, 마음과 육체는 사탄이 원하는 것을 하면 끌려 다니기에 하나님의 축복은 없다. 가지려고만 한다. 행복이라고 여기는데 행복이 없다. ? 묶임은 있다. 자기 자신을 착각하는 것은 있다. 좋다고 한다. 그런데 착각이다. 불신자를 볼수록 불쌍하다. 부럽지 않다. ? 영이 죽은 사람은 본질을 못 본다. 본질을 못 보는 것은 영적으로는 소경된 것이다. 그러니까 힘들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자랑만 한다. 그런데 공허해진다. 옛날에 그랬다. 실컷 떠들고 보면 헛소리만 한 것 같다. 지금도 영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떠든다. 한 시간이 넘도록 자기 말만 한다. 같이 간 사람이 중간에서 끊었다. 그리고 말하라고 한다. 교수 한명이 청소년 사역하는 교수인데 캠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같이 간 사람이 하나님 만나셨냐고 하니까 말을 머뭇거린다. 청소년 사역을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말을 안 한다. 앉아서 메시지를 하니까 말을 듣더니 목사라고 한다. 귀한 분을 만났다고 악수를 청한다. 자신이 은혜를 받았다. 다른 말은 안했다. 왜 영이 죽었는가? 하나님 형상이 없어서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실수 없다. 하나님 형상을 회복해야 하는데 하나님 형상이 없으니 사탄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실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면 알수 없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2. 구원받았다면 나를 잡고 있던 사탄이 있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순간 성령이 들어오셨다. 그러면 사탄이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간다.

아일이가 표정은 그대로 있는데 말만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분명히 사탄은 나갔다. 그런데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서 나가야 한다. 우리 영혼을 붙잡고 있던 사탄은 성령이 오시면서 나갔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과 생각은 사탄은 아닌데 사탄이 심어놓은 12가지 기준 속에 있다. 마음과 생각이 사탄은 아닌데 사탄이 심어놓은 어둠이 있다. 사탄의 놀이터가 너무 많다. 사탄은 나갔는데 남겨두고 갔다. 12가지 기준을 똥으로 싸놓고 간 것이다. 파리가 밥에다 똥을 싸놓고 가는 것이다. 파리가 손을 비비는 것이 똥을 남기는 것이다. 사탄이 싸놓고 간 것이다. 사탄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과 생각이 사는 것의 기준이 된 사람이 나이다. 내 마음의 기준이 나이면 사탄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그래서 사탄은 분명히 나에게서 나갔다. 우리에게 싸 놓은 것이 있다. 그러니까 마음과 생각을 건드려야 한다. 건드리려면 환경과 사람을 통해서 건드리는 것이다. 환경과 인간관계를 통해서 마음에 있는 것을 건드린다. 그래서 피하면 싶다. 사근사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에게 사근사근하면 못 견딘다. 자기 중심이 있어서 그렇다. 집에서는 아닌데 밖에서는 사근사근하면 위선이라고 한다. 사탄이 심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보면 사람을 통해서 내 마음에 사탄이 그러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았다. 하나님이 사탄을 이요해서 욥을 축복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생명만 건드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환경과 사람의 일을 가지고 사탄이 심어놓은 기준을 가지고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확신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외부에서 건드리신다. 누가 하시는가? 하나님이시다. 불신자는 마귀가 하는 것이지만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이 어마한 응답을 주시는 것이다.

다윗이 사울과 싸웠나? 싸우면 다윗이 이기는가 사울이 이기는가? 다윗이 이기고 남는다. 그런데 장인과 안 싸운 것은 장인에게 악신이 임한 것이다. 이 악신을 이기는 비밀이 다윗에게 있다.

골리앗이 있다. 사울을 통해서 보이셨다. 골리앗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했다. 하나님을 못 믿게 만들었다. 사탄에게 잡힌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화가 났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 하나님은 바깥의 환경, 인간관계를 통해서 내 안에 복음 안 된 부분을 복음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면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해도 내게는 흔들림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가 보인다. 나는 복음을 내 마음과 생각속에다가 그냥 적용한 것 뿐이다. 적용할 때 마음과 생각을 고치려고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사탄이 무너지도록 하나님께 마음과 생각을 드리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도록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흑암이 무너진다. 그러면 깨달아진다. 하나이다. 이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거기에 걸려서 내 마음과 생각의 관심이 다른데 있었다. 그러다 보이니까 그것이 나를 채울수 없음이 보였다. 그런 생각이 안 들어오면 잡힌다. 돈이 나를 채울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사람이 나를 채울수 없다. 그래서 별 짓을 다 하고 다녔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드렸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내 외로움은 엄마를 잃어서라고 생각했다. 내 외로움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었다가 복음으로 찾았다. 그런데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많다. 그것이 나를 채울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만 나를 채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형상을 어디서도 찾을수 없다. 형상이 없으면 돈도 나를 채울수 없다. 형상을 찾으면 돈도 하나님의 형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나를 채운다는 생각이 없었다. 전도이다. TV도 나를 채울수 없다. 영화도 나를 채울수 없다. 추리극도 나를 채울수 없다. 이것이 되었다. 이 땅의 어떤 것도 나를 채울수 없다. 답이 아니고,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탄이 심어놓은 기준에 묶일수록 다인줄 알고 쫓았다. 중독이 되는 것이다. 나를 채울수 없다. 치유,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밥을 먹는데 밥을 먹어야 행복이라는 생각이 안 생긴다. 그래야 사람을 만나도 정상이 된다. 그 사람 속에서 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수준 낮은 것이다. 그 사람의 어떤 것도 나를 채울수 없다. 채우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리스도만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발견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내 생각, 관심이 성령이 역사하는 것으로 가기에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관심으로 가게 된다.

사람도 나를 채울수 없다. 성도도 나를 채울수 없다. 중직자도 나를 채울수 없다. 여러분은 나를 채울수 있다. 알아서 들어라. 어떤 것도 나를 채울수 없다. 창조원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나님 형상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정복, 다스리는 것이다. 돈도 다스리는 것이다.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돈도 정복하는 것이다. 다스리게 된다. 그런데 안되면 안 주신다. 생명이 아닌 것에 생각과 마음이 가기에 헌금도 못한다. 영적사실을 누리는 복음이 되면 채울수 없음이 보인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가 보인다. 1:8절이다. 성령이 주신 생각이다. 하나님은 이것 때문에 일하신다. 수많은 과정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이것을 깨달은 날부터 행 1:14절이 된다. 생각과 마음이 기도이다. 이 생각과 마음이 기도가 되어야 말이 나온다. 생각과 마음이 늘 사탄이 주는 생각과 마음이 묶인 것에서는 기도가 안된다. 내 마음에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 되어야 한다. 이래서 예루살렘부터 유다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때부터 문제가 온다. 문제가 싸인이다. 절대계획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되어진다.

내 마음의 주인이 그리스도이다. 중요하다. 그리고 내 마음과 생각이 있다. 그래서 문제가 와도 보인다. 하나님이 행 1:8절을 이루시기에 내가 가야 할 시간표를 보는 생각이 된다.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래서 돈을 주신다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문제가 온다. 헌금을 드려야 하는 것이 된다. 믿어지면 기다리면 된다. 잡혀있는 사람은 못 기다린다. 종교는 찾으려고 한다. 큰일 난다. 찾아야 한다. 안 찾으면 꼬인다. 찾을 때까지 계속된다.

3. 그러고 나니까 이 속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함께가 보인다. 어떤 사람과도 함께 할수 있다. 함께 못할 사람이 없다. 정 마음에 안들면 기다리면 된다. 그리스도께서 고치실 것이지 내가 아니다. 교회, 가정에서 문제가 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나를 준비하심이 보인다.

에스더는 결혼할 때 유다인임을 밝히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때가 왔다. 전 민족을 사탄이 하만을 통해서 죽이려고 한다.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가서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죽으면 죽겠다고 했다. 이것을 알면 사람들이 보인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끝난 것인데 왜 맨날 죄인이라고 하냐고 한다. 그래서 나갔는데 싸놓고 간 것이 있다. 남편, 부인을 통해 속의 것을 건드린다. 하나님의 싸인이 복음되라는 부분이라고 했다. 교수라고 했던 사람이 목사라고 말하면서 귀한 분을 만났다고 한다. 복음은 정확히 모르지만 복음의 과정 속에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모르지만 목사님 같은 분이 있어야 지금 성도들이 방황하고 있는데서 살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역을 하기 위해 땅 1000평을 받아놓고 기다린다고 했다. 달라고 해보라고 하는데 관심없다.

다 끝났다고 하는데 늘 자신 때문에 힘들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못박으셨다. 항상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영적상태, 십자가로 눈에 안보이는 죄와 저주를 끊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부활로 생명 살리는 자로 부르셨음을 모르면 하나님과 통할수 없다.

문제는 그리스도와 나를 떨어뜨려서 생각한다. 나는 안된다고 한다. 바울이 우겨쌈을 당하여 싸이지 않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은 예수의 부활 생명이 나에게 임하기 위해서이다. 저주가 아니다. 3장의 원죄, 자범죄, 나를 끝내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여러분은 사탄이 뿌려놓은 마음과 기준이 있어도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답을 주게 된다. 이것을 알고나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겉으로 보면 모르는데 눌리다가 튀어나온다. 튀어나오는 것이 축복이다. 성령의 역사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령의 역사를 안 믿으면 계속 내 생각과 기준에 묶인다. , 낙심, 좌절, 힘 얻기를 반복한다. 한계가 온다. 복음도 여기서 깨닫는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붙잡는데 갈 3:22절로 잡아야 한다.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성경은 다른 말을 안한다는 것이다. 3장으로 인해 죄 아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원죄를 가지고 있기에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다음 것이 안되기에 반복된다.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것이 있다. 약속이다. 이것을 붙잡아야 한다. 사탄이 아무리 건드려도 상관없다.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 약속을 잡으라는 것이다. 나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고치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을 잡으라. 하나님이 약속을 성령으로, 영적사실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야 내 마음과 생각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야 내 인생이 하나님의 관심속에 들어간다. 이렇게 되어야 사람을 만나도 답을 준다.

제일 힘든 것이 생각과 마음이다. 당연하게 사는데 사탄이 주는 생각과 마음이다. 죄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약속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약속이 우리를 살린다. 약속이 없으면 누림이 없다.

세가지 속에 나는 어디에 있느냐이다.

구원받은 자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음이 귀하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마음과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약속을 잡는 것이다. 마음을 밝게 하는 것도 내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안되어도 상관없다.

혹시 상처받고 힘든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약속을 잡고 영적사실을 누리면 결과가 온다. 증인으로 세우신다. 성령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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