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금] 희망적 고난

복음에 빚진자 | 2017.12.01 20:49 | 조회 1601

20171201[] 희망적 고난 (요한복음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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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수첩에 희망적 고난을 잡았다. 이 말씀을 붙잡고 만남의 축복을 누렸다. 왜 희망적 고난이라고 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는 모든 문제는 우리라는 말이 중요하다. 구원받은 자에게 오는 모든 문제는 사탄에게 잡혀서 오는 문제가 아니다. ?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끝내셨다. 그러면 우리에게 오는 문제는 미래를 위한 즉, 미래를 가는 희망적 고난이다. 믿어야 한다. 이 말씀을 잡았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래로 이끌기 위해서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래로 가게 하기 위해서 문제와 사건을 허용하기도 하신다. 왜 그런가? 오늘 14:13이 답이다. 왜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시는가?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이다. 무엇으로? 아들로 말미암아이다. 이것을 가지고 목사님과 만남을 가졌다.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신다. 13절에 아들로 말미암아는 내 이름을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예수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구할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를 주신다. 무엇을 구하든지 예수 이름에 하나님이 시인한다.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삶은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무슨 일이 일어났든지 예수 이름 불러야 한다. 예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시행한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영광이라는 말은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말이다. 이 말을 보면서 맞다. 우리에게 있는 고난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것이다. ?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이다. 서서히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하나님은 내 기준, 수준으로, 상태도 일으키신다는 것이다.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복음아닌 기준, 수준, 상태도 하나님이 아시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유는 기준이 안 맞을 때, 수준이 안 채워질 때, 상태가 바르지 못할 때 문제라고 한다. 이 때가 힘들고 염려되고 걱정이 된다. 이것이 보였다. 내 기준에 맞추려니까 수준을 채우려니까, 상태를 좋게 하려니까 염려, 걱정이 온다. 어느날 이미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왜 끝났는가? 문제가 드러났을 때 하나를 잡았다. 완전한 것을 잡았다. 예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은 죄가 끝난 이름, 저주가 끝난 이름, 사탄이 끝난 이름, 성령이 역사하는 이름이다. 완전한 이름이다. 예수 이름으로 내가 받을 저주, 죄는 끝나고 사탄은 무너지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신다. 나에게 하나님은 어마어마한 약속을 주셨다. 완전한 것을 주셨다. 이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였다. 내 기준에 안 맞아서 힘들고, 수준에 안 채워져서 힘들고, 상태가 안 바뀌어서 힘들어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주셨다. 수준, 기준, 상태를 바꾸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을 주셨다. 완전한 예수 이름을 잡은 그 때부터 신뢰가 되었다. 예수 이름은 신뢰이다. 예수 이름이 없다면 죄, 저주, 실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 기준이 안맞아서 힘들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이 예수 이름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예수 이름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문제를 허용하시는 것이다. 내 기준을 일으키고, 수준을 일으키신다. ? 내 수준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완전한 것을 주셨다. 예수 이름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성질이 괴팍하다. 그런데 성질이 괴팍한 사람을 뭐라 하면 안된다. 그런데 탓한다. 이것이 보이면 내 상태와 상관없이 행복하다. 상태와 상관없이 성령이 임하시고 천사가 수종들고 흑암이 무너진다. 하나님은 예수 이름을 부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뢰되어야 한다. 문제가 없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있어도 괜찮다. 괜찮아야 한다. 약속을 생각하면 괜찮다. 약속이 예수 이름이다. 이것이 없었으면 기준이 드러나면 힘들 수밖에, 답답할 수밖에, 망할 것 같다. 예수 이름을 생각하면 끝났다. 내 수준때문이 아니라, 약속 때문에 끝났다. 아담과 하와가 속아서 모르는데 창 3:15로 약속하셨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로 약속하시고 이루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성령으로 다시 오시겠다고 한다. 약속이다. 우리는 약속하신 것은 잡는데 지금 약속하신 것은 안 잡는다. 내 수준과 상관없이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미워도 하나님은 완전하신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신다는 것이 믿어진다. 문제가 상관없다고 하면 사탄에게 당한다. 복음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문제를 허용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다 끝내신 것이다. 이 끝난 것을 나에게 적용, 성령이 역사하도록 적용시키라는 것이다. 오늘 만난 목사에게 말하니까 자신은 현실을 보고서 낙심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하고 다민족 선교하자고 했다. 영어도 잘하고 베트남 말도 잘한다. 열정도, 사명도 있다. 그런데 되어지는 것만 잡는다. 우리는 기준, 수준, 상태가 있다. 이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로 끝내셨는데 안 없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문제와 사건을 오히려 일으키신다.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이다. 당신이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깨달아지면 두 번째의 것이 보인다.

2. 내 기준과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루신다는 것이다. 내 기준이 있어도 괜찮다. 그런데 매어있을 때만 힘들다. 매어있으면 죽을 것 같고, 화가 난다. 내가 그랬던 사람이다. 그래서 화가 나는 사람이 있어도 약속이 있는지 없는지만 본다. 이것이 조금 되니까 완전한 이름에 저주가 끝났다. 상태가 아니라, 예수 이름이다. 수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주가 예수 이름으로 끝났다. 이 이름이 완전한 이름이다. 예수 이름을 당할 문제가 없다. 이 상태와 기준과 수준이 다르게 보였다. 하나님이 일으키셨다. 네가 예수 이름을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으로 붙잡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시는지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조금 지나갔는데 보였다. 나를 자랑할 것이 없다. 부끄러운 것밖에 없다. 내 의도 대단치 않다. 하나님은 우리 상태와 상관없이 약속대로 이루심을 신뢰해야 한다. 신뢰하는 만큼 하나님은 일하신다. 이것이 기도이다. 예수 이름을 신뢰하는 만큼 하나님은 일하신다. 어떻게 일하시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 기준과 수준, 상태를 상관없이 보게 된다. 다 있다. 그런데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내 기준과 수준이 드러나면 오히려 더 아버지께로 간다. 내 기준, 수준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결되었다는 것은 채워졌다는 것이다.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하셔야 한다. 내가 하는 순간 사탄에게 잡힌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 세 번째가 중요하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이 1, 2번이다.

3. 외부에서 오는 문제이다. 외부에서 오는 문제는 반드시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왜 하시나? 왜 하나님은 나도 아닌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문제를 일으키시는가? 문제를 일으키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망하게 하려고 하시는가? 하나님은 복음으로 약속하신 것을 이루는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복음이 증거되는 쪽으로 인도하신다. 복음이 증거되는 쪽으로 가게 하신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한다. 힘들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하여 못 가게 한다. 진짜는 힘들어도 하나님은 예수 이름 증거되는 쪽으로 가게하는 것이 성령이다. 문제는 성령으로 인도하시는 방향이다. 그 문제 때문에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문제 때문에 교회의 방향이 잡힌다. 내 인생의 방향이 잡힌다. 그래서 진짜 전도자는 힘들어도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복음이 증거되는 쪽으로 인생이 인도받는 것이다. 이것이 안될때는 문제가 안끝나니까 예수 이름을 가지고 내 마음을 다스리고 참으려고 하고, 애써서 생각해내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문제를 일으키시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를 성령인도받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는 안된다. 못 받는다. 우리는 생각해봐야 기준이다. 성령이 인도하는 방향이 있다. 하나님은 문제를 일으키시는 것이다. 끝난 문제인데 그렇다.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고 아들이 증거되는 쪽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나서 복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문제는 이미 끝났는데 왜 허용하시는가? 그러니까 내게 있는 문제가 안 끝난 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는 다 끝났다. 그 끝난 것을 잡으라는 것이다. 끝난 것을 가지고 증거하라는 것이다. 스스로 안 가기에 문제를 허용하신다. 그래서 아프게도 한다. 아파서 쓰러지면 성령인도라고 보면 된다. 병문안도 올 필요없다. 이런데서 벗어났다. 복음을 가지고 내 마음을 다스렸다. 기도로 내 생각을 주장했었다. 지금은 생각이 일어나든 말든 약속을 잡는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심을 확인하게 된다. 내 기준과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래서 내 자랑이 없다. 여전히 그렇고 갈수록 더 안 좋아질 것이다. 더 사나워질 것이다. 갈수록 사자가 되고 남자는 쥐가 된다. 기준이 갈수록 강해진다. 문제는 하나님이 일으키시고 계시다는 것을 모른다. 하나님이 왜 허용하시는가? 영광을 받기 위해서이다. 아들로 인해서이다. 예수 이름을 잡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을 잡는 것이다.

어디가서 사랑자랑하지 말라. 벌교에서 힘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벌교라는 길목에서는 힘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 지식 자랑하지 말라. 다 기준, 수준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갈수록 채워지는 것을 응답이라고 착각한다. 예수 이름을 모르면 자기 수준 채워지는 것을 응답이라고 한다. 그냥 우리는 약속을 신뢰하면 된다. 약속이 나를 살린다. 하나님이 그 약속속으로 들어가도록 기준, 수준, 상태를 드러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된다.

기독교가 난리이다. 불교는 2가지만 종교세에 해당되는데 34가지 항목에 세금을 물린다고 한다. 법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열려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싸우는가?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아야 한다.

이영훈이라는 교수가 핏대를 올리면서 종교세에 관해 말한다. 그는 그것 해야 한다. 우리는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면 된다. 문제는 사탄이 아닌, 하나님이 아들로 말미암아 아들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허용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온 고난이 희망적 고난인 것을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허용하신 문제임을 알고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받으시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문제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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