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04일 [중직자수련회] 중직자의 세가지 목표 (고린도전서 2:10-16)
http://ssmc.ipdisk.co.kr:80/publist/VOL1/mp3/170204_W.mp3
http://ssmc.ipdisk.co.kr:80/publist/VOL1/mp3/170204_W.wmv
이재숭 목사
◆ 서론
같이 나눌 말씀의 제목은 중직자의 세가지 목표이다.
류목사님이 메시지를 맞춰서 하셨다.
우리교회는 잘 아셔야 할 것이 누구에게 대물림 받은 교회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 16:16-19절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약속하시고 성취된 교회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를 말하고 전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하셨다. 내 이름이 반석으로 내 교회를 세우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천국열쇠를 주셨다. 한 사람이 한 가운데 사람을 보내셨다. 지금은 중직자로 여러분을 세우셨다. 하나님의 목표 세가지가 있다. 이것을 잡아야 한다. 이것을 놓고 일년동안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의 것이 되어야 한다. 왜인가?
1. 중직자가 살지 못하면 교회가 살지 못한다.
하나님이 류목사님처럼 사람들을 많이 안보내시는 것일까? 보냈다가 나가는데 중직자를 세우시는 것은 안되는 것이 맞는 것이다.
1) 하나님이 세우시는 제자가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드는 제자가 아니다. 이런 제자를 세우시려고 우리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서 세우시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아니라 전 세계의 교회가 세워진다. 그래서 우리 교회만을 위한 중직자가 아니라 전 세계를 살리는 중직자가 되어야 한다.
2) 중직자가 살지 못하면 렘넌트가 살지 못한다. 렘넌트를 세우는데 어떤 렘넌트? 전 세계를 보는 렘넌트이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세계 살리는 복음, 말세에 깨달은 복음,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복음, 세계복음화의 시간표가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전도하러 다니는 것은 아니다. 재림의 시간표를 이미 보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야 어떤 이단에게도 답을 준다. 날짜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마 24:14 전 세계에 복음이 증거되어지는 것이다. 전 세계에 전달되어지는 렘넌트이다. 복음 아는 렘넌트가 아니라 세계 살리는 복음 아는 렘넌트이다. 그래야 변질되지 않는다. 변질되지 않고 세계로 가는 렘넌트가 서야 한다.
3) 여러분이 살지 못하면 교회의 보호자, 식주인, 동역자가 못 된다. 어느 정도로 하면 되는가? 복음 전하는 전도자의 식주인의 역할을 할 정도로, 동역자의 역할을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메시지는 잘 하는데 세계에 목사님같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 말에 흔들렸다.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 튀어나갔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세계복음화할 사람이 맞다면 끝까지 간다는 것이다. 교회의 중직자는 보호자의 역할, 식주인, 동역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살아나야 비로소 오는 것이 있다.
4) 세상을 살리는 자가 된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사는 자가 아니다. 겉으로는 세상을 사는 것 같은데 흐름을 바꾸는 자이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영적인, 사상의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은 심각하다. 흑암 두가지가 일어났다. 진보, 보수이다. 이것은 끝까지 갈 것이다. 맞는 말인데 빛만 없다. 보수는 복음막는 것을 싫어한다. 공산주의를 싫어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도 복음 싫어한다. 살리는 것은 하나이다. 중직자가 조용히 세상에서 흐름을 바꿔놓는 것이다.
2. 여러분이 이렇게 살지 못하면 오는 문제가 있다.
1) 세상에서 일을 해야 한다. 세상속에서 관계도 가진다. 그러다보니 오는 문제가 있다. 세상이 심어준 각인, 뿌리, 체질된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세상으로부터 심겨진 각인, 뿌리, 체질이 남아서 이것을 교회에 적용시킨다. 그러니까 계속 한계가 온다. 교회에 오면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사람의 말로 싸운다. 그 말이 나왔다면 기분 나쁜 나를 못 보고 상대방을 보니까 싸움이 된다. 쉽게 말을 넘기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복음 아닌 것이 남아서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드러내신다. 각인, 뿌리, 체질 속에서는 응답을 받을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심어놓은 각인, 뿌리, 체질 속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이 나와도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한 것이 없다. 하나님의 역사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 마 16:16절만 붙잡았다.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기만 하면 당신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믿음은 사람과 싸움이 아니다. 세상의 기준만 강해진다. 성령이 역사하도록 만들면 된다. 꺾는다는 것은 내 기준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힘이 없다가 힘이 생기면 와신상담한다. 속지 말라.
세상이 심어놓은 각인, 뿌리, 체질을 교회에 적용하려다보니 상처받는다. 인정 안한다고 상처받는다. 일을 하다보면 안된다고 발견된다. 세상에 각인, 뿌리, 체질된 것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적용하니까 안되는 것이다.
아직도 남아있는 각인, 뿌리, 체질 때문에 헌신을 하고 싶은데 경제에 문제가 온다. 가정에도 문제가 온다. 잘 믿는 자녀도 있지만 잘 믿지 않는 자녀도 있다. 안 믿는 사람과는 갈등이 온다. 중직자는 한계가 와 있다. 우리들은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 어떻게 넘어서는가?
자식들은 기도 많이 한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제자는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세우는 것이다. 세상의 각인, 뿌리, 체질로 되는 것이다. 내가 답답하니까 고치려고만 한다. 여기에 적용시키려고 한다.
복음은 영적문제 해결이라고 한다. 육신문제 해결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문제 해결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영적인 것이다. 이것 때문에 육신도 일어나는 것이다. 복음은 영적문제 해결이라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들은 영적인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에 빠져서, 사탄에게 잡혀서 오는 것이다. 인생문제는 사탄에게 영적으로 잡힌 것이다. 이 문제가 육신으로 오는 것이다. 육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부분을 바꾸는 것이다. 이 부분을 바꾸려고 오신 분이 그리스도이다. 영적인 부분을 바꾸고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된다.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육신은 영적인 부분이 바뀔 때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영적인 근본을 무엇으로 사는지가 중요하다. 나의 근본이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목적이 바뀌는 것이다. 행 1:3 하는 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 왜? 행 1:8 목적이 바뀐 것이다.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세상이 심어놓은 각인, 뿌리, 체질로는 목적이 돈이다. 근본이 바뀐 사람은 사람이 목적이다. 그래서 양보도 하는 것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했다.
우리는 이 각인, 뿌리, 체질된 것으로 한계가 오는지 답을 찾아야 한다. 한계가 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 세상이 심어놓은 각인으로는 하나님을 찾을수 없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수 없다. 이 각인이 창 3:1-5이다. 이 각인된 것을 가지고 교회의 일에 적용을 하니까 옳고 그른 것이 목적이 된다. 저렇게 하면 안돼. 이렇게 해야돼. 내 의견에 안맞춰주지? 힘이 빠진다. 기준이 내가 된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끌고간다. 복음을 나의 기준에 맞춘다. 이 속에서는 응답이 없다. 눈으로도, 귀로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 바뀌어야 한다. 힘이 빠져있는 것은 응답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없는 것이다. 왜? 발견하라는 것이다. 나의 기준에 맞춰서 복음을 착각하고 있음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응답이다.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낙심할 필요없다. 참고해야 할 것이다. 복음을 내 기준에 맞춰서 보기에 응답이 없다.
2) 우리의 수준이 있다. 창 6:1-8 모두가 육신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이 되었다고 했다. 네피림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사탄이 심어놓은 육신, 기준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다. 여기에 맞춰서 복음을 누리지 말라.
3) 목표는 창 11:1-6 거짓 성공이다. 물질을 많이 가지는 것이 성공이라고 한다. 행복을 가지려고 성공하는데 행복이 없다.
각인 세가지는 수준이 높고, 성공을 하려고 해도 육신 이상은 못 넘어간다. 왜 이속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가? 상태 때문이다. 응답은 흑암이 꺾이는 것이다. 그래서 상태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보여야 한다. 그리스도 아니면 성령이 역사가 없다.
자신의 수준에 맞춰서 보기에 한계가 온다. 상태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지도, 알수도 없게 하셨다. 2:10 오직 성령으로라고 했다. 성령의 상태를 누려야 한다.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은혜로 주신 것이 있다.
2절, 4절이다.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 성육신, 십자가, 부활로 나타난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성육신, 십자가, 부활,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한다.
(1) 각인은 하나님이 성령의 나타남으로 바꾸셨다. 그래서 상태를 알아야 한다. 내 기준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상태를 바꿔야 한다.
복음은 영적문제 해결이지 육신 문제 해결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 해결이다. 각인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상태를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기심으로 한다. 자기중심이다. 자기 밖에 모른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밖에 모를 수밖에 없는 영적상태를 모르기에 피하고 전도가 안된다. 상대방이 복음을 안들어도 전도가 되어야 한다. 내가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라를 살리는 것이 저주, 흑암이 꺾여야 하기에 우리 교회를 안나와도 전도해야 한다. 상태를 보는 것이다.
(2) 세상에 일어나는 것이 뿌리이다. 요 16:11 세상임금 마귀라고 했다. 원래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자기 땅에 왔는데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는다. 어둠이 있다. 세상이 창조한 자를 알아야 하는데 못 알아본다. 어둠이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임금 마귀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화가
⓵ 행 13장이다. 13:1-12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문화가 흑암이 잡기에 무속문화이다.
⓶ 행 16:16-18 점술 문화
⓷ 행 19:8-20 우상문화 건문도 크게 짓는다.
스타벅스 커피 먹으면 로고를 본다. 그것이 사탄을 상징하는 것이다. 먹으면서 익숙해진다. 사탄은 길들여놓는다. 당연하게 여기게 한다. 그런데 영적인 흐름은 반드시 들어간다. 저절로 들어간다. 그래서 복음이 있어야 한다. 익숙하게 길들여놓는다. 칸느 영화제는 반기독교 영화는 상을 준다. 동성애에 찬성한다. 은밀히 사탄이 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서 반감을 안갖게 한다. 이래서 이것이 체질되게 하는 것이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우리의 근본 상태는 바뀐 체질이다. 구원은 받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삶은 흑암에 여전히 빠져서 젖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그것을 나도 모르게 당연한 듯이 스며들면 우리의 영적상태는 근본은 바뀌고, 지식은 뛰어나다.(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다. 교회도 다니고 예배는 드리는데 경건의 모양은 없다. 기도가 안 될 정도이다. 세상에 빠져서 기도가 안된다.
⓸ 그러면 반드시 오는 것이 마 11:28 정신, 생각, 마음의 상태가 수고스럽다. 무거운 짐을 못 벗는다. 내가 해야 하는데 능력이 없다. 경건의 능력을 못 누리니까 내가 해야 한다.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하루 종일 사는데 스트레스만 받는다. 그러면 육신 상태가 무기력에 빠진다. 무응답, 무능력에 빠진다. 그래서
⓹ 내세 문제가 끝났다. 그러나 삶은 계속 지옥배경에 당한다. 고통스럽다. 그 말은 인생 상태가 과거체질이 나온다. 과거 운명이 나온다. 과거에 묶인 것들이 나온다. 옛날 성질이 나온다.
⓺ 후대들에게 복음을 심어놓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상처, 불신앙을 심어놓는다.
간단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태를 보아야 한다.
드러난 것이 아니라 상태를 보아야 한다. 상태를 보면 그리스도가 찾아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발견되는 것이다. 이것을 창 1:27,28이라고 한다.
12가지 속에서는 나를 찾아야 아무 소용없다. 상태를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보면 성령의 역사, 나타나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육신, 십자가, 부활, 예수 이름으로 나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 세가지가 목표로 발견된다.
1. 상태를 보면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목표가 발견된다.
누가? 내가 세운 것이 아닌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알지 못한다. 성육신이다. 행 1:14을 붙잡는 것이다. 이 속에 초대교회가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행 1:1 성육신, 십자가, 부활이다. 이 일로 행 1:3 하나님의 나라, 기도이다. 응답이 행 1:8이다. 증인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절대목표는 세가지를 하나로 누리는 것이 기도이다. 우리의 기도는 답 나온 기도가 되어야 한다. 답 나온 기도를 하자. 항상 기도 속에서 세가지가 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목표가 들어가야 한다.
1) 이것을 매일 찾는 것이 행 1:14 전혀 기도에 힘쓴 것이다. 세가지를 동시에 누리는 것이다. 만남에서, 업에서 세가지를 동시에 기도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응답이 온다. 응답이 약속이 되어 있기에 세가지를 기도하는 것이다. 응답을 미리보고 기도하는 것이다. 복음은 이미 성취된 것이다. 세계복음화는 이미 이루어졌음을 보고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받은 응답이 행 2:9-11 흑암이 꺾인 것이다.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흑암은 저절로 무너진다.
2) 15개국 문이 열린다. 제자가 세워진다.
3) 행 6:7 기도 속에서 중직자를 세운 것이다.
우리 교회는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마 16:16 속에 있으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그 시간표에서 중직자를 세우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도행전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4) 말씀운동이 일어났다. 각인, 뿌리, 체질에 맞추니까 응답이 없다. 상태만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목표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을 보고 바꾸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이다. 바뀌지도 않고 힘만 떨어진다. 바꾸지 말자. 하나님의 목표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바뀐다고 무엇이 바뀌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아일이가 시키는 대로 하더니 지금은 조금 컸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고 하면 싫어한다. 창3장이다. 그것이 그 나이 때에 당연한 것이다. 옆에서는 잘한다, 잘한다고 한다. 그러면 또 듣는다. 그러다가 마음에 안들면 또 튄다. 우리는 귀여워하는데 영적상태를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기도가 나온다. 영적상태를 보고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이 말씀운동이 일어나니까 제사장의 무리도 돌아온다. 중직자를 통해서 온다.
5) 행 7:54-60 가장 위기가 왔을 때 중직자 스데반이 순교한다.
6) 행 8:4-8 빌립이라는 중직자가 아무도 안가는 사마리아로 간다.
7) 행 9:10-15 중직자가 있는 현장에 하나님이 시대적인 예비된 자를 붙이신다. 바울이다. 아나니아라는 중직자에게 붙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8) 행 1:14을 찾기만 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응답을 이루신다.
9) 행 11:19 교회의 위기를 만났다. 그래서 모여 기도했다. 그랬더니 로마를 복음화하는 일이 일어났다.
10) 행 12:1-28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중직자들이 기도했다. 그랬더니 옥문을 여는 역사를 일으키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목표 속에 있을 때 받는 응답이다. 바꾸지 말라. 각인, 뿌리, 체질이 드러날 때 상태를 바꾸고 절대목표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2. 하나님의 절대목표속에 있는 자들이 가져야 할 중직자의 사명이 있다.
1) 일은 목표가 아니다. 사람이다. 가정이다. 일은 방법이다. 일은 안되게 하시면 안하고 되게 하시면 하면된다. 그런데 자기의 것이 있으면 해야한다고 해서 상처를 받는다. 중직자의 사명은 사람이다. 그리고 가정이다. 일은 될수도, 안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보여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사람을 보더라도 내면세계가 보이게 된다.
내면세계를 보면 인간에게 와있는 영세전 문제가 보인다. 자기 힘으로 안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오래된 문제, 가정,가문에 있는 문제가 보인다.
3) 가문으로 파고들은 개인의 통로로 나온다는 것이 보인다.
2. 영적 세계로 들어가면 흑암도 보아야 하지만 흑암을 꺾는 권세도 보아야 한다. 이것이 동시성이다. 동시성은 선지자, 제사장, 왕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확신하는 것, 흑암이 꺾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답이 있기에 실망을 안하게 된다. 낙심하지 않고 기다리게 된다.
각인, 뿌리, 체질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한계가 온다. 그러면 한 길만 보면 된다. 모든 한계는 한길만 보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이다. 오직이 깨달아지면 기다리면 된다.
한계를 넘어서려고 몸부림쳐봐야 도 한계가 온다.
3. 중직자의 절대헌신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헌신이 문제가 아니라 왜 헌신할 기회를 주셨는가 이다.
전도는 첫 번째 헌신이라면 마지막은 경제축복이다. 경제를 회복케 하시려고 헌신을 주신 것이다. 헌신의 기회를 피하지 말라.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품을 가라앉혀야 한다. 보는 눈이 사실적이어야 한다. 객관적이어야 한다.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모든지 그렇다. 박영희 권사가 어디를 다녀오다가 한 말이다. 당신이 하는 일에 전문성이 보였다. 사실적으로 보고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결여되었다. 앞뒤, 좌우, 위, 아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보아야 한다. 이것이 떨어지면 여러분의 일이 된다. 객관적이 되면 모든 사람을 살리게 된다. 그래서 세계복음화가 된다. 이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적, 객관적, 전문적이어야 한다. 하찮은 일에도 있다. 지금은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세가지를 본 사람이 주도해서 만든 일이다. 나만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창 3:5-6을 보아야 한다. 시대의 트렌드이다. 하찮은 일에도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운 것이 있다. 세상은 이렇게 간다.
보고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 믿는 사람도 하는 일인데 나에게 주신 것을 알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오직, 유일성, 재창조가 된다. 아무도 빼앗을수 없는 재창조의 역사이다. 하나님이 잡고 계시는 것이다.
사실은 이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경제응답을 받도록 주신 것이다. 그래서 버릴 것이 없다.
2) 1번이 된 사람은 두 번째로 될 것이 헌금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저축도 필요하지만 세계복음화를 위한 계획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빛의 경제가 임한다. 복음의 경제가 임한다. 그 사람들이 행 16:11-15 자주장사 루디아이다. 헌금 계획이 있었다. 이 사람의 경제로 많은 일꾼을 살린다. 행 18:1-45 브리스가 부부이다.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요삼 1:2, 롬 16:23 식주인의 역할을 한 가이오이다. 우리에게 주시는 경제응답이다.
이 계획이 중요한 것은 헌신을 해야 한다. 교회가 필요할 때 나에게 빛의 경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사명은 경제회복이다. 그래서 계획부터 있어야 한다.
새신자인데 이지영 목사에게 헌금한다는 분이 있다. 복음을 알고 나니까 중요한 곳에 해야겠다고 했다.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중요할 때는 헌금을 한다. 헌금의 계획이 중요하다. 큰돈을 했냐고 했는데 하나님이 주셨다고 한다. 입바른 말이 아니다.
자녀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아일이에게도 사명식, 성인식, 파송식을 할 것이다.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1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400만원씩 줘야 한다. 아이가 자기의 꿈을 펼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10억 이상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몇 백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성인식 할 때 자립할 수 있도록 1억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난하다고 해봐야 소용없다. 통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회에도 성인식, 파송식, 사명식을 해야 한다.
3)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중직자의 전도이다.
(1) 현장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2) 직장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3)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복음 안에 다 있다. 그래서 각인, 뿌리, 체질을 바꾸려 하지 말고 상태를 보아야 한다.
시간이 길어서 못 견디는 것이 아니라 영적상태가 그렇다. 복음으로 안 되는 부분이 보이는 것이다 상태가 보이면 그리스도로 들어간다.
우리에게 절대적 세가지 목표속에 있도록 복음안에서 우리를 부르심에 감사합니다. 중직자들이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찾도록 행 1:14속에 있고 절대 목적이 사람이요, 일이 아니고, 절대헌신을 위해서 흐름을 바꾸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