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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2부 집나간 탕자

생명 | 2021.05.15 20:09 | 조회 550

지난 주 2부 주일 말씀

집 나간 탕자 (눅15:11-24)

5월 한 달은 가정의 달입니다. 지난 주는 어린이 주일이었습니다. 지난 주의 말씀은 에덴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집 나간 탕자로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짜 은혜는 흑암이 꺾이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어떤 의도로 말씀을 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흑암이 꺾이게 되고 성령이 사실적으로 역사하시게 됩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중요한 답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는 먹을 것이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사는 것도 편안합니다. 과학과 기술도 발달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삶은 한 마디로 하면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즐거운 것 같지만 속으로는 굉장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 없어합니다. 결국에는 쾌락과 음란과 마약과 도박과 알콜 중독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사회 현상입니다. 음란 산업과 마약 산업과 향락 산업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어린이까지도 음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를 범합니다. 비정상이 된 것입니다. 완전히 쾌락에 잡힌 상황입니다. 즉 집 나가서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서 그렇습니다.

이 땅의 문제는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서 온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완전한 행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행복,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완전한 행복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가끔씩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지가 않습니다. 지구상에는 인간에게 완전한 행복, 궁극적 행복, 영원하고 절대적인 행복을 줄 수 있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완전한 행복은 하나님과의 행복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완전한 행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끝납니다. 완전한 행복은 물질과 우리의 컨디션과는 상관없는 행복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에 사람들의 문제가 하나님을 떠나서 불행한 문제라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내가 완전한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복음 안에 있는 행복이 완전한 행복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불행한지가 보입니다.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를 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입니다. 이 영적인 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볼 때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이를 갈고 있음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가 해답을 줄 수 있겠습니까? 이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해답을 줄 수가 있습니다. 완전한 행복으로 우리에게 예배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완전한 행복이 예배의 축복입니다. 이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 해답을 줄 수가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예배의 행위가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종교 행위로서의 예배가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생명적 예배를 말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찬양과 성도의 교제와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예배 시간입니다. 종교 예배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 배후에는 틀림없이 귀신이 역사합니다.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모르고서 교회를 다닐 때는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종교 생활을 할 때는 우리 속에는 참 평안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애 타는 탄식이 무엇인지를 알고서 하나님께 바르게 방향을 맞추고서 기도를 한다면 그 사람은 예배가 성공되어질 것입니다. 바르게 언약을 알 때에 완전한 행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고백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완전한 행복이 보장되게 됩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였습니다. 이 복은 돈이나 환경이나 사람의 컨디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복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행복입니다. 절대적인 행복입니다. 완전한 행복은 외부로부터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심령 깊은 곳에서 저절로 나오는 자연 현상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깊이 가지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행복감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그 행복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 없이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죽도록 고생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왔을 때에 우리는 언약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행복감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고백할 뿐 아니라 실제 문제 속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맞다는 것이 발견 되어질 때 절대 행복 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 원망, 불평, 낙심이 할 일이 없게 됩니다. 인본주의나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지혜괴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습니다. 그 분이 일초도 나와 떠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맞다면 다 끝난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신념과 의지와 노력과 결단이 아닙니다. 예수가 하신 일을 사실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신 영적 사실을 절대 주권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우리의 과거와 원죄와 자범죄와 조상죄를 단번에 영원히 끝내신 것을 완전히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부활하셔서 흑암을 꺾으시고 지금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성령으로 함께하셔서 권능을 주셔서 증인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나에게 영적 사실을 약속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사실을 이유를 달지 않고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확인되시기를 바랍니다. 확인이 되어 질 때 절대 행복감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 행복은 세상이 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도 없습니다. 세상이 알 수도 없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 집 나간 탕자를 통해서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1. 불행의 시작입니다.
인간은 행복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는데 왜 사람들이 불행합니까? 하나님을 떠나서입니다. 본문 12절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께서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 가서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마음을 먹고서 아버지를 떠난 장면이 성경에 나오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아들에게는 불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버지 떠나는 마음을 먹은 것을 불신앙이라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독립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절대 부모를 의지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감기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를 떠나서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는 부모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살아야 할 자녀들의 세상은 너무나도 심각한 음란과 타락의 현장입니다. 초등학생이 수업에 방해를 해도 선생님께서 야단을 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모습이 이러한데 20년 후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지금은 세월이 악해지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혼자 사는 비밀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노예로 끌려간 요셉,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처럼 된다 할지라도 혼자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음란과 마약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혼자 사는 비밀이 복음과 기도와 전도의 비밀이 일치시키는 비밀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복음은 영적 사실입니다. 기도는 영적 사실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도는 영적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사실을 알 때에 하나가 됩니다. 목사님께서 교회와 현장과 집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영적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영적 사실입니다. 기도는 영적 사실을 누리는 것입니다. 전도는 영적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일치되는 것이 독립하는 것입니다. 혼자 살아남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혼사 살아남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는 독립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은혜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에게도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가능한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은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 순간도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인 되심과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떠나서 둘째 아들은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떠나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저주와 불행의 시간표가 시작되었습니다.

  2. 허랑방탕한 아들입니다.
본문 13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말씀에 허랑방탕이라고 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아무 의미 없이, 생각 없이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쓸데없이 사는 삶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떠난 삶 자체가 쓸데없이 허랑방탕한 삶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들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기도하게 만드는 아들도 필요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도 이러했습니다. 엄청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기도하는 아들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보면 자신이 했던 행동을 하나하나 적으면서 회개를 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끝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끝내셨습니다.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런 아들이 있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맡기시고 언약 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정의 달의 메시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덕망도 있고 존경 받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떠난 삶은 허랑방탕한 것입니다. 본문 14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재산을 다 낭비했습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궁핍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떠난 인생입니다. 아버지를 떠나니까 그대로 죄 값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원죄입니다. 원죄가 그렇게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랐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될 줄을 몰랐습니다. 어떤 분이 평생 동안 모은 수십억의 재산을 장학금과 좋은 일에 기탁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저 돈을 교회에 드리면 정말 잘 쓸 텐 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분이 하나님을 모른다면 아름다운 삶을 살아도 그것은 허랑방탕한 인생입니다. 돈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일에 낭비를 하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써야 합니다. 이 탕자가 너무 궁핍해서 돼지 치는 일을 했습니다. 구약 시대는 돼지는 부정한 짐승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부정한 짐승은 부정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 자체가 음란하고 부정한 인생입니다. 우리 인간만 영적인 존재이기에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에 실패하는 인생은 누구든지 영적으로 간음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정한 인생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하지 못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고상하지 못하고 실수하고 연약해도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면 우리는 정결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돼지 먹는 쥐엄 열매입니다. 부정하고 혐오스러운 인생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불신앙과 죄와 사단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그 인생살이 속에 보이지 않는 저주와 실패와 불행의 시간표가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방황과 타락을 보면서 특별히 학교 현장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캄캄함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5, 10년이 지나면 동성연애가 정상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 옳다고 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보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저는 학원 문제를 보면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여겨지게 됩니다. 앞으로 날이 갈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의 문제를 보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인터넷에서 음란물 접속이 가장 놓은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1위라고 합니다.

  3. 회복의 시간표입니다.
문화 현장과 학교 현장이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회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탕자가 회복이 되는 것을 보면서 현장이 회복될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때문에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회복의 시간표는 무엇입니까? 본문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에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스스로 돌이켰다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그가 그 자신에게로 돌아갔을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가는 것이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이 스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스스로 돌이켰다라고 했습니다. 안에 성령이 계시니까 스스로 돌이키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죄에 계속 시달리게 됩니다. 탕자가 돼지 인생 같이 비참한 것에서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 탕자에게 불행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에게 행복이 시작되게 된 것입니다. 탕자가 마음을 스스로 돌이키고 아버지께로 가야되겠다고 결단한 순간 탕자에게는 행복의 시간표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즉 복음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 "결단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에 노크하는 성화가 있는데 그 문에는 문고리가 없음을 보게 됩니다. 안에서 열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인이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마음의 문을 열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3장 20절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하늘과 죄를 얻었다라고 했습니다. 원죄입니다. 원죄가 그렇게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서 도망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가슴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그러니까 부모가 얼마나 기도를 하겠습니까? 본문 19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아들입니다. 한 번 아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호적에서 지우지 않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품꾼의 하나로 봐달라고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얻은 것입니다. 잘못하면 이 양심의 가책이 사단의 통로가 될 수가 있습니다. 과거에 저는 양심의 가책이 심했습니다. 그것이 죄의식으로 잡았습니다. 평안함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안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애굽기 12장 13절로 돌아갔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3절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를 보십니다. 이 말씀을 의도적으로 저는 잡았습니다. 하나님은 내 행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피를 보신다고 계속 잡았습니다. 어느 날 부터 평안함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믿음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양심은 가책을 느낄수록 믿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양심의 가책이 해결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피를 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도 보면 피를 볼 때에 넘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빨리 피를 보십시오. 그것이 우리를 넘어가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에게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반드시 죄의식이 생기게 되면 믿음이 사라지고 평안도 없어지게 됩니다. 빨리 의도적으로라도 억지로라도 피를 잡아야 합니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십시오. 피가 표적입니다. 이 말씀을 항상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습니다. 원래의 신분은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바뀌지가 않습니다. 아들에게는 품꾼을 다스릴 권세도 있습니다. 본문 20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이것이 회복의 시간표입니다. 내가 정말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나게 됩니다. 아직 문제가 남아 있어도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남아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 언약을 잡으면 문제는 끝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과 언약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최고의 응답이 시작되게 됩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탕자가 회복되는 순간 모든 것은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한 순간도 빠짐없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속에서 하나님의 탄식과 소원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멸망 받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서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탕자는 이방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집 안에 있는 큰 아들은 유대인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관심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집 나간 탕자에게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 만나는 길입니다. 원래 인간의 축복을 회복하는 축복의 길입니다. 탕자는 실제로 신분과 권세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집을 나가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미 약속으로 다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이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모든 축복과 응답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본문 22-23절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신분과 권세를 말합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예수 이름의 약속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발에 신을 신기라고 하셨습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전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먹고 즐기자고 하셨습니다. 이는 천국 잔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신 9가지 언약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 명이 주님 앞에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주적인 잔치를 벌이십니다. 본문 24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하나님 떠난 것이 영적 사망 상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영적 죽음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육신과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땅의 문제를 바르게 알 수가 있고 하나님의 소원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돈을 벌어야 할 이유, 공부해야 할 이유, 교회를 다니고 살아가야 할 진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르게 잡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복음과 그리스도만 말합니다. 그리고 전도와 선교를 합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전도 제자를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대들이 이 응답을 받도록 여기에 방향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도하기 이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신 신분과 권세를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이유는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우리의 죄와 저주를 영원히 단번에 해결하신 증거입니다. 이것도 믿음입니다. 부활하신 이유는 흑암이 꺾였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이것도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이름을 주신 이유는 영적 사실을 약속으로 받기 위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마음을 먹는 순간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이 일에 필요하다면 건강과 물질, 지혜 등 모든 것을 주시게 될 것입니다. 집 나간 탕자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평생 기도 제목으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것을 중심으로 우주와 지구와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평안한 복음의 응답이 우리의 삶 가운데에 넘쳐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께 예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집 나갔던 저희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멸망과 저주와 불신앙 가운데, 원죄와 영적 사망 상태에 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리시고 구원하시고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과 권세를 누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현장에서 더욱 더 기도하게 하시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애타는 탄식을 보게 하시며 전도 제자가 되게 하시며 주님께서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약속하신 9가지 언약 기도 속에 늘 있게 하시고 우리의 후대들에게 바른 기독교 문화를 물려주며 예수 이름으로 약속하신 9가지 언약 기도를 물려주며 세계를 정복할 귀중한 그리스도의 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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