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금] 하나님 앞에서

복음에 빚진자 | 2017.11.03 21:00 | 조회 1726

20171103[] 하나님 앞에서 (사도행전 4: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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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신자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가? 그것을 체험한 사람이 베드로이다.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라고 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려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붙잡아야 한다. 내 소원이 아니다. 복음외에는 없다. 복음으로 하나님을 누리고 확신하는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살수 업다.

베드로는 행 3:6 하나님 앞에 살았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라고 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가? 성령이다. 성령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삼위일체이기 때문이다. 성령, 성자, 성부 따로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약속하셨고 그리스도가 성령을 약속하셨다. 이 성령을 예수 이름으로 주신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귀신은 하나님을 흉내내는데 창조주 하나님은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확인해야 한다.

베드로가 행 3:16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고 했다. 이 믿음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 이름에 사탄이 무너진다. 천사가 움직인다. ?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원이 그리스도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확히 잡아야 한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그를 낫게 했다고 했다.

4:9절에는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그냥 예수가 아니라, 성육신, 십자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이 믿음이 창조주 하나님을 본 믿음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 이름을 깨닫게 하시려고 문제도 허용하신다. 이 이름을 알면서 문제도 감사하게 되었다. 문제와 상관없어졌다.

17절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이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니까 확신이 생겼다.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사탄이 무너져야 하나님 앞에 간다. 예수 이름이 없으면 하나님을 알수 없다. 문제 때문에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주셨는데 이름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문제에 잡히낟.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행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행복하면 문제도 이겨진다. 매일 행복없는 것만 말한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이름이 행복이 안되는 불신앙을 한다. 복음을 가지고도 하나님에 대한 행복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자기 성질에, 남의 말에, 사탄이 주는 생각에도 무너진다. 하나님에 대한 진짜 행복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행복이 없는 사람이 문제를 이길수 없다.

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창조원리 회복이다. 창조원리는 물고기는 물에다 생명을 두고 살아야 행복하다. 나무는 반드시 땅에 생명을 두고 살아야 행복하고 새는 공중에 생명을 두고 살아야 행복하다. 그런데 인간만은 하나님 형상으로 지으셨다. 인간만은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영적존재이다. 밥도 먹고 육신의 것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참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있고, 인도받고 응답받아야 한다. 창조원리이다. 하나님으로 행복할수 있어야 한다. 산더미 같은 문제라고 해도 창조주 하나님으로 행복할수 있어야 한다. 행복이 없는 것이다. 얼굴들을 보면 행복이 없다. 하는 말을 보면 행복없는 소리만 한다.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힘이 없다고 한다. 자기가 힘이 없는 것에 잡힌다. 산더미 같은 문제가 있어도 영적존재, 하나님이 함께 하는 존재, 응답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존재를 창 2:4 아담에게 이름을 지을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인간과 함께 하는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직접 알리셨다.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 안다는 것이다. 이름으로 하나님을 만난 기쁨이, 본 확신이, 아는 만족이 있어야 한다. ? 창조원리가 그렇다. 그 믿음이 문제도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름이 있어야 한다.

이 여호와가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1:19-23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하셨다고 했다.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 선지자, 제사장, 왕의 일을 하신 것이다. 23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 사탄이 무너져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이 이름은 하나님이 부리는 천사를 통해서 직접 계시하셨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알고, 성령이 계심을 아는 것이다. 삼위 일체가 믿어지는 것이다. 진짜 행복해야 한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 거짓말을 하는 순간부터 행복이 없다. 포장된다.

다민족 선교를 하는 목사를 만났다. 충주에 갔었다. 만나서 한 말이 하나님을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전도가 되어지는 것으로 말한다. 이것이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그것은 결과를 보고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머지 90%는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른다. 진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정확히 알야 하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름으로 아는 것이다. 이름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안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이름으로 약속하셨다. 이것을 잡는 것이다.

어느날부터 이 이름에 행복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모른다. 기도이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붙잡는 것이다. 막연하게 붙잡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행복없다는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거짓말 하지 말라. 이것이 몇 년 누려져야 예수 이름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안되면 자식, 부인, 남편, 돈 걱정한다. 이 말만 한다. 감사가 없어진다. 감사도 거짓말이다.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축복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으로 감사한다고 해도 안된다. 거짓말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은 솔직해야 한다. 하나님이 감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늘 걱정, 근심, 불안, 초조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합리화시키면 안된다. 이유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드러내게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안되면 기도가 안된다. 문제해결만 기도한다. 기도를 할 때마다 나에게 하는 기도는 하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성경을 보는 것이다.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음성으로 찾으려고 햇다. 그래야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성경을 보았다. 그 덕분에 정확한 주소는 몰라도 대충은 안다. 묘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이길수 없었다. 그런데 이 기도를 버리게 되었따. ?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나님을 찾으려고 기도했다가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근거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었나? 사탄이 무너지지 않는데 하나님을 찾아갈수 없다. 하나님을 믿을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사탄이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사탄이 무너지지 않고서야 하나님을 찾아갈수 없다. 우리는 사탄을 무너뜨릴수 없다. 불신앙이 당연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로 찾아오셨다. 그날부터 나와 함께 하시는 증거를 잡게 되었다.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에수가 그리스도라는 충격받고 약속이 믿어지니까 어떤 문제도 상관없어지고 하나님으로 채워졌따. 행복, 확신이 되었다. 문제 해결받아서 뭐하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로 들어가면 된다. 하나님을 만난 만족, 기끔, 함께 하는 축복속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을 이기게 된다. 문제가 와서 반응이 오면 이 속으로 들어간다. 문제가 있어도 상관없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본 증거를 잡는다.

그러니까 요일 1:1-4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바라고 했다. 요일 5:20 그는 참 하나님, 참 영생이라고 했다.

21절 이것을 안 믿으면 우상이다. 우상으로 살았다. 약속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사탄을 꺾으셔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본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을 했더니 놀란다. 아무리 문제가 해결되어도 기도를 또 하고 또 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믿어져야 한다. 그냥이 아닌 사탄이 무너지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은 사탄이 흉내도 내지 못한다. 이때부터 종교기도에서 빠져나왔다. 이것이 24시이다. 하나님을 무엇으로 확신하는가? 사탄이 무너지는 근거로, 성령으로 잉태된 성육신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다. 마귀를 멸망시키신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을 잡는 것이다. 이고백이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근거를 놓치고는 함께 해달라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틀리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확신해야 한다. 문제가 오면 하나님을 안 믿었는데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믿어진다. 마귀를 멸하신 이유는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이다. 목적이다. 누려야 한다. 그런데 누릴 때 불신앙이 없고, 감사가 없다. 당연히 사탄이 문제 가지고 속이면 감사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들로 찾아오셨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저절로 생긴다. 근거를 잡아야 확신이 생긴다. 문제를 해결해도 문제는 계속된다. 문제가 없는 곳은 천국밖에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천국이다.

류목사님이 어제 기도수첩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하면서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문제가 하나님을, 성령을 이기냐고 했다. 그럴듯한데 목사가 이상하다. 목사가 그리스도를 이기나? 임마누엘이 믿어지면 흑암이 무너진다. 감사가 없다. 힘이 없다. 복음 가지고도 문제에 잡히고 힘이없다면 약속을 찾아야 한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누려지면 감사가 온다. 하나님이 안 누려지면 근심, 걱정하게 된다. 문제가 산더미 같아도 하나님을 이길수 없다. 나에게 확신이 있어야 한다. 조금만 깨달아도 말이 달라진다. 아무리 백날 해도 안된다. 전도현장을 안 가는 것도 자신 체질이다. 노예로 갔는데도, 감옥에 갔는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산더미 같아도 행복해야 한다. 창조주를 이길수 없다.

약속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수 없다. 예수를 믿는데도 감사, 행복이 없다는 것은 싸인이다. 함께 할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근거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조금만 안좋은 말을 하면 상처를 받는다. 나의 약함이다. 그런데 나에게 좋은 말만 할 사람이 없다. 마음이 여린 것이다. 센사람이 아니다. 약한 사람이다. 말이 거칠 뿐이다. 자기가 약한 것을 포장하는 것일 뿐이다. 아일이는 못 알아듣는 말이 미운 것이라고 하니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쁘다고 하라고 한다. 각인이다. 자기 싫어하는 것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예수 믿고 나니까 말을 함부로 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졌다. 눈만 떠도 그랬다. 죄책감이 안 없어지니까 따라오는 것이 불신앙이었다. 안 믿어진다.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은 같은 문제이다. 죄가 해결이 안되면 하나님도 안 믿어진다. 양심이 소리친다. 그래서 하는 것이 회개밖에 없다. 어느날 회개를 해도 속이 안풀리기에 스스로 회개했노라.. 라고 했다. 속는 것이다. 그러다가 복음을 알고 빠져나오면서 안 것이 복음이 굉장한 능력이라고 알았다. 말을 잘못한줄 알고 말을 조심하려고 했다. 그라다가 롬 8:33-34 우리를 송사하는 존재가 있다. 정죄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누가 송사, 정죄하겠는가? 사탄이 잘못한 것을 가지고 정죄하니까 안 끝난 것이다. 사탄의 존재를 알면서 끝났다. 놋뱀이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리라고 했다. 우리를 정죄하는 사탄, 심판하는 사탄이 끝났다는 것이다. 6:23 내 죄는 삯을 치러야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죽으신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신의 의를 나타내신 것이다. 그 의를 믿는 순간, 우리도, 하나님 자신도 의롭게 하신 것이다. 십자가는 사탄을 무너뜨리시고 값을 치르신 것이다. 그 다음부터 죄의식이 없어졌다. 양심이 괴로워지는데 끝났다. 정죄할 자가 없다. 이때부터 사탄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와 안 싸운다. 이미 정죄당했다. 하나님이 이미 끝내셨다. 대상이 바뀌었다.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는 사탄을 정죄하는 것이다. 마귀가 제일 듣기 싫어한다. 답이 안나온 사람은 함부로 산다. 다 끝났다고 하면서 막 산다. 정죄하는 존재가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믿음을 잃게 한다. 정죄가 끝났다. 이미 심판을 받았음을 알면 믿음이 살아난다. 그것이 사실이다. 다 끝났다고 사는 것은 믿음이 없다. 사탄이 정죄당했다는 것을 믿고, 이미 심판하셨음을 믿는 사람은 오게 되는 것이다. 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이다. 행복감이 있다. 내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갚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감사가 나온다. 문제가 하나님을 이길수 없다. 죄를 이미 값을 치르셨다. 행복한 것이다. 복음기도는 완전 행복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감사가, 행복이 없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복음기도를 하면 행복해진다.

사탄이 우리를 행복없도록 만들고 있다.

늘 힘들던 것이 내 연약함이다. 여기에 잡히면 한계가 온다. 한계가 기분이 좋았다가도 할수 있다가도 무너진다. 연약함에 잡힌 것이다. 그래서 능력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능력이 안 왔다. 어느날 부활을 깨달았다. 능력이 필요없다. 나에게 능력을 안 주신 것은 능력이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내 연약함에 사탄이 속였기에 능력을 달라고 하는데 진짜 능력인 그리스도안에서 참 능력은 근본문제 해결이다. 내가 능력이 필요한 것은 사탄을 무너뜨리는 것, 죄를 이기는 것,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달란다고 주는 것이 아니다. 사탄이 부활하셔서 이미 꺾였다. 내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셨다. 그래서 사탄이 내게서 나갔다. 능력받은 것이다.

그렇게 능력달라던 기도가 끝났다. 사탄이 펄펄 뛰는데, 영적문제가 드러나는데 나는 끝났다. 가문의 문제가 드러나는데도 상관없다. 이미 끝났다. 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연약함에, 무능함에 잡힌다. 내게 능력필요한 것을 모른다. 사탄을 무너뜨린 것은 내가 아니다. 부활하셔서 내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신다. 능력이다.

세가지를 누리는 기도가 되어졌다. 응답이 오는 것임을 확인할수 있다. 세가지를 잡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내가 문제가 있는데도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면 문제도 이긴다. 그대로 있는 문제인대도 예수 그리스도로 십자가에서 저주가 되지 않게 하심을 믿는다. 에수 이름으로 영적문제가 많아도 사탄은 나에게 역사하지 못함을 부활로 믿는 것이다. 이 기도가 안되는 것이다. 계속 문제에 잡히는 기도만 한다. 문제가 있어도 한다. 예수 이름에 언약잡은 기도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한다. 언약잡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문제 속에서 예수 이름을 언약으로 확신하는 기도가 된다. 신분과 권세가 누려지는 것이다. 나에게 하나님은 성령, 내주, 인도, 충만의 역사를 주신 것이다. 신분과 권세는 그 다음 것이 온다. 하나님이 나에게 세계를 주셨다는 것이 믿어진다. 믿어지는 순간 강단과 본부의 모든 메시지가 세계복음화의 나의 시간표가 예수 이름의 언약기도가 회복되면 세계복음화 속에서 해야 할 것이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약속하신 것이 신분과 권세이다. 그래야 세계복음화의 말씀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기 수준에 잡혀산다. 예수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쉬운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그런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쉽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은 영적존재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육신 수준으로 산다. 그러니까 영적비밀을 누리는 것은 예수 이름밖에 없다. 모든 것을 가지고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옛날에는 영적사실을 어떻게 믿는가를 생각했는데 예수 이름이 영적존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나에게 예수 이름으로 언약기도가 회복되게 언약확신속에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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