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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성경 보는 눈

복음에 빚진자 | 2017.03.24 21:05 | 조회 1814

2017324[] 성경 보는 눈 (골로새서 1:15-18)

 

이재숭 목사

 

서론

성경은 많이 읽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이 열려야 한다. 그래서 기준이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이 창세기이다. 창세기를 통해서 4사건, 4인물이 보여야 한다.

1) 창조사건, 2) 타락사건 3) 홍수사건 4) 바벨탑사건이 4사건이다. 사건마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볼줄 알아야 한다. 창세기를 놓치면 성경의 근거가 없어진다. 사탄은 창세기를 신화라고 한다. 모세가 쓴 것인데 모세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기록한 것이다. 모든 신양성경이 모세가 쓴 글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학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신약성경이 쓰여지게 된 근거가 구약의 모세오경속에 있다. 그래서 중요하다.

4인물을 보아야 한다. 아브라함 2) 이삭, 3) 야곱 4) 요셉이다. 이 중요한 인물을 통해서 볼 것이 언약이다.

 

창조사건이다. 이것을 두가지로 보아야 한다.

1) 하나님의 창조사건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이 성경보는 눈이다.

창조의 핵심이 창 1:27,28이다. 사람의 창조이다. 사람을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그 말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이 같은 피조물인데 인간의 위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을 주신 것이다. 그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 사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 형상이다. 이들에게 정복, 다스림, 생육, 번성을 말하셨다. 하나님 형상을 누리면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인간을 지으신 기준이다. 인간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느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소요리문답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선지자로서의 아담을 말하고 있다. 아담이 선지자로서이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선지자이다. 제사장으로서의 아담, 왕으로서의 아담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가 통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의지는 불안했다. 선택하는 의지는 죄를 선택할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를 짓고 나서는 완전한 응답을 성령인도로 주셨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참선지자이다. 하나님 형상이다. 하나님앞에 진실된 기도와 예배를 할 수 있는 제사장으로서의 아담이었다. 당시의 예배는 죄값을 치르지 않는 예배이다. 지금은 죄값을 치르는 예배가 필요하기에 예수의 피가 필요하다. 13:5 죄를 지은 상태가 아니기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죄를 사하는 십자가를 붙잡을 필요가 없던 시대이다. 이 당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그런데 의지는 불안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음을 주신 것이다.

왕으로서의 아담이었다. 에덴에 살고 있었던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관리자로서의 왕이었다. 인간이 지금같은 존재가 아닌 대단한 존재였다. 아담이 이름을 지으면 이름이 되었다. 하와의 이름도 지었다. 선지자로서의 기능이다.

하나님이 창조물을 다스릴수 있는 기능을 주셨다. 이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자에게 주신 것이 창2장 에덴의 축복이다. 하나님 형상을 누리는 것이다. 인간이다.

그런데 타락한 후, 3:1-6 후에는 인간은 더 이상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왕으로서의 역할을 할수 없다. 3장 사건이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거짓 지식이 들어와서 우상, 거짓이 들어와서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3:1-6 사건 이후로는 죄가 아담과 하와를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도록 쫓아냈다. 그래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다. 예배가 안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왕으로서의 역할도 할수 없다. 모든 피조물에게 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물을 먹고도, 밥먹고도 채한다. 뱀을 보고도 놀라한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 그런데 창3장 사건 이후로는 불행해졌다.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역할을 읽은 것이다. 행복은 선짖, 제사장, 왕의 역할을 찾아주면 된다. 이것을 한 것이 창 3:15이다. 회복시키는 일이다. 여자의 후손이다. 성육신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이다. 3장 문제의 끝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영원한 성령으로 와 계신다. 우리 의지가 복음 아닌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시고 완성된 응답인 성령내주를 주시고 인도하시는데 복음을 듣고 말하는 데로 인도하신다.

진짜 행복은 하나이다. 돈이 많아도 나에게는 행복이 없다. 돈이 답이 아니다. 아무리 명예가 끝도 없이 올라갔어도 행복이 없다. 답이 아니다. 성공을 했어도 행복이 벗다. 답이 아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서닞자, 제사장, 왕의 축복이 회복되어야 한다. 회복하신 것이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축복을 그리스도로 주셨다. 그래서 돈은 벌어도 생명은 놓치지 않아야 한다. 불신자도 부럽지 않다. 불신자, 돈이 많은 자는 돈이 없어질 때 부럽지 않다. 돈이 많아도 부럽지 않은 것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답이 아닌 것을 가지고 힘들어하고 눌리고 좌절한 것은 안 보였기 때문이다. 선지자, 제사장, 왕의 축복을 못 누리도록 행복의 기준을 모르게 한 것이다. 마귀는 보이는 것으로 행복의 기준을 삼게했다. 보이는 것 속에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그때부터 그리스도가 누려졌다. 그리스도로 행복해야 한다.

돈있는 사람이 망하는 것을 보고서 기뻐하면 안된다. 같이 망하는 것이다. 돈이 많아도 문제가 오는 것은 돈이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생명처럼 여겨서 남의 불행이 달갑게 보인다. 그리스도가 생명이 안된다. 발견하라는 것이다. 복음 아닌 것을 생명처럼 붙잡고 있기에 상처, 낙심, 좌절이 온다. 생명은 오직 복음에 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똑같이 복음을 가졌는데 더 가졌다거나, 없다거나 할 때 오는 마음이 주눅들고 힘빠지는 속에서 나에게 주신 것을 상대방에게는 안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교할 필요가 없다. 돈이 많다에 좋아하지 말라. 나에게 주실 약속은 상대방에게 주시지 않는다. , 복음을 모르면 있는 것도 빼앗긴다. 복음을 깨닫게 되면 나에게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이 이루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사건은 중심이 사람이다. 사람을 하나님 형상으로 지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나를 찾아야 한다. 그때 행복하다. 있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에 행복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서 행복한 것은 세상 기준이다. 절대행복을 가져야 한다. 절대반지를 가진 것이다.

상대방이 없어야 행복하다는 것은 생명을 모르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억울했다고 한다. 그런데 직장을 생명같이 여겼었다고 한다. 가진 것도 다 빠져나가든, 있든 내가 행복해야 한다.

2. 기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기준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에 대한 기준이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창조사건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 받은 것에 대한 기준과 내가 받을 것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주신 것은 창 1:27이다. 하나님 형상을 주셨다. 앞으로 주실 것은 창 1:28이다. 정복, 생육, 다스림이다. 그런데 이것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형상을 주셨다. 항상 똑같다. 그리스도를 주셨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도응답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 속에 있는 자에게 전도응답을 주실 것이다.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주셨다. 구원받을 자를 통해서 전도응답을 받도록 기도응답속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구원받은 자는 전도응답을 위해서 기도밖에 할 것이 없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신분을 바꾸셨다. 그래서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하신 것이 언약이다. 언약은 성령의 역사를 주셨다. 이 언약을 이루시는 것이 성령내주이다. 나에게 이루신 것이다. 나에게 이루실 것은 세계복음화이다. 내가 받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형상 주신 것과 주실 것으로 전도응답을 주셨다. 그래서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이루실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누리는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구원을 누리는 것이다. 신분을 누리는 것이다. 성취된 언약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보여야 한다. 그래야 현장에서 다른 말을 안한다. 복음변질은 기도변질이다. 자기 중심을 가지고 말한다. 체험이 아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말하라. 하나님 형상을 누리는 것이다. 벧전 2:9 이것을 깨닫는 것이 기도이다.

나에게 그리스도를 주셔서 신분을 누리게 하시고, 구원을 주시고, 성취된 언약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정확한 증거가 성육신, 십자가, 부활이다. 하나님 형상을 성육신, 십자가, 부활로 누리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신분도, 구원도, 성취된 언약도 성육신, 십자가, 부활로 누리는 것이다. 완벽하게 주셨다. 이것을 안 누리니까 행복이 없다. 하나님과 안 맞는 말을 한다. 기도를 못누리기에 쓸데없는 말을 한다. 내가 받은 것을 확신하는 것이 기도이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이 받은 것이다. 이 기도속에서 나오는 것이 받을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루실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놓고 기도하지 않기에 쓸데없고 하나님과 상관없다.

구원받고, 신분도 바뀌고, 언약도 성취된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잡아야 한다. 받은 것을 못누리고 있으면 안 믿어진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리면 생각이 바뀐다. 창조원리 회복의 기도부터 시작하라. 보면 내 생각과 판단이 하나님과 안맞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기도가 믿어지는 사람에게 주신 약속이 전도를 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것 속에서 주신 기도가 만남을 통해서 주신 기도이다. 전도 속에서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 된다.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은 생각하지 말라. 나에게 주신 것을 누린 사람은 할 것이 전도밖에 없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전도를 깨닫고 누리면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신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라는 함께가 발견된다.

받은 것을 누리는 기도속에서 전도라는 답이 나오면 정복하고 다스리게 된다.

아침에 현장을 갔는데 전혀 엉뚱한 사람이 듣더라.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가면서 족집게라고 한다. 콕찝어서 말한다고 한다. 옆에서는 그렇게 심각한지 몰랐다고 한다. 복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잘한 것도 없다. 똑같은 말인데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있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못하고, 안듣고에 실망할 필요없다. 하나님이 정복하고 다스리게 하시는 것을 누리는 것이다. 할 것은 전도밖에 없다.

이분이 깨닫는데 옆에서 듣는 사람이 어떻게 금방 아냐고 한다. 성경을 본 사람은 잘 모르는데 캐나다에서 온 사람,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듣더라. 하나님이 복음을 들을 사람을 보내시는 것이다. 복음을 누리다보니 하나님이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들을 사람을 복음 들을 자리로 보내신다는 확신이 생겼다. 우주를 통치한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주신 것을 받은 것으로 확신할 때 흑암이 무너진다. 확신되는 기도만해도 사탄은 건드리지 못한다. 받은 것을 확신하는 기도속에서 권세가 나온다. 세계복음화 주실 언약이 나온다. 기도속에서 내 인생의 답이 나온다. 다 받았기에 이루실 것이 답이 되어야 한다. 답이 되면 미래가 나온다. 나를 움직이심이 보인다.

받은 것을 깨닫기 위해서 기도한 적이 있다. 다 받았다고 확신되지 않는 이상은 똑같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받을 응답으로 방향이 가니까 받은 응답은 당연한 것이다. 내 인생의 답이 세계복음화이기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데 기도속에서 주신다. 기준을 잡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실 것은 받을 응답이다. 이것을 벗어나면 신비가 되고 우습게 보면 율법이 된다.

흑암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은 사람을 살릴수 없다. 하나님이 이루실 약속이기에 확신이 된다. 이 확신은 담대하게 한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속에서 전도, 세계복음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교원을 놓고 기도해야 한다. 처음 시작을 하려면 자원봉사가 많아져야 한다. 아이들이 많아지면 그때가서 돈을 주소 사람을 쓰는 것이다.

우리인생의 답은 세계복음화이다. 후대를 키우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거신다.

받은 것과 받을 것이다. 성경에서 벗어나면 안된다. 모든 현장을 이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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