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예배

[금] 새 것으로 사는 삶

복음에 빚진자 | 2017.12.08 20:55 | 조회 1716

20171201[] 새 것으로 사는 삶 (고린도후서 5: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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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숭 목사

 

서론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라고 했다. 기도수첩 메시지가 고후 5:17절이다. 여기서 이 단어를 잡았다. 이전 것은 요 8:44절 속의 나이다. , 과거에 마귀자녀로 살았던 나이다. 그것이 엡 2:3-4이다. 공중권세에 잡혀서 원죄와 자범죄로 살았다. 원죄는 아담의 죄, 자범죄는 아담의 죄로 인해 드러난 죄이다. 만들어진 죄이다. 원죄와 자범죄로 영적사망속에 있는 것이다. 육신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엡 2:2 공중권세 잡은 자를 쫓았다고 한다. 마음과 생각으로 쫓았다고 한다. 그 마음과 생각이 육신에만 관심있다. 이런 나를 보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했다. 그것은 사탄을 이롭게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탄의 실부름할 수밖에 없는 존재, 사탄의 속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나이다. 구원받기 전의 나이다. 이것을 보고 류목사님은 창 3장 나중심, 6장 물질중심, 11장 성공중심이라고 했다. 육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영적문제속에 있는 사람을 육이라고 한다. 영적인 존재가 영적인 것을 보고 육이라고 한다. 먹는 것이, 입는 것이 육이 아니다. 그러니까 행 13, 16, 19장의 모든 문화가 귀신문화이다. 문화화된 것이다. 살수록 우상이다. 살아나는데 우상이다. 세상은 모든 트랜드, 유행이 우상이다. 이 속에서는 놔두면 흐름이 있다. 3장부터 지금까지 흘러오는 흐름이 있다. 사망의 흐름이다. 계속 흘러온다. 이것이 개인에게 들어온 것을 불신자 6가지라고 한다. 여기에 묶어놓는다. 올무 6가지이다. 육에만 빠지게 한다. 영적인 것을 모르게 한다. 각인을 가지고 한다. 계속 각인시킨다. 영적인 것만 모르도록 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안 가르친다. 귀신은 영적축복을 모르게 하는 것이다. 점치면서 우상섬기면서 모르게 한다. 영적축복을 모르고 육에 관심을 갖게 한다. 기도도, 전도도, 메시지도 육으로 보게 한다. 이것을 각인시킨다. 삶이 각인이다. ? 보는 것, 입는 것, 먹는 것이 각인이다. 기도를 속으로 하지 말고 읽으라고 했다. 내가 나에게 들려줘야 한다. 볼 사이도 없다고 하는데 죽지 않으려면 들어야 한다. 세상속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각인된다. 먹는 것으로도 각인된다. 왜일가? 인간은 의식이, 무의식이 나를 끌고 간다.

사모가 가던 길을 안 가고 다른 길을 간다고 했다. 의식은 생각속에서 나오고 무의식은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사람은 한 생각을 하면 한가지 이상을 생각 못하게 되어 있다. 그 생각을 하는데 무의식은 핸들, 기어를 조종하게 한다. 무의식이 그렇다.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다. 무의식의 세계는 각인으로 온다. 무의식이 각인되는 만큼 체질된다.

여사장이 동대문 시장을 가야 한다고 하는데 명동으로 갔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명동으로 갔다. 몸은 명동으로 가고 생각은 동대문을 가는 것이다. 인간이 무의식이 없으면 두가지를 동시에 할수 없다.

세상적인 것을 가지고 무의식에 뿌리를 박는다. 무의식의 세계에 불신자 6가지 상태가 박혀있다면 구원받기 전의 상태가 그렇게 각인되어 있다. 이것이 어느날 드러났다. 그리스도로 다 끝났는데도 드러난다. 안 끝났다가 아니다. 끝났는데도 드러난다.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불신앙이 일어난다. 드러나면 반드시 일어난다. 그리스도가 다 끝내신 것을 아는데도 나온다. 그러면 나는 왜 이러나? 한다. 다 끝났다니까 감추고 싶어한다. 고민이 된다. 다도 모르는 속에 집어넣어져 있다. 그것이 어느날 일어난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올라온다. 이러다가 망하는 것 아냐? 드러난다. 어느때인가? 구원받기 전에 각인된 것이다. 깊이 뿌리내려져있던 것이 드러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라고 하셨다. 불안함이 일어난다. 42:5에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여 하며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이것은 불신자 속에서는 무의식이라고 하고 감쳐줘 있기에 잠재의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영혼이라고 한다. 영과 혼이라고 한다. 혼의 세계이다. 혼의 세계는 의식만이 아닌, 무의식, 잠재의식이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다 끝내셨다. 모든 문제 해결자가 그리스도라고 아는데도 드러난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무의식에서 바꿀수 없다. 우리가 평상시 살때는 의식세계로 산다. 그런데 안될 때보면 무의식이 드러난다. 혼란해진다. 답이 났는데도 그렇다. 드러나면 어떻게 하는가? 허무함이 밀려온다. 하나님을 만났고 봤다는데 드러난다. 네가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했다. 불안이 끝났다가 아니라,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끝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잠재의식에서 드러난다. 불안이 해치지 못한다. 이전 것은 지나갔기 때문이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하신다는 것이다. 묘한 것이다. 어느 때 끝나는가?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맞구나 보여질 때 이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을 내가 확인해야 한다. 확인이 될 때 끝난다. ?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을 쪼개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없을수도 있지만 나는 부정적인 삶을 살았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불안하다. 다 끝났다는 것을 아는데도, 모든 문제 해결자가 그리스도라고 아는데도 올라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하신대로 이루신다는 것이 맞다고 확인이 되어야 한다. 무엇으로? 고후 5:14이다. 말슴을 따로 잡는 것은 종교이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와 내가 동일시되는 것이 문제가 끝난 것이다.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이 끝난 것이다. 예수님이 몸은 안 죽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내 영적인 것과 육신세계를 다 끝내셨음을 확인해야 한다. 말씀이 창 3:15로 확인되어야 한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죄인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지막 아담으로 나를 끝내셨다. 여기서 갈 2:20이 확인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내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아닌 나를 죽이신 것으로 확인해야 한다. 따로가 아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내 무의식 세계에 별것이 들어있어서 드러나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겨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났다. 살아난 자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나이다. 1:1, 3, 8이 나이다. 다시 살아난 나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이다.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산다. 영의 세계만큼 각인된다. 나를 지배한느 것은 혼이다. 영적 세계가 확인되어야 넘어선다.

고비가 와서 흔들릴 때가 있다. 무의식의 세계이다. 한계도 무의식에서 온다.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신다고 했다. 그 세계까지 뒤집으신다. 속까지 뒤집혀져야 우리 삶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떨 것도 없다. 일어나면 괜히 겁낸다. 인간은 육신적인 일을 하는데 영향은 영적인 일이 미친다. 가만히 아무소리도 안하는데 사람은 의식한다. 혼이 그렇다. 아무 짓도 안해도 온 우주를 다닐수 있다. 혼의 세계이다. 하나님은 말슴으로 일하시는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해야 불안, 좌절, 혼돈이 끝난다. ? 하나님은 말슴으로 하시기에 말슴을 잡으면 혼과 골수, 관절, 영을 쪼개신다. 오늘도 말씀이 있어야 한다. 이 말씀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 나에게 각인이 안되면 현장에 말슴이 없다. 말씀이 없기에 불안한 것을 전달한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확인이 안된다. 불안함이 오면 확신이 안생긴다.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라고 했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이 계신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의식,. 생각,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의 생각이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다. 이 그리스도로 우리가 히 11:17-19을 발견해야 한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하나님이 하실 약속을 받은 자이다.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이미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자손이라 칭할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자식을 드렸을 때 그 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식을 드릴 때이다. 왜 드렸나?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약속의 자손이 이삭이다. 죽여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이다. 네 자손이라 칭할 그리스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죽었다가 살아날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위해서 이삭을 드려도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모든 것이 아들에게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약속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이삭을 죽여도 된다. 하나님이 말씀대로 일하심을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반드시 인생에 말씀이 성취되는 스케쥴속에 있어야 한다. 내 인생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말씀 성취의 스케쥴속에 있어야 한다. 이것을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사는 것이다. 이래서 아들도 바친 것이다.

이삭이 그리스도가 그때 꽃혔다. 아브라함의 삶이 아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말씀을 성취하는 속에 들어왔다. 그래서 자랑할 것도 없다. 한 것이 없어서 자랑할 것도 없다. 한 것이라고는 죽이라고 해서 죽인 것이다. 그때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여러분이 가진 갈등들은 알고 보면 후유증이다. 다 끝난 것이다. 이 후유증을 가지고 마귀가 속인다. 끝났는데 안 끝난 것처럼 속인다.

내가 몸이 원하는 것이 있다.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까 영적문제였다. 그리스도가 다 끝내심을 믿었다. 성령이 계시다면 끝난 것이다. 그러나 몸은 안 끝났다. 몸이 기억한다고 안 끝난 것이 아니다. 후유증이다. 우리가 겪는 것은 후유증이다. 그렇게 여기고 넘어가면 되는데 왜 이러지? 하면 잡힌다. 뇌도,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다 끝났는데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데 뇌가 기억하는 것이 옛날 슬픈 것, 암울한 것이 기억된다. 그래서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무엇으로? 말씀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계속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무의식, 잠재의식에 성령이 역사하신다. 아무리 후유증이 대단해도 십자가로 끝났음을 확인해야 한다. 사탄에게 속는 사람을 보면 복음이 힘이 안난다고 한다. 우리 사정이지 복음은 끝났다. 지금 부활하셔서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이지 힘이 안난다고 아닌 것은 아니다. 제일 바보가 후유증 때문에 속는 것이다.

장기이식을 한 사람이 치유된 날부터 생각의 의식이 달라진다. 이식한 사람의 생각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영적존재의 장기이기에 인간은 영, , 육이 전인적이다. 영화소재로도 나온다. 심장을 바꿨는데 길가던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이식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몸도 사탄이 틈탈수 있다. 그래서 끝나야 한다. 하나님이 끝낸 것을 주셔서 확인하게 하시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안 일어나도 예수 이름을 가지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일어난다. 내 몸으로 느끼는 것은 없을 뿐 예수 이름은 약속이기에 상관없다. 인간은 의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이 일하심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안되면 섞여서 살게 된다. 몸과 말씀이, 걱정과 말씀이, 생각과 말씀이 따로가 된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예수 이름으로 확인이 되니까 대단한 것도 소용없다. 원리대로만 가면 된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형상회복되었기에 그리스도안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 그 사람에게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을 주셨다. 내 의식, 무의식에서가 아니라, 말씀속에서 찾는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서, 세상에서, 지식으로가 아닌 성령으로 답을 찾는 것이다. 창조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변하지 않는 것 속에 있으면 끝난다. 하나님이 이루신다. 약속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약적관계로 창조되었다. 찾아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말씀이 확인되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확인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확인하고 모든 문제가 축복으로, 예수 이름으로 미래가 보장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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